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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불교 지성 슈미트하우젠 교수

'육식은 불성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동양 정신문화의 꽃 불교가 서구에 전해진 것은 불과 200여 년.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동양권에 비해 턱없이 짧은 역사지만 서구불교는 수많은 수행자와 불교학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불교학계를 이끄는 것이 서구라는 사실에 새삼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정도다. 오늘날 일반화된 연구방법론이 지극히 서구적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 필사본과 문헌자료들을 토대로 철저한 문헌학적 및 언어학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식학 대가-응용불교에도 큰 관심

독일의 불교학자 람버트 슈미트하우젠(63·Lambert Schmithausen) 교수는 이러한 서구 불교학계를 이끄는 세계적인 불교지성이다. 특히 그의 전공인 유식(唯識)분야에 있어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로 일컬어지고 있다.

1939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1963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유식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1973년부터 지금까지 함부르크대 인도학·티베트학연구소에서 정식 교수로 활동하며 수많은 불교논문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중 1987년 발간된 『아뢰야식(Alayavijnana)』과 같은 저술들은 이미 유식학의 고전으로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손꼽히고 있다. 그가 불교학자로서 돋보이는 것은 단순히 유식학의 대가라는 점에 있지 않다. '불교학은 고고학이나 지적 유희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삶의 철학'이어야 한다는 그는 1980년대 말부터는 탄탄한 불교문헌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윤리, 환경, 생명 문제 등 현대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불교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기 욕망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소유와 소비가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불교는 이런 소비와 소유문화가 자연의 착취와 자원의 낭비, 헛된 욕망을 부추기고 갈등을 초래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런 약탈과 약탈과 살육을 당연시 여기는 생활 방식에 경종을 울리고, 참다운 행복은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는데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붉은 포도주를 즐겨 마신다'는 그는 비록 불음주(不飮酒) 계는 지키지 못할지라도 나머지 계율은 철저히 지키려는 우바새(재가 남자불자)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고기류를 철저히 금하고 채식으로만 30년째 생활하고 있다. '70년대 초였습니다. 당시 12살 난 딸이 동물들이 고통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왜 인간은 다른 생명을 해쳐 그것을 즐겨 먹느냐'고 묻는 것 아니겠습니까. 딸과 한참동안 진지한 토론을 했습니다. 그 결과 딸의 논리가 옳다고 생각됐고 그 때부터 채식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30년째 채식 고수-계율 의식 철저

그는 이러한 생명관에서도 불교사상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많은 서양 철학자들이 '동물들은 감각능력이 없는 단순한 기계'라고 보았던 것과는 달리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이 불성을 갖고 있고 모두 부처가 될 존재들인데 어떻게 한 부처님이 다른 부처님을 먹을 수 있겠는가'하는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생명체를 자기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같이 살아가는 동일한 중생으로 생명을 이해하는 '공동체적 윤리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불교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슈미트하우젠 교수는 살생뿐 아니라 현재 사육되는 동물들이 생존해 있으면서 겪는 고통이 살해되는 고통보다 훨씬 크다고 말한다. 소비를 위해 사육된 동물들은 오늘날 행복하게는 아니더라도 생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조건마저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인간의 집단수용소에 비견되는 극히 비자연적인 조건 아래서 다만 고기와 달걀을 공급하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소비자의 절대 다수는 자신이 살생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러한 불특정 소비자를 위해 살생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능가경』에서는 소비자를 위해 살생할 경우 살해자 뿐 아니라 소비자 또한 동일한 업보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소비자는 비록 직접 죽이지는 않더라도 살생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지요.'

'기복은 불교 토대, 함부로 폄하 말아야'

서구 학자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슈미트하우젠 교수 역시 한국불교에 대해서 배워볼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인도철학회(회장 김선근)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1월 17일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리고 19일 출국을 앞두고 조계사를 방문했을 때 조계사에서는 마침 대학입시를 위한 기도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문헌학자이며 불교윤리학자인 그의 눈에 이러한 한국불교의 신행형태가 어떻게 비춰졌을까.

'초기불교에는 기복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모든 종교현상을 자신의 학문적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자칫 불교를 알맹이 없는 껍데기 불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내 의견을 밝히자면 이러한 신앙행위들은 불교라는 종교의 기본적인 토대로, 해탈과 열반으로 나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불자라고 하면 불교의 기본윤리인 오계를 지켜야 하는 만큼 이러한 신행형태 또한 불교의 오계에서 벗어나서는 안될 것입니다.'

슈미트하우젠 교수는 서구불교의 미래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이다.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세계 불교지도자들에게서 알 수 있듯 불교는 지적인 깊이뿐 아니라 인격의 완성에 있어서도 서구인의 기대에 충분히 부합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슈미트하우젠 교수. 그는 학문이란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철저한 배제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옳음' 혹은 '진리'에 대한 자기 확신을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립된 '옳음'을 이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적용·실천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학자들의 몫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참다운 지성인'이었다.



슈미트하우젠 교수가 말하는 한국불교학 세계화 방법 3가지

논문 영문 발간-원전어 완전 습득



슈미트하우젠 교수는 한국불교학을 세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 첫 번째는 논문이나 저술을 영문으로 발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논문이 있어도 다른 나라에서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 세계 불교학계의 보편어로 자리잡은 영어로 한국불교 및 한국불교학의 성과를 알려야 된다는 것.

독일어나 불어, 일본어로 쓴 논문조차 그 파급효과가 적은 상황에서 한국어로 쓴 논문을 그들이 읽기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세계적인 권위자들에게서 한국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옛날 한국이나 일본 스님들이 불교를 배우기 위해 중국이나 인도로 갔듯 수많은 학술잡지와 필사본을 접할 수 있는 곳에서 공부할 때 보다 빨리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범어와 팔리어에 대한 완벽한 습득을 꼽았다. 굳이 인도불교를 전공하지 않고 중국불교나 한국불교를 공부하더라도 불교 원전어에 대한 이해는 불교를 보다 폭넓고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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