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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시론]전투적 국가스포츠의 망령

기자명 법보신문

이강옥 영남대 국어국문과 교수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연아 선수가 세계피겨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 선수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일본 선수들을 물리쳤기에 그 기쁨은 더하다고들 했다. 중계방송은 시종 일본 선수와 김연아를 대비시키며 승리의 기쁨을 증폭시켰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대한민국이 김연아 선수를 통하여 야구의 패배를 설욕하려고 꾀를 썼다는 음모론까지 떠돌았다.

분명 두 나라 사람들은 쉽게 씻을 수 없는 집단적 업을 쌓고 있는 것 같다. 춤과 회전, 도약이 어울어지는 피겨 선수의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 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그들의 간절한 수행이 떠올라 숙연해진다. 피겨 선수는 상대를 쓰러뜨리고 자기가 이기려 하지 않는다. 끝없는 자기 극복의 과정이  바로 피겨인 듯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와 일본이 다섯 번이나 겨룬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기간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일본과의 경기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졸이게 했다. 필자도 야구 중계 보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때만큼은 조용한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럭저럭 이룬 내 마음의 평정을 흩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었다. 집의 텔레비전을 끈다고 하여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함성 소리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마침 조계사 앞마당에 걸린 연등들이 ‘힘내라! 대한민국’이라는 선명한 문구를 만들었다. 조계사 쪽에서는 그 문구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경제 불황에 고통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신문에서는 그 문구가 일본과 마지막 경기를 남기고 있는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과연 결승전의 한국 응원단이 내건 플래카드에도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매스컴은 두 나라가 경기를 할 때면 거의 예외 없이 국민들의 경쟁 심리는 물론 적대감까지 일으킨다. 경기 예고 방송 문구가 그러하고 경기 중 중계자의 언어가 그러하며 경기 결과에 대한 보도의 자세도 그러하다. 그러니 경기를 보는 국민의 마음이 느긋하기는 글렀다. 잠시 평정을 잃더라도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니 뭘 그렇게 따지느냐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도 이긴다는 전제에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두 나라 국민들은 마음 속에 업만 쌓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스포츠 경기에서 국민적 흥분이 극에 이른 때와 경제나 정치의 위기가 고조된 때가 겹친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양국 간 스포츠 경기를 보도하는 매스컴들이 위기에 처한 정권의 해결사 노릇을 하거나 그 정권에 부회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불교계의 처신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불교는 매스컴에 의해 조장되는 국가 간 지역 간 경쟁 심리나 적대감을 누그러뜨려 주고 중생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방법을 고심해야지 분위기에 편승해서 경쟁을 부추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건 축원의 자세와 근본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다. 불교에서의 축원은 경쟁하는 두 쪽 중 한쪽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방적 축원은 결국 한쪽의 웃음을 위해 다른 쪽의 눈물을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원은 이기고 지거나 얻고 잃는 관계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쪽이든 상처를 입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축원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전투적 국가 스포츠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불교의 참 정신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라면, 스포츠를 즐기되 집착하지 않으며,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응원하되 경쟁적 국가 이데올로기를 이끌어오지 않을 것이다. 국적과 성별, 종교와 지역을 넘어서서 패자에게는 인욕의 미덕을 알려주자. 승자에게는 축하를 보내지만 그에 집착하지 않는 겸양의 마음을 일으키도록 도와주자. 마침내 자기 극복의 도정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자신의 수행 자세를 되돌아보자.

이강옥 영남대 국어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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