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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 스님의 가피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생명에 대한 긍정이 무량가피의 길

세계의 3대 종교라고 불리우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저 마다의 교리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상호대비 되는 가운데 특유의 공통점이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관점이다. 법화경에서는 궁자의 비유라 하는 내용이 기독교에서는 탕자의 비유로 등장하고, 코란에서는 114장 스라투안나스, 알라를 벗어나 악마의 유혹에 진 인간을 그리고 있다. 환희의 세계를 떠나 갖가지 고통 속에 있는 존재로 인간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부처님 전에 엎드리면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는 이유는 왜인가? 부처님께서는 법당을 이고득락(離苦得樂)케 하는 안락의 전당이요. 전미개오(轉迷開悟)케 하는 지혜의 전당이라 하셨다. 창호지 문에 바늘구멍을 내면 찬연한 한줄기 햇살이 흘러들 듯이 부처님을 만나면 한줄기 빛이 흘러들어는 것을 느낀다. 집 떠난 아들이 아버지 집을 찾아들어 얻는 한줄기 평안에 비유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모든 종교가 인간에 대해 어떤 공통점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진정 부처님을 만나면 고통스러웠던 우리의 가슴은 즐거움으로 변한다. 가출했다 돌아온 탕자, 궁자가 되는 것이다. 부처님 품안에 들어서면 우리들은 풍요의 마음으로 변하고 끌어들이려고 악을 쓰던 마음도 베풀고픈 마음, 주고픈 마음, 비우고픈 마음이 된다. 부처님 마음이, 부처님 말씀이 나를 풍요로운 존재로 승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질인 부처님의 사랑과 자비심으로부터 떠나있기에 궁자가 된 것이고 탕자가 된 것이다.

인간의 고통의 원천은 부처님을 등지고 마음가운데서 부처님을 출타시키거나 부처님께서 졸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베풀라, 주라, 비우라, 항상 입버릇처럼 얘기하고 듣지만 남에게 준다는 것, 베푼다는 것, 비운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을 수반하는 일인가? 줄 수 있다는 것, 버릴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고통을 이겨내지 않고는 힘겨운 일이다. 위대한 인간의 뒤안길에 위대한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중근 의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는 물론 가족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버리고 비우고 베풀지 않는 한 우리는 가벼워질 수 없다. 성불의 길을 나아갈 수 없다. 진보를 위해 고통을 극복해야만 한다. 수행의 길은 나를 부수는 길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부처님 전에 모이는 이유는 나를 부수는 길을 통해, 그 같은 고통을 극복하는 자세를 통해 성불의 길을 열어가기 위해서다.

외롭다, 괴롭다, 말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마음 가운데 부처님을 떠나고 중생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처님을 등져있기에 외롭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도리를 분명히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분신이고 부처님의 아들, 딸인데 부처님을 등진다는 것은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은 곧바로 고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부처님을 따르는 것,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우리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긍정이어서 무량가피의 길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부처님 품 안에 안겨 부처님 가르침을 배운다는 것은 본질로의 회귀요 탕자, 궁자가 아버지 집을 찾아드는 것과 꼭 같은 상황이다. 부모 떠난 자식들을 생각해 보라. 부처님 품을 다시 찾은 경우 펼쳐지는 무한한 가피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지 않는가? 부처님을 찾으면 찾을수록 부처님의 가피는 더욱 더 투철해질 것이 아니겠는가?

수행을 하면 할수록 부처님 참뜻을 깨닫게 되며 부처님의 무량한 가피를 체험할 수밖에 없다. 부처님을 떠나면 고통이요 고통은 우리가 지은 죗값이다. 우리는 죄를 하염없이 짓고 살면서도 반성을 모른다. 반성이 없는 곳에 가피는 없다. 궁자의 마음 탕자의 마음이 되어 끊임없는 죄를 짓던 지난날을 내던지고 부처님 전에 몸과 마음을 던지는 곳에 무량한 가피가 함께 하시리라!
 
지광 스님 서울 능인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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