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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 스님 비 복원과 박영돈 선생

기자명 법보신문

김 상 영
중앙승가대 교수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에 인각사라는 절이 있다. 그런데 이곳이 『삼국유사』를 찬술한 보각국사 일연(1206~1289) 스님의 국사 하산소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일연 스님은 국사의 자리에 있다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개경을 떠나 인각사에 주석하였으며, 이곳에서 84세를 일기로 입적에 들었다. 조정에서는 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비를 세웠는데, 지금 인각사 경내에 남아 있는 스님의 비는 쪼개진채 일부 비편만 비각 속에 보존되어 있다. 일연 스님의 비는 명필 왕희지의 글자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일연비를 탁본해가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졌고, 심지어 일본과 청나라에서도 수시로 이 비의 탁본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스님의 비는 이 과정에서 파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일연 스님이 탄생한지 꼭 8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의미 있는 기념사업 하나가 추진되어오고 있다. 파손된 일연비를 복원하여 다시 인각사 경내에 세우고자 하는 사업이다. 문화재 관계 당국과 그동안 일연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오던 전문가들은 2년 전부터 수 차례에 걸친 연구 모임을 통해 비문의 복원 초안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비를 새기는 일과 귀부, 이수 등의 제작 단계에 이르고 있으며, 계획대로라면 오는 8월초 일연 스님의 제일에 맞추어 역사적인 복원 기념식을 하게 될 것이다. 일연 스님은 지난 1992년 7월, 문화관광부에서 추진하는 ‘이 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적이 있다. 필자는 그와 관련한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한 지방은행의 서울 지점에 근무하고 계시던 박영돈이라는 분과의 만남이다. 그 분은 당시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던 일연비의 복원을 평생 숙원사업으로 여기고 계셨다. 그 분은 재직하던 은행의 고위 간부도 아니었고, 전문 학자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불교권에서 활동하던 신심이 돈독한 불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삼국유사』라는 불후의 저작을 남긴 일연 스님의 비가 이렇게 쪼개진채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라는 일념으로 언론, 관계 등 백방으로 비 복원과 관련한 탄원을 하고 계신 상태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비를 들여 비 복원을 위한 시안을 만들고 있었다. 일연비의 복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의 음기 내용을 재구성할 수 있는 탁본첩의 수집이 급선무였는데, 27종에 달하는 국내외 탁본첩의 소재는 대부분 박 선생님에 의해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일연비 복원 사업은 전적으로 박 선생님의 이러한정진에 힘입은 결과이다. 지금은 고희의 연세가 되신 그 분을 뵈면 6바라밀의 정진행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그 분은 숱한 세월동안 4,050여 자에 달하는 비문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맞추어 나가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선명하지 못한 글자는 각종 왕희지 서첩을 뒤져가며 더 좋은 글자를 찾아내는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이제는 비 복원 사업을 추진해도 좋겠다는 각계의 동조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박영돈 선생님은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제쳐놓고 자기들 밥벌이에 열중하고 있는 학자들과 관계 공무원들에 대한 질책의 말씀을 가끔 털어놓곤 하셨다. 필자 역시 그 분을 뵈면 늘 송구한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박영돈 선생님의 정진으로 올 여름 우리는 일연비를 다시 만나게 되는 감격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박 선생님께 고생하셨다, 감사하다는 인사의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 아울러 독자 여러분께 올 여름에는 『삼국유사』의 고장 인각사를 꼭 참배해 보시라는 권유의 말씀과 함께, 참배 길에 박영돈이라는 고마운 분의 이름을 한번쯤 떠올려 보시라는 당부의 말씀도 전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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