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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정교분리론은 일제 도구로 전락한 불교계 대한 분노”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6.12.26 10:50
  • 댓글 0

김순석 연구원 주장

1910년대 『불교유신론』을 발표하고 정치권의 힘을 빌려 불교개혁론은 단행하려 했던 만해 한용운 스님은 1931년에는 정교를 분리하라며 불교계의 각성을 촉구했다. 만해 스님은 무엇 때문에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선언한 것일까.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은 12월 19일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열린 제229회 월례연구발표회에서 ‘한용운의 정교분리론 연구’를 발표했다. 김 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1910년대 만해 스님이 일본 여행에서 돌아와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할 당시 그에게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없었다. 오히려 공부하지 않고,  사회와 괴리돼가고 있는 불교계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러한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만해 스님은 국가 권력의 힘을 빌려 성취하고자 한다. 1910년 3월 중추원에 제출한 헌의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1931년 만해 스님은 『불교』제87집에 ‘정교(政敎)를 분립하라’는 글을 싣는다. 만해 스님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선언한 이유로 김 연구원은 세 요인을 꼽고 있다.

먼저 1920년대 후반 민족협동전선이 해소되고 독립운동의 주류로 등장한 사회주의 세력이 종교를 민족해방에 도움이 안되는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불교의 정체성을 수호하려는 차원에서 전개된 것이다.

두 번째는 식민지 권력과 타협하여 일신의 안락을 도모하는 30본사 주지들의 행태를 목격한 후 정치와 분리된 불교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 번째는 1929년 탄생한 조선불교선교양종중앙종무원이 총독부의 인가를 받지 못해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자 일제와의 결탁을 통해서는 결코 불교계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만해 스님은 ‘정교분리’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하면서 한반도에서만 유독 정교가 결탁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이 종교를 조선 수탈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식민지라는 모순의 시대에서 끝까지 한반도인으로서 살아가길 고집한 만해 스님은 결국 1931년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선언했다. 그 속에는 일제가 지배하는 정치구조 속에서 한반도인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분노과, 당시 불교계의 승려들이 민중들을 위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절망감이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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