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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서 달을 보다]학림사 조실 한암 대원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입으로 ‘이뭣고’하면 연못서 달 건지는 격

화두 놓치지 않겠다고
붙잡고 집착하면 안 돼
순일한 의단독로 속
삼매 얻으면 곧 소식

1973년 대원 스님은 해인총림 방장으로 주석하고 있는 고암 스님을 찾아갔다. 고암 스님이 물었다.
“정전백수자(庭前百樹子) 화두는 몇 년이나 들었는가?”
“8년 참구했습니다.”
“잣나무 꼭대기 위에서 손을 놓고 한 걸음 나아갔을 때 어떤 것이 너의 본래면목인가?”
고암 스님의 한 마디가 떨어진 순간, 대원 스님은 박장대소 했다. 홀연히 깨우친 바가 있었던 것이다.
“무슨 기특한 일이 있기에 웃는가! 속히 일러라.”
“한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다. 다시 말하라.”
이에 대원 스님은 삼배를 올리고 말했다.
“설사 천언만구를 다 이른다 해도 이 속에 있어서 상신실명 합니다.”

대원 스님은 문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와 앉았다. 고암 스님은 대원 스님을 벼랑 끝에 세워놓고 마조원상은 물론 1700공안에 대해 물었다. 여기서 우물쭈물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대원 스님은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즉답으로 응했다. 생사기로에 섰던 대원 스님은 꿋꿋하게 살아남아 시 한수를 고암 스님께 올렸다.

“홀연히 잣나무 꼭대기에서 손을 놓고 한걸음 나아가라는 말을 듣고/ 확연히 의심 덩어리 녹아 알았네./ 밝은 달은 홀로 드러나고 맑은 바람은 새로운데/ 늠름히 비로자나 이마 위를 활보함이로다.(忽聞栢頭手放語 廓然銷覺疑團處 明月獨露淸風新 凜凜闊步毘盧頂)”
대원 스님의 오도송을 받은 고암 스님은 그 즉시 전법게를 내렸다.

“불조가 전한 심법은/ 알지도 못하고 또한 알지도 못함이라./ 조주의 차 맛이 일미이거니/ 남전의 달이 정히 밝도다.(佛祖傳心法 不識又不會 趙州茶一味 南泉月正明)”
이 법거량이 있은지 10여년이 지난 후인 1986년 고암 스님은 서울 대각사에서 전법식을 열어 대원 스님에게 법장과 불자, 가사, 발우를 신표로 전했다. 용성, 고암에서 대원으로 법맥이 이어진 것이다.

동산, 효봉, 고암, 경봉, 전강, 향곡, 성철, 구산, 월산 스님 등 당대 내로라하는 선지식으로부터 선의 진수를 이어 받은 한암 대원 스님은 공주 계룡산 학림사 조실로 주석하고 있다. 학림사 오등선원은 결제 땐 물론이고, 산철에도 20여명의 선객이 방부를 들여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용맹정진 도량으로 유명하며, 오등시민선원도 열어 재가불자들의 선지도 밝히고 있다. 제방 선객이 대원 스님을 이야기 할 때 주저 없이 떠올리는 말이 ‘선교겸수 내외명철’이다. 따라서 오등선원(시민)은 여느 선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선풍이 지금도 진작되고 있다.

해제철을 맞아 대원 스님을 찾았던 연유 중 하나는 법거량에 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였다. 나아가 법거량에 대한 의문을 풀다보면 자연스럽게 간화선의 정수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법거량을 하기 위해 찾아 온 선객을 척 보는 순간 그 사람의 경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하수끼리는 몰라도 고수와 고수의 만남, 고수와 하수의 만남에서는 첫 대면 순간 오고가는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대원 스님은 한 거사가 찾아와 당차게 물었던 기억 한 토막을 되살렸다.
한 거사가 학림사(鶴林寺)에 당도해 대원 스님을 뵙자마자 물었다. “여기가 학림사라고 하는데 학이 몇 마리나 있습니까?” 이에 대원 스님은 “알겠는가?”하고 벼락같은 고함을 토했다. 거사는 다시 “몇 근이나 됩니까?”하고 물었다. 스님은 물음이 끝나자마자 주장자로 어깨를 한 대 치고 “이제 몇 근인지 아시겠습니까?”하고 다시 물었다. 거사는 말이 없었다. 대원 스님은 다시 “몇 근인지 알겠느냐고 물었으면 아니면 아니다 맞으면 맞다 해야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아니라고 하면 내가 그대에 맞게 대답해 줄 수 있어.” 거사는 말이 없었다.

선어록 읽고 분별 하면
법거량은 이미 틀린 일
신심-수행력 쇠약할 때도
선지식 찾아 방도 구해야

“거량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말을 하면 확실하게 옳다, 아니다 확실하게 짚어 놓고 다음 것을 물어야 합니다. 선어록 좀 읽었다 해서 이렇게 말하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면 저렇게 말하려 한다면 벌써 틀린 겁니다.”

그렇다. 그 거사는 옛 선사 흉내를 낸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점검하기보다 스님을 저울질 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학림사(鶴林寺)라는 절 이름을 놓고 ‘학이 몇 마리 있느냐?’고 물은 것은 덕산이 보인 선지를 한 번 흉내 내 본 것에 다름 아니다.

덕산 선사는 길에서 한 노파의 ‘어느 곳에 점심(點心)하겠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해 쩔쩔 매었다. 그 노파는 용담 스님을 찾아가 보라 권한다. 덕산은 곧장 용담(龍潭)을 찾아가 보자마자 ‘직접 와서 보니 못도 없고 용도 없으니 어찌 이곳을 용담이라 할 수 있는가!’하고 선수 쳤다. 기개만은 살아 있었던 것이다. 용담 스님은 즉답했다. “그대가 정녕 용담에 이르렀다.” 어쭙잖은 사족을 달자면 ‘용담’이 없다고 큰 소리 친 그대가 한 번 나에게 일러 일대사 인연을 풀어보라는 말이다. 그러나 덕산은 말이 없었다. 용담의 대 역전승이다.

덕산은 그날 저녁 용담에게 가르침을 받으려 했으나 용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려는 순간 덕산은 용담에게 말한다. “스님, 밖이 너무나 캄캄 합니다.” 그러자 용담 스님은 호롱불을 덕산에게 건넸다. 덕산이 불을 받아 나가려는 순간, 용담 스님이 불을 확 꺼 버렸다. 그 순간 덕산은 활연대오했다. 그리고는 말한다. “앞으로는 절대 선지식들의 말을 의심치 않겠습니다.”

그 거사 역시 대원 스님 앞에서 자신의 기개로 선수 쳐 보았으나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알겠는가?’했을 때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려야 했거늘 그것도 모자라 동산의 ‘마삼근’을 빗대 ‘몇 근이냐?’또 물었으니 돌아갈 것은 하나뿐이다.

“화두를 타파한다고 하니 무엇인가를 알아서 해결 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겁니다. 화두를 관하는 것은 내 자성을 보고 깨달으려 하는 것입니다, 결코 화두에 집착하는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를 놓치지 않겠다고 입으로만 ‘이뭣고 이뭣고’, ‘조사서래의 조사서래의’하면 이건 선도 아니고 염불도 아닙니다. ‘이것이 무엇이냐?’하고 지극한 의심을 품어야 합니다. 그 지극함 속에 화두가 살고 성성해지면 분명한 소식이 있습니다. 번신일전(身一轉)이라. 어떤 경계에 이르러서는 몸을 뒤집어엎어서 한 번 돌려야 합니다.”

대원 스님은 동안상찰 선사의 ‘십현담’ 중 일구를 예로 들며 화두의 본뜻을 전했다.
만고의 푸른 못에 하늘에 있는 달이 들어 있다(萬古碧塘空界月).
물속에 있는 달을 몇 번이고 거듭 건지다가 홀연히 머리를 들고 하늘을 보고 비로소 알았다(再三撈始應知).

“원숭이가 못 속의 달을 건져 보지만 달은 없고 물만 있지요. 그럼에도 계속 못 속의 달을 건져봅니다. 결국 탈진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는데 바로 자기 머리 위에 달이 있어요. ‘속았구나!’ 그 순간 진짜 달을 본겁니다. 조주 스님도 우리에게 ‘무(無)’라는 ‘달’을 전했지만 우리는 그게 달인 줄 모릅니다. 그러니 의심할 수밖에요. 이상하다.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물었는데 왜 ‘무’라고만 했을까? 일구를 순일하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냥, 무, 무, 무 하면서 입으로만 하고 생각만 하면 원숭이가 물 뜨는 격일뿐입니다.”

그렇다면 선객은 언제 선지식을 만나 법거량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분명 선객자신은 자신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기에 점검 받는 것인데 도대체 언제 선지식 앞에 나서야 할 때임을 알 수 있는가!

“언제 법거량을 해야 하는지는 본인이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단 한 번의 법거량으로 모든 게 끝날 것이라 생각한다면 대근기를 갖지 않은 사람인 이상 오산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화두를 잡고, 어떤 마음으로 선지식을 찾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또한 법거량만 하려고 선지식을 만나는 건 아닙니다. 신심이나 수행력이 쇠약할 때, 선병이 있을 때, 무기공에 떨어졌을 때도 찾아가 살 방도를 물어야 합니다.”

아마도 대원 스님은 이 말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화두를 순일하게 들어라! 그리고 사량분별은 내려놓고 진솔한 자신의 살림살이를 선지식 앞에 떳떳하게 내놓아라!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조실 스님에게 꼭 여쭈어 볼 것이 있었다. 왜 선에서는 공(空)인가!
“화두를 타파해야 공을 체득합니다. 그 이전에 이론과 문자로 아는 것은 이해일 뿐입니다. 공을 체득해야만 생사(生死)를 확실히 벗어날 수 있으며, 마음의 눈을 뜰 수 있고, 그 때 지혜가 돈발합니다. 부처와 중생, 있다, 없다의 양변까지 무너진 자리까지 확실히 체득하면 이후에는 공(空) 마저도 일체 남음 없이 사라집니다.”

대원 스님의 이 한마디에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의 세계가 농축돼 있다. 순간, ‘구공이 펼쳐진 자리서 그냥 일어설 수만은 없다’는 한 생각이 스쳤다. 한 30방 맞을 각오로 여쭈어 보았다.

“어떤 것이 공입니까?”
“반딧불이 해와 달을 삼키도다.”
“어떤 것이 공이고 색입니까?”
“거북이 털이요 토끼 뿔이로다.”
“공도 색도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공주, 서울에 부는 바람은 한 가지라.”
일문(一問)에 이미 어깨로 내려쳐져야 할 주장자는 조실 스님 곁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분명, 법보신문 독자를 위한 대원 스님의 선심(禪心)이 작용했다. 이 세 마디에 마음 닿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말고 계룡산 학림사 오등선원(시민)의 문을 두드려 볼 일이다. 명철한 선미를 맛볼 것임에 틀림없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대원 스님은

1942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해 1958년 상주 남장사로 출가했다. 혼해, 고봉, 석릉, 관응, 호경 스님 등으로부터 일대시교를 이수한 후 혼해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이후 상원사, 동화사,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정진했으며 고암 스님으로부터 전법을 이어 받았다. 현재 공주 학림사 조실로 주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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