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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넘어서

기자명 법보신문

유다의 배신은 필연인가 자유의지인가
자유와 업 결정 짓는 건 ‘깨어있음’ 유무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진리가 결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자유의지의 소산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철학적 문제에 골몰해 왔다. 특히 이 문제는 서양철학의 사유에서 매우 심각한 주제로 등록되어 왔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가롯 유다의 행위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가롯 유다는 그의 스승인 예수님을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바리새인들과 로마 관가에 팔았다. 그는 그 돈으로 팔자를 고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았다. 그의 배신행위는 이미 결정된 운명의 길을 걸어 간 것인가, 아니면 자유의지의 소산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물론 내가 배운 바에 의하면, 그는 자유의지의 판단으로 그런 엄청난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발굴된 유다복음서에 의하면, 유다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영특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예정된 하느님의 사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런 행위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유다복음서를 정통 신학이 받아들일 리 없다. 그러나 유다복음서의 내용도 인간의 진리가 운명적으로 결정된 것인가, 아니면 자유의 소산인가 하는 근본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미제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유다가 예수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런 일을 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는 하느님의 예정된 사업을 돕기 위한 도구 역할을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가 순전히 자유의지로 그런 일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서양 신학사상의 전반적 체계가 다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겠다. 서양철학과 신학은 진리를 인격적 정신으로 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인격은 자유고 자연의 필연법과 다르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나는 여기서 불교의 유식학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의 본질에 주목한다. 유식학에서 아뢰야식의 별칭을 각각 장식(藏識), 이숙식(異熟識), 집지식(執持識)이라 부른다. 장식은 모든 업의 종자를 다 저장하기도 하고, 그것이 저장되기도 하므로 그렇게 부르며, 이숙식은 대표적으로 선악의 인과가 다르게 변이하여 중립이나 경우에 따라 대지(大智)로 바뀌므로 이숙식이라 칭한다. 집지식은 선악의 종자가 상속되므로 그런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그렇다면 이숙식과 집지식이 다 아뢰야식의 본질에 속하는 셈이다. 이숙식으로 보면 인간 마음의 본질은 업의 운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참회와 수행에 의하여 하루아침에 무거운 업의 무게와 굴레가 사라질 수 있게되고, 집지식으로 보면 그 업은 상속되기에 또한 결정된 운명의 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불교의 가르침은 어느 서양철학이론보다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진리를 밝혀 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의 진리가 결정과 자유라는 실재적이고 택일적인 이분법적 논리로 나눠져 있기 보다, 오히려 마음의 활용에 의하여 자유와 운명(업)의 길을 스스로 밟는 다는 것이 온당하다 하겠다. 지옥도 하느님의 심판으로 타율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미혹으로 지옥이 좋아 보여서 스스로 거기에 가려고 기를 쓴다는 것이 더 온당해 보인다. 지옥도 천국도 다 제가 좋아서 가는 것이겠다. 마음이 좋아서 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사라면, 운명과 자유의 구분이 없다. 다만 마음의 깨어있음이 자유와 업의 결정을 갈라놓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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