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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화재를 열정으로 바꾼 은사 스님

새해벽두에 불이 났다. 국보1호인 숭례문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마의 재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동안 방화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고 초기진압에 실패한 것이 화근이 되어 국보 1호를 잃게 되었다고 서로 책임전가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인류는 불을 발견하여 다루면서 급격한 문화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불에 의한 문화 파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약탈과 함께 방화는 크고 작은 모든 전쟁의 수식어처럼 되어버렸다. 비단 불뿐만 아닐 것이다. 무엇이든 다루면 양화가 되지만 잘못 다루면 악화가 되기 십상이다.「보왕삼매론」에서는 모든 장애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 인류의 문화수준을 한층 높여준 불이 하필이면 새해를 맞은 우리들 가슴에 큰 상처를 입혔다.

출가 초기 때 일이다.
큰법당에 부처님을 모시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기존 초가집 법당에서 한밤중에 화재가 났다. 인법당 구조였지만 옆방에 잠자던 신도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인명피해는 면했다. 하지만 예전 법당은 새 법당에 깨끗이 자리를 내어주듯 우리에게서 사라져 갔다.

화재보다도 뒷수습이 더 큰 문제였다.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했지만 내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다. 마침 은사 스님(혜인 스님)께서는 법문하시러 육지에 계셨다. 화재와 전혀 관계가 없는 대중들까지 불안에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신이 저지른 일 인양 불안했다.

당시 대중들은 생활과 수행원칙을 엄격히 지켜나가는 주지스님을 매우 무서워했다.
며칠 지나 스님께서 돌아오셔서 모두 주지실에 모여 있으라고 했다. 얼마나 긴장한 상태였는지 스님께서 사중에 도착했다는 말을 전하자 대중 한 사람이 까무러쳐 버렸다.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짐작이 가고 남을 일이였다. 스님께서 들어오시자 모두 염라대왕 앞의 죄인마냥 떨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항상 엄격하고 무섭기만 했던 스님께서는 “사중에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오직 주지의 덕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데, 덕 없는 나와 함께 살게 되어 모두들 놀라게 되었으니 내가 마땅히 참회 드리겠습니다.” 하시면서 모든 대중에게 참회하고, 화재로 마음고생 많았다고 사전에 준비하신 얼마간의 보시 봉투를 돌렸다.

일순간 그토록 긴장했던 마음이 화로에 눈 녹듯 녹아 버렸고, 감격에 북받친 대중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정말 통곡 할 정도로 펑펑 울었다. 그러면서 주신 보시를 받지 않겠다고 하자 꼭 받아야 자신의 부덕함이 면해진다고 고집하시는 스님과 때 아닌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날 이후 옛 법당 화재는 더 이상 악화가 아니었다. 비록 법당 하나가 불길에 사라졌지만 우리들 가슴에는 주범이 누군지, 화재 진압의 상황이 어땠는지 따위는 사라져 버리고 모두 스스로 책임을 자각하면서 불꽃같이 약천사 대작불사의 완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정말 엄청난 악재를 일순간 모두의 가슴에 열정으로 바꾸게 하신 스님의 사려 깊은 판단과 행동은 아직까지 내 가슴에 귀감이 되어있다.

잿더미로 변한 남대문을 본다. 타버린 문화유산보다 600년 세월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감동을 전해 줄 사람이 없는 현실이 더 마음 아프다. 국보의 소실을 비운의 서곡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이 난 이후 약천사가 더욱 힘차게 도약했듯이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국운이 새롭게 불꽃처럼 번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절망과 폐허 속에서 희망을 심어준 스님의 지혜가 오늘 아침 더욱 그립다. 

제주 약천사 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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