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날 차례음식 나눠주는 법농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한성포교원, 98년부터 불우이웃에 자비의 손길

한가구당 7만원, 50가구에 무료 보시

작은 도움이 불우이웃에겐 큰 희망

설을 얼마 앞둔 서울 면목동 동원시장. 예년 같으면 차례상을 준비하기 위한 사람들로 시끌벅적할 만도 하지만 매서운 날씨 탓인지, 주머니 사정 때문인지 의외로 한산한 편이다. 이때 시장 한 귀퉁이의 과일 가게 앞에 자그마한 체구의 비구니 스님이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보살님, 저 왔심데이∼.”

“예, 또 오셨어요. 오늘 배랑 사과가 참 괜찮아요.”

“참말 좋아보이네예, 한 두어 상자주이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스님의 시장보기는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흥정도 한 번 없이 이렇게 싱겁게 끝났다. 그러나 주인은 과일들 틈에 꽂혀있는 가격보다 훨씬 싸게 물건을 건네준다. 스님이 이 과일들을 어디에 쓸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한성포교원 주지 법농 스님. 서울 면목동에서 포교당을 운영하는 스님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려운 이웃들 위해 차례 상을 마련해주고 있다. 지난 98년 포교당의 한 신도로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차례도 못 지내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듣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동사무소 직원과 불교방송 통신원 신도들이 추천한 중랑구 지역 50가구에 자비의 손길을 펼치고 있다. 스님은 이들에게 차례상을 밝힐 초와 향은 물론 음식 밤, 대추, 곶감, 배, 사과, 명태포 심지어 떡국을 할 수 있는 가래떡과 밀가루까지 전달해 주고 있다. 그것도 일일이 포장까지 해서….

처음 스님은 비용을 절약하고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포교원에서 합동차례를 지낼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 지역 불우한 이웃이 모두 불자는 아니고, 불교에 대해 거부감이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 물품을 장만해 직접 전달하기로 결정했던 것.



어린이-청소년 문화원 건립이 꿈



“한 번은 팔순을 훨씬 넘긴 할머니 댁을 방문했었습니다. 보살펴주는 자식도 없는 할머니에게 설이라고 해서 남들처럼 차례를 지낸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중에 할머니가 스님 덕에 조상님들을 봉양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작은 정성이 큰 희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돈 때문에 그만둘 수야 없지요.”

한 가구 당 드는 차례상 비용은 7만원 정도. 여기에 올해부터는 불자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포교원에서 합동으로 차례도 지낼 계획이다. 절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상태에서 300∼400만원을 쪼개기란 그리 수월한 일만은 아니다. 이럴 때면 스님은 2600년 전 철저히 계급화 된 인도사회에서 힘들고 배고픈 중생들을 법(法)을 설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전달했던 부처님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스님은 지식인들에게 불법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교가 낮아지고 낮아져서 가난한 뭇 중생의 위안처가 되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되새기곤 하는 것이다.

중생은 업력(業力)으로 살고 보살은 원력(願力)으로 산다고 했던가. 비록 현재의 포교당으로는 어림없지만 스님은 노숙자나 장애인들, 혼자 사는 노인이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삶의 빛을 주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 스님의 원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님의 포부는 단순히 설날 차례상 마련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님은 지난 96부터 부처님 오신날이 되면 종교를 가리지 않고 지역 내 어려운 자녀들을 찾아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으며, 어린이·청소년 문화원 설립의 원을 세우고 불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심전심일까. 스님의 마음이 불자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도 하나 둘 늘어갔고, 이중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도 기꺼이 내 놓는 경우도 있었다.



매년 10월 경로잔치-가족 체육대회



“세상이 아무리 척박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아직도 살만한 세상이라니까요.”

스님이 어린이·청소년 문제와 함께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은 온 가족이 찾는 포교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스님이 서울에서 개신교 비율이 가장 높다는 중랑구에 포교원을 내면서 바로 시작한 것이 바로 아버지 법회. 그들이 담소하고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 불교와 자연스럽게 친숙해질 수 있도록 했고, 나중에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사업에 힘을 모으도록 유도해 나갔다. 특히 아버지 법회가 주관해 매년 10월 열고 있는 경로잔치와 가족체육대회는 타 사찰 아버지법회에서도 함께 동참 할 의사를 밝혀 올만큼 자리를 잡았다.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는 것이 불교의 역할이며, 나의 수행”이라고 강조하는 스님. 그는 교리를 논리 정연하게 해석하거나 수행에 전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 곁으로 불교가 다가설 때 진정한 불교의 희망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스님은 어쩌면 침묵과 냉소로 굳어 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자비의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지도 몰랐다.



■법농스님이 말하는 불교식 차례



설이나 추석 때가 되면 대부분 가정에서 지내는 차례. 불교를 믿고 있다고 하더라도 차례는 유교식으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교식 차례방법에 대해 잘 몰라서 일수도 있지만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올 설은 푸짐한 차례상이 아닌 정성이 깃든 불교식 차례를 지내면 어떨까. 법농 스님이 말하는 불교식 차례를 소개한다.



① 음식은 고인이 즐기던 것을 주로 하되 육류는 가급적 피한다.

② 초와 향을 준비한다.

③ 흰 국화 등 현란하지 않은 꽃으로 장엄을 한다.

④ 위패에는 ‘선엄부000영가(先嚴父000靈駕)’나 ‘선자모000영가(先慈母000靈駕)’, ‘고조 할아버지 영가’ ‘할아버지 영가’ 등으로 쓴다.

⑤ 준비한 과일, 과자, 나물, 식혜 등을 비롯 정성껏 마련한 밥과 국을 준비한다.

⑥ 차례상을 차리고 초와 향을 키며, 제주는 다기에 차를 우릴 준비를 한다. 잘 우려낸 차를 올린 뒤 3번 절한다.

⑦ 경건한 마음으로 다 함께 금강경이나 아미타경을 독송한다.

⑧ 제주의 주관으로 조상님들의 극락정토 왕생을 기원하고 후손들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실 것 등을 발원한다.

⑨ 다시 3번 절한다.

⑩ 다함께 모여 음복한다.



글·사진=김형섭 기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