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善을 善이라 규정짓는 순간 善은 더 이상 善이 아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6.10.06 12:20
  • 댓글 0

안옥선 교수, 육조단경의 ‘선악불이설’ 발표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선과 악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이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과 삶을 구속한다고 보았다. 기독교에서 선과 악은 양분되는 것임에 비해 불교에서는 선과 악이 서로 상보적 관계, 즉 선과 악이 상대적인 개념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선과 악 사이에는 확정적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며 선과 악은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안옥선 순천대 인문학부 교수〈사진〉는 2006년 8월에 간행된 『불교학연구』 제14호에서 「불교의 선악불이(善惡不二)에 대한 이해-육조단경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악조차 본래는 선하다고 설명한다. 악도 본질적으로는 선과 마찬가지로 선성을 속성으로 하는 자성 안의 문제이기 때문에 선하다는 것이다.

돈황본 『육조단경』에서는 ‘악이 선과 더불어 있다는 것을 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안 교수는 ‘악이 선과 함께 있다’는 의미를 두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실질적으로 선과 악이 함께 출현함, 즉 선을 보는 것에서 악도 보아야 하고 악을 보는 곳에서 선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둘째 선은 악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고 악은 선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선과 악이 본래 공하다’는 점에서 선악은 다르지 않지만 선과 악이 항상 무차별적으로 동일하다는 말은 아니다. 선악에 대한 올바른 분별을 통해 선악의 생멸 방식을 관함으로써 그 어디에도 집착함이 선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 방법이 바로 중도적 실천이다. 상(相)으로서 구체적 선악을 인지하면서도 그 속성의 공함(性)을 인지하며 상과 성, 그 어디에도 집착함 없이 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안 교수는 “선악불이는 선악이분을 통한 선과 악의 고정화 내지 절대화를 경계한 것이자, 이분된/개념화된 선악에 대한 집착을 경계한 것”이라며 “현실에서 실제 선악은 매 경우마다 새로운 것이어서 이미 개념화/관념화된 선악의 적용을 떠나있다”고 설명했다.
개념화되고, 관념화되고, 절대화된 선악에 대한 거부, 그것이 바로 선악불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라는 것이 안 교수의 주장이다.
 
탁효정 기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