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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승려는 천민이 아니었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6.10.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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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연 전영근 연구원 ‘승려교지’ 발표

<사진설명>선조35년 재발급된 휴정의 고신(위)과 1622년 발급된 부휴수선의 帖(아래).

문정왕후가 죽은 이듬해인 1566년(명종 21년) 조선왕조는 공식적으로 양종과 함께 승과와 승계제도를 폐지했으며,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승과는 부활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에서 승과를 폐지한 이후에도 여전히 불교계 내부에서는 승과가 시행되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승려들의 신분이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는 사실을 고문서를 통해 밝히는 논문이 발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실 전영근 연구원은 10월 14일 제134회 고문서학회에서 ‘조선시대 승인전선(僧人銓選)과 관련 고문서’를 발표하고 조선시대 승려 관련된 고문서들에 나타난 조선시대 승계·승직제도를 분석했다.

그동안 조선시대 불교사는 ‘숭유억불의 시대’로 치부돼 다른 시대에 비해 연구가 등한시돼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에 등장하지 않는 불교의 내용들은 거의 연구되지 않아 조선불교사 영역은 한국사 내에서도 큰 공백으로 남아있다. 전 연구원의 논문은 그동안 정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승려 체계(僧階)를 확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학계의 큰 주목을 끌고 있다.

전 연구원이 분석 대상으로 삼은 문서는 휴정의 고신(告身, 관직 임명장) 2건과 부휴선수와 벽암각성의 첩(帖), 『고문서집성』에 수록된 공명첩(空名帖) 등 조선후기에 국가에서 발급한 문서들이다.

그 중 휴정의 고신 중 하나는 임진왜란 당시 휴정에게 발급된 도총섭이 화재로 소실되어 재발급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휴정 사후 180년이 지난 뒤에 발급된 것으로 표충(表忠)선사라는 존호를 첨가하는 고신이다. 또 부휴선수의 첩은 선수의 사후 국가에서 존호를 추증한 것이다. 벽암각성의 고신은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를 치하하여 스승 선수가 존호를 받을 때 함께 받은 것이다.

공명첩은 일반적으로 산성이나 교량 등의 대공사에 참여한 승려들에게 지급하는 승려 신분증이었다.

전 연구원은 “임진왜란 이후 승려들에게 발급되는 고신에서 조선전기에 폐지된 승계를 존호로 사용하고 있으며, 국가에서 내린 도총섭이라는 승직 또한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공식적으로는 폐지된 대선사나 대덕 등의 승계가 불교계 내부에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전 연구원은 승려들에게 내려진 등계첩(登階帖)이 취재입격첩(取才入格帖)의 형식으로 작성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취재입격첩은 문과합격자에게 내려지는 홍패나 진사생원시 합격자에게 내려지는 백패보다는 격이 낮은 문서로, 식년시를 통해서가 아닌 임시 시험에 의해 선발된 과거합격자들에게 내려지는 증서였다.

이는 “승려들에게 내려진 교지가 홍패나 백패보다는 격이 낮았지만, 승려에게 내려지는 등계첩이 하나의 정형화된 문서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조선후기에 있어서 승려직급이 국가의 공식체계 속에 포함돼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조선시대 승려 관련 고신에는 ‘부종수교(扶宗樹敎)’라는 표현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진리를 붙들어 가르침을 세운다’는 의미로 차첩을 제외한 조선시대 승인 인사문서에 모두 사용되고 있으며 공명첩에도 쓰이는 법호이다.

“원래는 종교계를 이끄는 정신적 지주로 의미로 고승들의 존호를 내릴 때 사용되던 용어이나, 조선후기에는 이 용어가 흔한 용어로 일반화되어 공명첩에까지 쓰이고 있다”는 것이 전 연구원의 설명이다.

전영근 연구원은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승려를 팔반사천(八般私賤)의 하나로 규정한 이래 조선불교 연구자들은 이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조선후기 승려들의 고신을 분석해볼 때 국가에서는 일부 승려들에게 국가 관직을 수여함으로써 국가체계 포함시키고 있었으며, 이는 승려가 천민 신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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