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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긍정과 이중 부정의 道 하

기자명 법보신문

나와 남 다르되 독립적이지 않은 관계
남에게 희망 주며 不二 실천, 보시 으뜸

20세기의 문명은 개인주의/전체주의, 자유주의/사회주의 등의 대결로 막이 내렸다. 물론 저 이분법에서 후자가 전자에 대하여 패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자도 후자도 다 불법의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다. 불법은 개인을 독립된 실체로 보지 않기에 개인주의도 사양하고, 전체를 위하여 차이를 무시하고 지우는 전제주의도 거부한다. 자유주의의 자유론은 일체의 개인적 소유를 보장하기 위한 자유론이므로 불법의 해탈적 자유론과 다르다.

사회주의의 평등론은 소유론적 대등론의 억지주장과 유사하므로 불법이 말하는 상관적 차이로서 서로 엮어지는 존재양식의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불법의 진리는 소유론적인 의미를 지닌 개인과 전체의 대결, 역시 소유론적 의미를 띤 자유와 평등의 대결을 넘어서는 제 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불법이 말하는 이중긍정에 의한 세상보기는 자/타를 비동시적 동시성으로 읽는 세상보기의 이치를 담고 있다. 중국 화엄학의 고승 법장의 「화엄금사자장」의 소론처럼 황금사자상을 금으로 여기면 사자의 생각이 약간 후퇴하고, 사자라고 여기면 황금이라는 생각이 숨는 이중성의 비동시적 동시성이 가장 적절한 비유겠다. 이중긍정으로 보면 자기는 ‘타자의 타자’인 셈이고, 타자는 ‘자기와 다르게 동거함’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표현은 프랑스의 현대 해체철학자 데리다가 이중긍정의 관계를 동시에 언표한 용어에서 빌려 온 것이다. 이 데리다의 말은 자/타가 다르지만 불이(不二)로 읽어야 함을 뜻한다.

내가 ‘타자의 타자’라는 말은 나의 마음상태가 항상 불변한 자기동일성을 지니지 않고 상대방의 상태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말한다. 상대방이 사랑스러우면 내가 기분좋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불쾌해진다. 나는 자가성(自家性)이 없이 상대방의 함수로 작용한다. 상대방도 이와 마찬가지겠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게 동거함’이라는 것도 그가 나와 다르나 나의 기분과 분리되지 않고, 나의 기분과 동거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와 남은 다르나 별개의 독립적 존재가 아니고 동거하는 일체의 관계다. 이 경우 가장 큰 보시는 내가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고, 남의 마음에 희망을 주면서 남이 나와 불이(不二)라고 여기는 마음이다. 이중긍정은 우리가 다 싫든 좋든 얽혀있기에 모두에 희망을 주는 일을 해야 내가 결국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우리가 늘 타자의 마음상태에 따라 변화는 함수라면, 우리는 타자에 의하여 반대로 끄달림을 받는 종속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마음상태의 기상도에 따라 내가 희비쌍곡선을 그린다면, 나는 부자유스럽기 짝이 없고 얽매인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중부정은 내가 상대방의 반작용이라는 생각마저도 초탈하는 경지를 말한다. 이중긍정은 자기중심의 생각을 일차적으로 극복하는 계기를 주고, 이중부정은 상대방의 반작용이라는 생각의 마지막 꼬투리도 쉬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진실로 무애하게 자유로울 수 있고, 불이(不二)라는 생각도 없는 적정(寂靜)에서 맑은 물과 청명한 공기처럼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으리라. 원효대사가 말한 이중긍정과 이중부정은 이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세상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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