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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한국정치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뜨거운 8월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의 탓도 크지만 짜증스런 나라 안팎의 움직임이 더욱 사람들을 뜨겁게 만든다. 마르땡 뒤 가르의 소설 좬티보가의 사람들좭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8월, 여름의 달이요, 휴가의 달이다.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려 하는 것인가? 전쟁이냐 혁명이냐 아니면 평화냐?”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의 프랑스 사회상을 묘사한 이 소설의 한 구절이 지금 우리 현실에도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광우병 촛불집회에 이어 독도 문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물가인상 등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시민들로 하여금 평화로운 휴가를 보내기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 와중에 예순 세 번째 광복절을 맞았다. 그런데 광복 63주년이 아니라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 8월 15일이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바뀐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일부 여당의원들은 아예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법안까지 제출했다. 헌법 전문(前文)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헌법정신을 무시하면서까지 왜 굳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교과서 독도 영유권 표기, 미국지명위원회의 독도 귀속국가 명칭변경 파문 등 연이은 독도 문제를 생각하면 독립운동의 역사와 광복의 의미를 더 부각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어느 야당 국회의원이 밝힌 사실은 더욱 짜증스럽다. 정부가 쇠고기 협상 이후 미국산 쇠고기 홍보비용으로 쓴 돈이 45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정부가 쓴 돈이니까 물론 국민이 낸 세금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다른 나라의 제품을 홍보한 셈이다. 지난해 예산을 통과시킬 때는 이 항목이 없었을 테니까 이 돈을 쓰는 과정에서 당연히 예산전용 등의 행위가 있었을 것이다. 역시 이해가 잘 안 되는 무리한 예산집행으로 보인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 지원 예산은 8억1700만원이고, 장애학생통합교육기반구축 예산은 17억3300만원이다. 이 45억원을 학교 폭력에 상처받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장애학생들을 위해 썼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정말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이다. 8월 24일까지 열릴 베이징 올림픽은 전 세계 205개 나라 1만5000여명의 선수들이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향해 벌이는 축제이다.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은 이렇게 말했다. “올림픽 운동은 세계에 하나의 이상을 심어주는 일이며, 그 이상은 바로 현실생활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기쁨, 미와 교양, 가정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노동, 이상 세 가지”라고.

그러나 올림픽이 만사형통은 아니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박태환의 금메달이 온 국민을 기쁘게 만들어 주었지만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여자양궁의 6연패가 국민의 자긍심을 높여 주었지만 독도를 탐하는 일본의 태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최민호의 금메달과 진종오의 금메달이 인간승리의 감동을 주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삶의 질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올림픽에 빠져 있는 사이에 우리가 놓쳐버리는 것은 없을까. 지난 2002년. 아직도 우리 국민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빛나는 4강의 기억.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던 거리응원. 한일공동월드컵이 열렸던 6월 한 달 동안 한국의 거리와 한국인의 마음은 온통 붉은 빛이었다. 붉은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한국사회는 월드컵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월드컵으로 하루가 마감되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치러졌던 6.13 지방선거는 사상 최저인 40%대 투표율에 그쳤다. 이번 올림픽 기간에도 그럴 조짐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KBS 사장의 파면을 강행했다. 검찰의 이른바 언니게이트 수사는 축소의혹을 받고 있다. 세 달 전에 발생한 국방부 납품 로비 의혹을 왜 하필이면 지금 발표했는지도 의문스럽다. 아무리 더워도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겠다.

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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