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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문턱 벗어나니 환자들이 보이더군요”

기자명 법보신문
  • 복지
  • 입력 2007.11.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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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직할자원봉사단 사리회 이 명 수 팀장

1994년 첫 안내 봉사…5000시간 훌쩍
불치병 극복 후 새벽기도 거른 적 없어

<사진설명>“봉사는 ‘아상’을 내려놓는 수행”이라는 이명수 씨는 병원 3곳에서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병명도 모르는 병을 어쩔 도리가 없군요.”

1975년 이명수(65·대자행) 씨는 병원에서 울부짖었다. 죄송하면 낫게 해 달라, 병명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애원했다. 온몸을 덮쳐오는 고통은 점점 몸도 마음도 딱딱하게 굳게 만들었다. 그러나 막내아들은 겨우 네 살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우이동 원통사를 찾았다. 과연 부처님이 있을까. 말을 듣지 않는 몸뚱이는 털썩 부처님 앞에 무너져 내렸다. 절박한 심정은 뜨거운 눈물로 흘렀다.

“부처님, 정말 당신이 있다면 제발 절 살려주세요. 우리 남편과 애들 어떻게 살라고…. 건강만 돌아오면 내 몸뚱이로 할 수 있는 일 다 할테니 살려만 주세요.”

관음보살이 또 한 개의 손이 필요했던 것일까. 건강이 돌아왔다. 덤(?)으로 주어진 삶. 그녀는 화장실 청소 등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했다. 문득, 아픈 몸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떠올랐다. 1994년 무작정 서울대병원을 찾아가 안내 봉사를 시작했다.

인연은 그녀를 도반에게 안내했고 도반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자원봉사 기본교육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1998년 교육을 수료하자 그녀는 매주 월요일 경희의료원 한방 안내를 시작했고, 여기에 2003년 매주 화, 수요일 고대 안암병원 안내 봉사가 추가됐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종일 서서 접수창구 옆을 지켜야하는 고된 안내 봉사가 모자랐던지 그녀의 봉사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생명나눔실천본부가 생기자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봉사자로 이름을 올렸고 길음종합사회복지관 역시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급식봉사자로 나섰다. 숨이 찼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답 대신 환한 웃음이 돌아왔다.

“봉사할 땐 ‘나’를 집에 두고 와야 해요. 힘들다는 것은 ‘나’를 알아주길 원해서 생기는 상이에요. 그것보다 아픈 분들도 다 부처님이요 내 거울인데 그분들의 손과 발 밖에 되어 주지 못한 것이 힘들죠.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지 못해서 속상해요.”

12년이 넘게 이어진 봉사활동은 5000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었다. 부처님과의 약속으로 시작된 봉사는 이미 그녀에게 ‘아상’을 놓는 수행이 돼있었던 것.

백발이 성성한 그녀는 건강을 회복한 이후 매일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관세음보살 보문품 10독, 화엄경 약찬게 독송을 해오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고대 안암병원. 그녀가 하는 봉사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외래 진료 신청서 작성 요령부터 대필, 처방전 발급기 안내도 자상하게 해주고 있었다. 또 휠체어를 타고 온 환자는 직접 휠체어를 끌어주며 게다가 접수창구로 오는 환자나 가족들에게 따뜻한 녹차와 둥굴레 차를 공양하기도.

“가끔 일이 생겨 하루 못가면 다음날 안부를 물어주는 환자나 직원들이 고마워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이 나이에 이렇게 행복한 줄 누가 알았겠어요.”

바쁜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나오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예뻐 안아주고 싶다는 그녀. 그녀가 막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에게 박꽃 같은 웃음을 건넨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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