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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시론]반딧불 희망

기자명 법보신문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오체투지. 두 무릎, 두 팔꿈치, 이마. 몸의 다섯 곳이 땅에 닿는 절이다. 불자라면 누구나 오체투지 앞에 옷깃을 여밀성 싶다. 지금 이 순간도 히말라야 산맥 어디선가 불자들이 설원을 오체투지로 가로지를 터다. 상상만 해도 사뭇 경건해진다. 하지만 히말라야만이 아니다. 이 땅에서도 오체투지의 수행이 진지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미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 오체투지의 길(2008년 9월4일~10월26일)을 걸어온 수경 스님이 다시 길을 나섰다. 지난 3월28일, 계룡산 신원사에서 출발해 하루 4㎞ 정도씩 서울로 북상하고 있다.

쉽지 않은 결단이다. 더구나 수경 스님은 75일에 걸칠 오체투지의 길을 떠나기 전에 한국 불교에 회한을 토로했다. 화계사를 찾은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였다. “근자엔 용산 참사를 대하는 불교계의 어른들이나 중진들의 시각을 보면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종교계,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불교계를 바라보면서 불교를 통해 우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길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닌가하는 심정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딱히 불교만을 겨냥한 개탄은 아니었다. 수경 스님은 “우리 사회에 종교가 있는지, 성직자가 있는지 자꾸만 의문이 든다”며 종교 일반을 거론한 뒤 쓸쓸하게 말했다. “반딧불만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수경 스님-문규현 신부와 더불어 오체투지에 참가하고 있는 전종훈 신부도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면서 그 “결정판이 용산 참사”라고 고발했다. 그는 “이들과 함께하고 아파해야 할 종교와 성직자들이 현장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은 가장 큰 아픔이었다”고 부연했다.

그랬다. 비단 불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불교’가 아니라 ‘종교 일반’으로 돌린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는 것도 결코 아니다. 용산 참사를 거치면서 드러난 불교 종단들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실망스러웠다. 그 정점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경제난 극복·국민화합 기원 대법회’다. 법회에는 한국불교 종단협의회장인 지관 스님을 비롯해 각 불교종단 관계자들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참석했다

물론, 불교계가 경제난 극복을 위해 대법회를 연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법회에 뜬금없이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했다. 그는 축사를 통해 “지금 세계 모든 나라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속에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라고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교계가 전개하는 자비와 나눔 운동은 우리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언죽번죽 말했다.

어떤가. 말이야 옳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 곧 언행이 일치하는가는 별개 문제다. 명토박아둔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라는 불조의 가르침을 들먹이려면, 적어도 용산 참사에서 ‘숯주검’이 된 철거민 5명에 대해 진솔한 사과가 앞서야 옳다. 대통령이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스님들이 나서서 잘못을 지적해주고 사과를 권해야 옳지 않을까. 그 사과 없이 ‘국민화합’이란 가능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교계는 이명박 대통령의 법회 참석에만 큰 의미를 두고 ‘국민화합’을 내걸며 법회를 했다. 기독교 편향으로 일관해온 대통령은 ‘호국불교’를 내세워 “지금의 경제난을 극복하고 국민화합을 이루는데 불교계가 앞장서 달라”라고 당부했다. 좋다. 철거민들이 참혹하게 죽은 용산 참사는 잊고 대통령의 법회참석 자체에 의미를 두는 모습은 접어두자. 문제는 경제난 극복에 불교계가 앞장서 달라는 데도 있다.

냉철할 때다. 오늘의 경제난은 대통령을 ‘모시고’ 법회를 한다고 극복되는 게 아니다.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진 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줄달음질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전환하지 않는 한, 대다수 국민의 경제난은 무장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불교가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을 올곧게 지적해줄 때, 바로 그 때 ‘반딧불 희망’은 비로소 깜박이지 않을까.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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