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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기억력 남달랐던 일타 스님

삼장법사 현장스님의 16년 동안의 인도 기행을 담은 『대당서역기』는 그 자체로도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서유기(손오공)』라는 중국 역대 최고 문학작품의 근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확한 묘사로 근대에 와서는 인도 불교문화유적지 발굴이나 학술탐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백마의 등에 불경을 가득 싣고 기러기의 길 안내를 받으며 파미르고원을 넘어 장안으로 돌아와 중원천지를 부처님의 자비로 물들게 하셨던 현장 스님. 그러나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서안에 백마의 공덕을 길이고자 백마사(白馬寺)를 짓고, 탑을 높이 쌓아 절을 창건하여 대안사(大雁寺), 소안사(小雁寺)로 이름 지어 기러기의 고마움을 추모 했을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스님께서 직접 갖고 오신 경전보다 암송하고 돌아온 경이 더 많았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 말을 믿지 못했는데 기억력이 탁월하신 스님을 만난 뒤에는 충분히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기억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단연 일타 큰스님인 것 같다.
한번은 어느 잡지사에서 1970년도에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는 소문을 듣고 큰스님을 졸라 기행문 형식의 글을 연재키로 했다. 기자를 만난 스님은 인도를 처음 방문한 날짜부터 순례한 모든 도시와 유적지,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막힘없이 말씀하셨다. 녹음까지 하던 기자는 말씀 도중 계속 메모를 하다가 지쳐서 말씀을 다 듣고 난 다음 스님께 혹시 자신이 잘못 기록한 것이 있을지 모르니 그러시지 마시고 가지고 계시는 원고를 주시면 안 되겠냐고 여쭈었다. 그러나 몇 시간동안을 줄줄이 말씀하신 모든 것들을 스님은 기억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것도 그 당시 벌써 20년이 넘었던 지난 일을.

큰스님의 세납이 일흔에 가까웠을 무렵 큰스님을 모시고 장시일 출타한 적이 있었다. 돌아 오셔서는 일정 중에 만난 사람들과 약속한 일들을 일일이 기억하시고 처리해 주셨다. 오히려 젊은 우리들은 어디를 다녔는지, 누굴 만났는지,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는데 노스님께서는 정확히 기억하시고 글씨를 부탁한 사람에게는 붓글씨를 보내주고, 책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반드시 책을 보내주시곤 하셨다.

어느 초파일날인가는 스님께서 지족암 뒤 산마루에 올라가셔서 초파일 등이 환하게 불 밝히고 있는 큰 절을 바라보시며 뭔가를 암송하시기 시작하셨다. 금방 끝나겠지 하면서 곁에 서 있었는데 무려 1시간 이상을 암송 하시는 것이었다. 나중에 무엇을 염송하셨냐고 물었더니 연등으로 장엄한 해인사의 정경을 보고 너무나 환희심이 나셔서 여러 경책에 있는 것 중에 불보살님에 대한 찬탄에 관한 게송들을 암송해 봤다고 하셨다.

또 스님께서는 100명에 육박하는 상좌들의 신상까지 일일이 기억하시고 오랜만에 만나면 그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일을 기억하시고는 그곳 선원에는 잘 다녔는지, 무슨 공부를 하고 있었다면 잘 마쳤는지 자상하게 물어보고 염려해 주셨다. 정말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셨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의 서곡으로 망각이 먼저 찾아오는 것 같다.
사람의 이름을 깜박 잊기도 하고 명칭들이 생각이 나지 않아 대화중에 애쓰는 모습을 자주 본다. 죽음은 망각이라는 사신을 보내서 우리들에게 준비하라고 서서히 타이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젊을 때는 잊지 못 할 일들로 인해 괴로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는 잊지 못해 괴로워하고 이제 나이가 들면 잊어 생각나지 않아 괴로운 걸 보면 누구에게나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인생은 참으로 공평 한 것 같다. 

제주 약천사 부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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