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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 유행 후 불화에 수많은 붓다 등장”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7.11.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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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고진영 씨, ‘조선후기 다불회도’서 주장
“여러 부처 공경하면 더 많은 복 누린다…신앙화”

<사진설명>최근 일본의 한 사찰에서 발견된 한국 최고(最古)의 선묘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 조선전기에 왕실여인들이 ‘공덕’의 목적으로 제작한 선묘불화는 조선후기에 이르러 제작비용이 저렴하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더욱 선호됐다.

불화는 불자들의 예경 대상인 동시에 그것을 표현한 당대 사람들의 미의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불화에는 그 시대의 사회 경제적 변화와 예술적 안목을 읽을 수 있는 수많은 메타포들이 내포돼 있다.

11월 10일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10회 불교미술사학회에서는 조선후기 불화에 나타나는 변화상에 주목한 논문이 3편 발표돼 주목을 끌었다.

이날 발표에는 불교미술을 전공하는 3명의 연구자가 각각 조선후기 선묘불화와 다불회도, 그리고 19세기 불화에 나타난 연꽃 양식의 변화를 발표했다.

‘조선후기 다불회도(多佛繪圖) 연구’를 발표한 원광대 고진영 씨는 “조선후기 염불신앙의 유행이 다불회도의 확산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다불회도란 무수한 부처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으로, 대승불교의 발생 이후 모든 시공간에 수많은 부처가 존재한다고 하는 불타관의 변화가 생기면서 발생한 ‘다불사상’에 의거해 성립된 그림 양식이다.

고 씨는 다불회도의 조성배경으로 ‘염불신앙의 유행’을 꼽았다. “조선후기에는 염불신앙이 성행하여 만일동안 칭명염불하며 정토왕생을 바라는 만일염불회와 같은 법회가 자주 베풀어졌는데, 이러한 신앙이 깊어지면서 여러 부처를 공경하면 많은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여겨 염불에 대한 신앙이 계속 유지, 민간신앙화 됐다”는 것이다.

고 씨가 분석한 조선시대 다불회도의 특징은 다섯가지로 요약된다. 인도에서는 석굴 사원의 천정이나 벽면에 가득 채워진 다불이 관 수행에 도움을 주는 유용한 도구로서 그려진 반면 조선후기 다불회도는 대부분 예배의 대상으로 그려졌고 특히 전각을 따로 마련해 봉안했다는 것은 단독으로 신앙되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다불사상은 과거칠불, 아미타불 등의 주불과 함께 그려지면서 다불의 주체가 되는 주불이 등장한다는 점, 구도에 있어서는 많은 변화가 보이지만 부처의 수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특징을 보인다는 점, 아무타불 등 염불신앙과 관련된 특징이 보인다는 점, 그리고 조선후기 다불회도가 특히 충청남도 이남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남아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조선후기 선묘불화(線描佛畵)의 연구’를 발표한 홍익대 최지영 씨는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채색불화에 비해 공덕의 성격이 좀더 강조된 선묘불화가 후기에 이르면 경제적인 이유로 널리 유행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선묘불화란 신체에만 감색이나 홍색·흑색의 바탕에 채색을 하고 의습표현은 선을 위주로 묘사한 불화를 일컫는다. 고려시대 사경변상도와 고려불화의 바탕지와 금니 표현방식을 수용해 15세기경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선묘불화는 주로 왕실여인들의 ‘공덕’의 표현방식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선후기로 갈수록 선묘불화는 공덕의 성격보다는 선묘불화 제작이 가지는 경제적인 이점이 부각되면서 예배화로 널리 유행하기 시작한다.

즉 모든 부분을 채색해야 하는 일반적인 불화보다 선만 가지고 표현하는 선묘불화가 제작비용에 있어서 훨씬 저렴하다 보니 점차 선묘불화를 더욱 선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구대 교수학습계발센터 이경숙 연구원은 ‘19세기 불화에 나타난 연꽃 양식의 변천’에 주목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19세기 전반까지 관념적 느낌으로 표현되던 연꽃이 점차 후반기로 갈수록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화풍 내지 토속성이 강한 민화풍의 길상적인 표현들로 나타난다.

이 연구원은 “이러한 경향은 당시 불교계가 민중과 적극적인 교류를 했으며 19세기 중기에 나타난 동학의 이념과 신분질서의 와해 등에 힘입은 민중 문화에 전면에 드러낼 수 있는 통로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은 또 “실학과 함께 영정조 연간에 유행한 사실주의 정신은 19세기 불화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연꽃의 사실주의 화풍은 19세기 후반에서야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일반 회화의 사실주의 경향보다 늦은 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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