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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佛, 자연과 불교로 삶을 관조하다

기자명 법보신문
  • 불서
  • 입력 2008.03.03 16:45
  • 댓글 0

『왕유시전집』박삼수 역주 / 현암사

‘중년에는 자못 불도(佛道)를 좋아하였고
근간에는 또 종남산 기슭에서 살거니
흥취가 일면 매양 홀로 나서서는
마음이 흔쾌한 일들을 혼자서만 알 뿐이다
마냥 거닐다 흐르는 물 다하는 곳에 이르러선
앉아서 구름 이는 때의 장관을 바라보며
어쩌다 숲속의 노인을 만나기라도 하면
더불어 담소하느라 돌아갈 줄 모른다’

시불(詩佛) 왕유는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와 더불어 당시(唐詩)의 황금기를 이끈 대시인이다.
이백이 풍류 넘치는 삶을 살며 호방한 필치와 낭만적인 서정으로 시운을 만나지 못한 개인적 시름과 울분을 토로했다면 두보는 우국우민의 충정을 바탕으로 침울하면서도 사실적인 필치로 전란의 고통에 신음하는 민초들의 삶을 반영했다. 반면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힐(維摩詰, 유마) 거사에서 마힐(摩詰)을 자신의 자(字)로 삼을 정도로 불교에 심취했던 왕유. 그는 고뇌에 찬 삶을 살며 담박하면서도 고아한 필치로 세속적 번뇌에 얽매이지 않는 초탈의 미학을 완성했다. 그런 까닭에 왕유의 시는 불가의 선취(禪趣)와 자연의 정취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며 이는 속세를 떠난 서정의 극치로 이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왕유의 시적 재능은 ‘은둔’에만 머물지 않았다. 경제세민의 이상을 표출하는가 하면 현실사회의 불합리를 풍자하기도 하였다. 또 생애 전반에 걸쳐 창작된 교유시(交遊詩), 증별시(贈別詩), 그리고 일상생활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작품에서 묻어나는 은근하면서도 온후한 감정은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경치나 서정을 막론하고 그 언어를 잘 다듬어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찬사를 받는다. 이를테면 ‘눈발 흩날리는 하늘에 깊은 골목 한껏 고요하고/ 소복이 쌓인 흰 눈에 넓은 뜰 더욱 한가롭다.’ ‘저 먼 나무들 나그네를 대동해 가고/ 외로운 성곽은 쓸쓸히 석양을 마주하고 있다.’ 등에서 그 전형을 엿볼 수 있다.

왕유 연구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일컬어지는 박삼수 울산대 교수의 『왕유시전집』에는 이러한 왕유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현존하는 왕유 시 전부인 308편 376수 모두를 직역으로 옮기고 상세한 주석까지 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석에는 배경지식이 필요한 구절이나 옛 고사를 인용해 표현한 부분 등은 물론 연구자들 간의 상반된 견해, 왕유의 다른 시에서는 같은 내용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도 꼼꼼히 소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책 앞머리에는 왕유의 초상을 비롯해 남종 수묵산수화를 창시할 정도로 그림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왕유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과 후대 화가가 왕유의 작품을 모사한 그림 등을 삽입함으로써 그의 작품을 다각적으로 느끼도록 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그 누구도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현대사회.

그래서일까. 전원시인 도연명보다는 고통과 시련의 삶에서도 인생에 대한 통찰로 자신을 지켰던 왕유가 한층 큰 매력으로 와 닿는다. 3만8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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