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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장편소설 - 인연 3

기자명 법보신문

제 1장 지족암 가는 길

글·정찬주  삽화·송영방

“눈을 감고 합장한 채 고명인은 이십대 젊은 시절의 예쁜 어머니를 허공에 그려놓고 새 한 마리를 떠올렸다.”

빛바랜 단청의 대적광전 처마에는 하얀 잠자리 날개 같은 날빛이 아직 스러지지 않고 있었다. 고명인은 빛바랜 단청 위에 얹힌 저물녘의 날빛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세월의 이끼가 있다면 바로 저런 빛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산사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아련하고 은근한 빛깔이었다.

“무얼 그리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습니까.”
“단청빛깔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도회지의 낡은 건물에서 느껴지는 칙칙한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해인사의 천년 역사가 묻어 있기에 그럴 것입니다. 아마도 미국의 어느 건축물도 이처럼 아름다운 연출을 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미국의 역사가 고작 2백년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스님, 잊고 있었던 아름다움을 되찾은 느낌입니다.”
“그러시다면.”

혜각스님이 갑자기 고명인을 아랫사람 다루듯 다소 강압적으로 말했다.

“대적광전에 들어가 참배를 하십시오. 참배 후에는 고 선생께서 참으로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고명인은 스님의 권유를 따르기로 했다. 절에 왔으니 절의 법도를 따르라는 것이므로 선의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듯싶었다. 고명인은 스님을 따라서 법당 정면의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려다 법당 안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 신도에게 제지를 당했다.
“신도 분은 측면 문을 이용하십시오.”
“그러겠습니다.”
고명인이 측면의 문으로 들어와 유교식으로 어른에게 절하듯 큰절을 넙죽 올리고 나자, 혜각스님이 다가와 말했다.
“비로자나부처님께서 하룻밤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을 하시네요. 보십시오. 부처님께서 미소 짓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표정 같기도 합니다.”
“하하하. 농담이고요, 비로자나불은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님입니다. 진리를 불교에서는 법(法)이라고 하니까 법신불(法身佛)인 셈이지요.”

고명인은 진리를 향해 절을 했다고 생각하니 비로자나불을 처음 보았을 때 받은 이질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낯익은 것이 주는 편안함은 아니었지만 차츰 적응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금빛의 비로자나불에 반사되는 전등불빛은 눈을 아프게 찔렀다.

“금빛이 강렬합니다만 왠지 친화력이 느껴지는 부처님입니다.”
“고 선생의 마음속에 이미 법신불이 존재하기 때문에 친화력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 선생은 마음속에 법신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입니다.”

혜각스님의 언어는 누구라도 고개가 끄덕거려질 만큼 상당히 정교하고 이해하기 쉬웠지만 고명인은 그냥 흘려들었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담아 둘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무엇을 진짜 잃어버리고 살아왔는지 아시겠습니까.”
“예전에 마음이 부처라는 얘기를 들어본 것도 같습니다.”
“그것은 아직 지식의 차원이고요, 불교란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체험하는 종교입니다. 체험하여 진리를 자기화 시키는 것이 바로 불교의 핵심이지요.”

혜각스님은 포교국장이란 소임에 충실하려는 듯 얘기를 더 하려다가 기도하는 신도들이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자 합장하며 입을 다물었다. 해인사 단골 신도임을 과시라도 하듯 아주머니 신도들은 혜각스님에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있었다.

“스님, 이제 나가도 되겠습니까.”
“그럽시다.”
고명인도 혜각스님의 목소리가 크고 얘기가 길어지는 것 같았으므로 기도하는 아주머니 신도들에게 공연히 미안했던 것이다. 어쨌든 고명인의 머릿속은 별세한 노모의 그림자가 집요하게 어른거렸고, 효도를 다하지 못한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대적광전 왼쪽에 나란히 선 명부전 앞에서야 혜각스님이 고명인의 마음을 짐작하고 물었다.

“절에서 돌아가신 보살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의식 중에 천도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주일 간격으로 일곱 번 재를 지내는 동안 보살님의 영가(靈駕)를 극락 왕생시킨다는 의식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저는 49일 동안이나 국내에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마무리 짓지 못한 사업이 있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보살님이 돌아가신 지 며칠이 됐습니까.”
“오늘이 6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잘됐습니다. 7일째 되는 날 초재(初齋)를 지내는데, 아직 초재 전이니 오늘밤 안으로 법당에 앉아 기도를 하십시오.”
“무슨 기도를 말입니까.”
“평소에 보살님은 무엇으로 태어나시고 싶다고 했습니까.”
“죄송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고명인은 명부전에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만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밝고 장엄한 대적광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향을 태운 냄새가 독하게 코를 자극했고, ‘ㄷ’ 자로 배치된 조각물 뒤로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불단에 놓인 국화와 백합꽃마저 생기를 잃어버리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왕 기도를 하려면 보살님의 소망대로 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 제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뿐이군요.”
“그렇습니다.”
“스님. 그런데 제가 말입니다, 어머니에게 기도할 자격이 있는 자식인지 자신이 서지 않습니다.”
“기도란 정성을 다 바치는 것입니다. 귀신을 부르는 것은 정성이란 말도 있습니다. 그러니 간절하게 기도를 하십시오.”

그래도 고명인은 혜각스님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도를 해서 어머니의 영혼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도 서지 않았고, 그렇다고 처음 만난 혜각스님에게 기도를 부탁할 염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님, 제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정성이 귀신을 부른다고 했는데, 우리 불가 식으로 표현하자면 맑은 한 생각이 영가를 부르고 만나는 것입니다.”

혜각스님은 고명인이 명부전에 들어갈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돌탑 너머의 응진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응진전은 명부전보다 길쭉한 건물로 순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마치 선한 암소 한 마리가 편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 아라한과를 얻은 나한들이 봉안되어 있다는 안내판의 설명문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신도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날이 저물어 저는 이만 지족암으로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혹시 지족암에서 차를 한 잔 하고 싶으시다면 내일 아침 일찍 올라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스님, 이렇게 안내해주시고 호의를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꼭 잊지 않겠습니다. 내일 아침 사정을 보아 가능한 한 지족암으로 올라가 스님을 뵙겠습니다.”

혜각스님은 곧 자리를 떴고, 고명인은 땅거미가 지고 있는 경내를 배회했다. 다시 구광루로 가 기둥을 만져보았다. 기둥은 옛 기둥이었으나 새 단청을 하였음인지 20여 년 전의 질감과 달랐다. 구광루는 이제 설법전으로 사용하지 않고 절의 보물 같은 것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이는 듯 문들이 굳게 잠겨 있었다.

고명인은 사운당의 혜각스님 방으로 돌아와 갈증이 났으므로 전기포트의 물을 따라 마셨다. 고개를 쳐드는 순간 벽에 붙여놓은 서산대사의 시 한수가 눈에 들어왔다. 혜각스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여 붙여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흰 구름은 옛 벗
밝은 달은 나의 삶
첩첩산중에서
사람 만나면 차를 권하리.
白雲爲故舊
明月是生涯
萬壑千峰裏
逢人卽勸茶

고명인은 다시 한 번 더 시를 중얼중얼 읊조렸다. 깊은 산중에 머물고 있는 산승(山僧)이 절을 찾아온 길손과 나눈 차 한 잔의 인연을 노래한 절창의 시 같게도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낯모르는 길손에게 차 한 잔을 권하는 산승의 삶도 밤길을 밝혀주는 둥근 달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방바닥은 전기보일러로 데우는지 골고루 따뜻했다. 이불을 덮지 않아도 될 만큼 방안도 훈기가 돌았다. 고명인은 책을 몇 권 가져와 베개를 삼았다. 그러나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산중에 이는 가을바람이 문풍지를 울리고 있었다. 고명인은 혜각스님이 한 말을 중얼거리며 방문 쪽으로 돌아누웠다.

‘맑은 한 생각이 어머니의 영가를 불러 올 수 있을까.’

고명인은 어머니를 위해 치른 장례의식들이 두서없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입관 때 천주교 신자들이 삼베 수의를 입힌 어머니 시신 옆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위령기도 소리도 다시 들리는 듯했다.

입이 있어도 말도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이제는 살아생전에 웃고 우는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기도였으므로 그때부터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라는 것에 지금까지 매달려온 것은 아닐까.

그런데 고명인은 아직까지도 어머니의 혼이 어디에 고이 안착해 있다고 믿지 않았다. 무종교에 가까운 성향 때문인지 장지에서 입관 때 들었던 천주교회 신자의 기도도 지금까지 건성으로 믿고 있을 뿐이었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 요셉피나를 맡기오니 나약한 인간으로서 저지른 죄를 주님의 자비로 용서하시고, 하느님 나라에서 성인들과 함께 끝없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혜각스님은 어머니가 천주교와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렀기 때문에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복이 많은 보살이라고 말했지만 고명인은 그 말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고명인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다구를 끌어당기며 소리 내어 혼잣말을 했다.

“그렇다면.”

문득 고명인은 살아생전에 했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신세타령을 길게 하더니 무슨 이야기 끝에선가 ‘나는 죽어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 싶구나’ 하고 말했던 것이다. 고명인은 바로 그 말이 어머니의 유언이라고 생각했다. 병고의 삶이 고통스러워 죽어서는 홀가분해지고 싶다는 표현을 그리했겠지만 어머니의 소망은 극락이나 천국이 아닌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고명인은 다관에 차를 우려 찻잔에 따랐다. 차맛은 찻잎을 많이 넣어 우린 탓에 떫었다. 그래도 그는 피로가 가시고 정신이 맑아지기를 바라며 연달아 세 잔을 마셨다. 세 잔을 마시고 나서야 고명인은 다시 소리 내어 말했다.

“법당에 가서 기도를 하자. 어머니가 바랐던 대로 기도를 하자. 맑은 한 생각이 어머니의 영가를 부를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혜각스님이 권유하는 대로 해보자.”

밖으로 나온 고명인은 심호흡을 했다. 경내는 발자국 소리가 공명할 만큼 고요했고, 초승달이 뜬 하늘에는 별들이 또록또록 빛을 내고 있었다. 바람은 서늘했지만 뜨거운 차를 마신 탓인지 견딜 만했다. 고명인은 대적광전으로 들어가려다가 기도하는 신도들의 숫자가 더 많아져 있으므로 명부전으로 들어갔다. 좀 전에 보았던 불단에 놓인 꽃들은 어느새 치워지고 없었다.

고명인은 지장보살 앞으로 가 절을 한 다음 무릎을 꿇고 합장을 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기도였지만 어색한 기분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어머니를 위한 첫 기도이자 마지막 기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 간절해졌다. 눈을 감고 합장한 채 고명인은 이십대 젊은 시절의 예쁜 어머니를 허공에 그려놓고 새 한 마리를 떠올렸다. 무릎이 저려올 때까지 그러한 생각을 물이 흐르듯 이어갔다.

기도를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나자, 부엉이 한 마리가 가까운 산자락까지 날아와 우는지 부엉부엉 하고 들려왔다. 서투르고 경직된 자세 때문에 무릎이 얼얼했다. 그래도 고명인은 밤을 샐 각오로 합장한 손을 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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