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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적 ‘나’ 버리고 깨어있는 ‘나’ 찾으라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8.12.16 19:45
  • 댓글 0

밝은사람들, 13일 ‘나’ 학술연찬회 개최
불교․서양철학․심리학․과학 등 다각적 조명

대부분 사람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나’다. 그러나 막상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되면 말문이 탁 막히는 것도 바로 ‘나’라는 단어다. 그러면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나’의 삶을 이끌어 갈 것인가.

밝은사람들 연구소(소장 박찬욱)이 12월 1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 ‘나, 버릴 것인가 찾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학술연찬회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학문적 논의의 중요주제가 되고 있는 ‘나’에 대한 다각적이고 깊은 통찰을 보여준 자리였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날 연찬회에서는 인간 내면의 문제에 가장 깊은 통찰이라 일컬어지는 불교(초기․중관 및 유식․선)에서의 관점을 비롯해 실존철학, 정신분석학 및 정신의학, 심리학 및 심리치료, 신경계와 면역계에 기반한 복잡계과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나’의 문제를 심도 있게 조명했다.

‘먼저 초기불교의 나 또는 자아’에 대해 발표한 정준영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불교학과 교수는 오온(五蘊)의 무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초기불교에서는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를 부정한다고 밝혔다. 정 교수에 따르면 초기불교에서 ‘나’라는 것은 버릴 수도 찾을 수도 없는, 애당초 실재하지 않는 희론적 개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초기불교가 인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은 현실 안에서 창조적인 의지와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 완전해지는 존재이지 확인할 수 없는 고정불변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허인섭 덕성여대 인문학부 교수는 ‘나’라고 하는 주체적 자아개념의 확립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님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해 중관불교와 유식불교에서의 ‘자아관’을 꼼꼼히 검토했다. 즉 초기불교의 무아론을 계승해 ‘공(空)’이라는 부정논리를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킨 용수와 무아론과 연기론을 의식의 차원에서 전개해 심화시킨 세친에 대한 고찰했다. 허 교수는 이를 통해 실체적 자아가 용수에게서는 이중부정을 통해 제거되어야 할 개념일 뿐이며, 세친에게는 말라식이 잘못 정위(定位)시킨 개념적 존재일 뿐이라는 점을 규명했다. 요컨대 ‘경험적인 나’는 분명 존재하지만 ‘실체적인 나’는 우리의 인식경험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그것을 찾아 헤매는 일은 결국 헛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온갖 고통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결론적으로 붓다가 부정한 것은 허구적인 불변의 절대적 자아이며, 불교가 긍정하는 자아는 구체적이고 동적인 자아임을 강조했다.

김진무 불교문화연구원 교수는 먼저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유가와 도가와의 관계 속에서 ‘참나(眞我)’의 개념이 변용되어가는 과정을 혜원, 도생, 구마라집 등을 통해 조명했다. 중국선종의 정맥은 혜능 이후의 남종선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의 기본 입장은 ‘불성=자성=자심=참나’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선종의 입장은 분명 ‘나’를 찾는 것이고, 반면 망념과 망상에 빠져 불성을 보지 못하는 나는 버려야 할 나라는 것. 하지만 이는 너무나 단순한 형식논리로, 이 둘은 상대적인 입장에서의 논단임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따라서 선에서는 ‘지금 이 자리(當下)’를 바로 ‘본래 참나가 실현되어 드러난 상태(本來現成)’로 보고, 끊임없이 ‘한 생각(一念)의 어리석음(迷)·깨달음(悟)’을 부여잡고, ‘자기가 현재 서 있는 자리를 살필 것(照顧脚下)’을 강조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서양철학의 자아관을 실존철학, 특히 하이데거와 프롬과 니체의 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들에게 있어 ‘나’라는 것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서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진정한 자아 혹은 통일된 자아는 형성되고 창조돼야 한다. 또 진정한 자아는 사랑, 지혜, 절제 등 이성적인 덕을 실현한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들에게서 나는 버릴 수 있는 것도 찾아야 할 것도 아니며, 다만 이들의 개념들 속에서 굳이 이를 전개해 본다면 하이데거에서는 본래적인 실존가능성, 프롬에게서는 존재지향적인 자아, 니체에게서는 우아한 자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김종주 반포신경정신과의원 원장 겸 라깡정신분석연구소장은 프로이트와 라깡의 정신의학 관점에서 ‘나’의 문제를 검토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프로이트에게서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 자리하는 심급으로 여겨지며, 그런 까닭에 자아는 서로 모순되는 요구들을 화해시키는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 또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라깡은 자아를 하나의 주변 대상에 불과하다고 보며, 그의 정신분석의 기초가 되는 거울단계에서 자아를 거울상과 동일시한다는 것. 요컨대 자아는 주체에 반대되는 상상적인 형성물로, 라깡에 의하면 우리의 정신을 옥죄는 고통스럽고 거추장스런 갑옷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라깡에게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발견이야말로 ‘자아’개념과 대비되는 커다란 업적이라는 게 김 원장의 평가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학과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나’의 문제를 다뤘다. 심리학에서는 자기, 자아, 자기개념, 자기표상, 자기지식, 자기체계, 자기상, 자아정체감 등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는데, 그만큼 자기라는 심리적 현상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것. 특히 심리학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나’를 보존하고 강화하며 확대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라는 자기개념이야말로 삶의 근간을 이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권 교수는 이런 자기개념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관념적인 기억체계로 존재론적 실체는 아니라고 보며, 이러한 입장은 불교의 무아론과 상충하지 않을뿐더러 이것은 불교적 명상이 심리치료에 응용되는 기반이 됨을 강조했다.

모든 생명체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나’라는 개체고유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내몸’이라는 물질적 터전이 선행돼야 한다. 이는 다시 신체의 고유성을 결정하는 면역계와 정신적 고유성을 만드는 신경계로 구성되는데, 이 둘은 상호 연결된 하나의 통합된 체제로 전형적인 복잡계 구조를 이룬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이런 자연과학적 결과의 토대 위에서 다시 불교의 깨달음 문제로 나아갔다. 불교의 깨달음 구조 역시 전형적인 복잡계 구조로서, 그 특징인 자기조직적 창발 현상을 나타낸다는 것. 깨달음의 결과가 일상에서 늘 ‘깨어 있는’ 나이고, 따라서 불교의 아상我相 개념에 대한 적극적 해석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즉 열린 관계(無相·無住) 속에 놓여 있을 때 ‘나’라는 아상은 더 이상 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이번 학술연찬회를 기획한 박찬욱 밝은사람들 연구소장은 “우리 삶에서 상생적 인간관계는 행복의 주요열쇠이므로 나와 너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도 ‘나’에 대한 바른 이해는 절실히 필요하다”며 “이번 학술연찬회가 각자의 삶을 성찰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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