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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서 달을 보다]석남사 조실 원공 정무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이 세상, 올 땐 정신 없었지만 갈 땐 분명해야지

 

▲정무 스님.

 

 

조계종 원로의원인 원공 정무(圓空 正無)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안성 석남사로 향하는 시골 길은 고즈넉하고 푸근했다. 높지도, 그렇다고 너무 낮지도 않은 서운산은 어릴 적 살던 고향의 앞산을 연상케 했다. 여기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처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다.

 

1958년 출가한 이후,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를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실천해 온 정무 스님은 이 시대 청빈의 사표다. 단순히 제자들과 밭 갈고 채소 가꾸며 산다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절 살림 한다고 계곡물 오염시켜서는 안 되기에 전통 해우소만을 고집하는 스님은 한 겨울 낮에는 방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깔아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연료비 한 푼도 정재이니 낭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용주사라는 교구본사 주지까지 역임한 스님이요, 조계종 원로의원인 스님에게 작은 승용차 한 대라도 보시하겠다는 불자가 많았을 터인데, 그 정성 어찌 물리치고 지금까지 차 한 대 소유하고 있지 않는 걸까!


백장청규 실천 50여 년
청빈-무소유 삶 일관
부처님도 80세까지 포교
늙었다고 공부 놓으면 안 돼


2005년 서울 봉은사에서 열린 신년 맞이 선지식초청 법회에서 ‘불교의 죽음과 건강한 삶’을 주제로 법문한 적이 있었다. ‘시작’이요 ‘태동’인 새해벽두에 ‘죽음’이라! 일반 통념을 송두리째 깨버리는 게 선가의 방편이라 하나 정무 스님의 발상은 말 그대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렇지요. 지난 해의 아픈 기억 모두 잊고 새 출발 하자는데 곧 바로 죽음이라니 어찌 보면 봉은사의 뜻에 거르는 일이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너무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어요. 왜 그럴까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지. 왜?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 죽고 싶지 않은 게야. 그러면서도 스스로 안위해. 죽음은 남 일이지 내 일은 아니라고. 또 그 뿐인가. 막상 죽음에 직면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지. 딜레마에 빠져도 한 참 빠져 있는 겁니다. 살아 있을 때 죽음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정무 스님은 죽음이란 이사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사법을 아는 사람은 이사하기가 용이하듯, 죽음에 대한 사유도 미리미리 해 놓으면 그만큼 이 세상 떠나기 쉽다는 논리다. 그러니 『티베트 사자의 서』라도 한번쯤 정독 하고, 선지식은 물론 지식인이 전하는 죽음에 대한 단상에도 귀를 기울여 보라 한다. “죽기 직전에만 써 먹으라고 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알차게 살려고 공부 하는 겁니다. 죽음에 대한 사유를 한 사람은 반드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스스로 던집니다. 어떻게 한 세상을 살지가 그려지면 죽음은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생사를 해탈한 분이고,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소화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죽음에 초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무 스님은 국녕사에서 하는 죽음 체험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또한 살아 있을 때 유서를 써 놓는 방편도 해봄직하다고 전했다. 서산 휴정은 임종게를 통해 죽음을 이렇게 일갈했다.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으니/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러하다(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정무 스님도 임종게와 유사한 유서가 있다.
“이 세상 올 때는 정신없이 왔다마는 갈 때는 분명하구나. 아미타불 극락세계 나의 고향이로다. 나그네 세상 즐겁게 살다 가노라.”
삶과 죽음이 한 조각 구름 일어나고 스러짐이라 여기고, 나그네 세상 즐겁게 살다 가듯이 생사에 대해 초연하고도 자재할 수 있는 내공은 어떻게 쌓아가야 하는 것일까!

 

정무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안성 석남사.

 

 

 

“부처님이 말씀하셨지요. 죽음이 뭔지도 모르면서 울긴 왜 우느냐고! 죽음의 실상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면 삶의 실상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려면 수행해야 합니다. 다만 수행을 너무 어려운데서 찾지 말아요. 마조 스님은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 했지요? 밥 먹을 때 밥 먹고, 잠 잘 때 자는 게 도라 하니, 그리 쉬운 게 어찌 도라 반문하지만 아닙니다. 중생의 일상사가 어떻습니까? 밥 먹을 때 밥만 먹으면 될 것을 이 밥은 맛있다, 없다, 더 맛있는 밥은 어디 없나, 별의 별 생각을 다 해. 안 되는 겁니다. 신심명에 있지 않습니까.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버릴 것은 오직 간택 뿐이다. 밉다, 곱다는 마음만 없으면 확 트여서 명백하다 했습니다.”

승찬 선사의 신심명 첫 구절인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澤)’의 핵심은 일체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음에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옳다 그르다’ 하는 분별심 때문이라는 말이다. 마조와 승찬의 핵심을 통해 정무 스님은 일상사 속 수행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때와 장소를 가려 수행한다면 이 또한 어불성설입니다. 일상 전체가 수행 시간이고 공간입니다. 청소 하나만이라도 정성스럽게 해 봐요. 내 마음 청정해지는 것은 물론 타인의 마음도 청정하게 합니다. 예배도 정성스럽게 해 봐요. 거만함을 항복 받고 업장을 소멸합니다. 이게 다 무량공덕입니다.”

일상에서의 언행 하나하나도 모두 수행이라는 말이다. 정무 스님은 작은 책자 하나를 만들어 불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제목은 없지만 굳이 이름 한다면 ‘마음-의식 향상’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속에는 참으로 고구정녕한 일언들이 응집돼 있다.

△‘누군가를 만날 때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등의 인간관계 원칙 52 △‘상대방의 내미는 손을 거절하지 않는다’등의 즐거운 삶 방법 25 △‘도울 일 없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등의 멋진 사람 되는 법 10 △‘나무를 껴안고 우리는 한결같은 친구라고 속삭인다’등의 행복해지는 방법 13, 심지어는 남편의 도리, 아내의 도리,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등 불자로서, 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지침이 될 만한 지혜가 망라돼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동안 스님이 세속의 책을 통해 갈무리 한 일언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제일 중요한 건 부처님 법이지요. 그 다음이 조사 스님 말씀이고. 분별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 알아듣고 체득하면 부처님 말씀대로 살게 돼 있어요. 하지만 근기에 따라 이 한 마디가 어렵게 들리는 사람도 있거든. 그런 사람에게는 분별하지 말라 이전에 육근에 끄달리지 않으면 된다 말해 주지만 이 역시 어렵게 들리는 사람이 있거든. 그럴 때는 일단 세속법으로라도 안내해 줘야 해. 좋은 책은 가까이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수행 마쳤다고 책 안 보는 사람 많은데 안 될 말이여!”


죽음 실상 알아 가야
이 생 삶도 알차고 행복
일상 속 언행도 수행이니
멀리서 道 구하려 말라


‘마음-의식 향상’ 책자에 담긴 내용 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독서다. ‘책은 인생의 나침반이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준다’, ‘오락과 비디오 보다 책을 읽는다’, ‘독서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다’ 등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정무 스님은 등 값을 정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천도재 역시 값을 정하지 않는다. 형편대로 보시하면 그만이다.

“보시는 무주상 보시여야 공덕이 크다고 하잖아요. 자기 살림에 맞게 정성스럽게 올리면 되는 겁니다. 천도재를 지내는 스님도 정성으로 하면 되는 겁니다. 10만 원짜리 천도재 정성 다르고, 1000만 원짜리 정성이 다르다면 이미 틀린 겁니다. 상호간의 정성이 닿아야 그 공덕이 무량해 지는 겁니다.”정무 스님은 천도재를 지낸 후 일정 부분 남은 정재로는 꼭 책을 사서 불자들에게 보시한다고 한다. 그 연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천도재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산 사람이 평탄하고 행복해야 영령도 편안한 겁니다.” 영령을 위한 천도재가 다시 이 생을 살아가고 있는 불자들에게 공부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격이다. 완벽한 소통이요, 회향이다.

 

더 이상 여쭈어 보는 것을 접고, 궁금한 게 있으면 다시 찾아뵙기로 했다. 그저 시골 할아버지 같은 자애로운 스님을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하염없이 평온해 졌기 때문이다. 잠시 경내를 돌아보는데 점심공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나지막하면서도 정갈한 소리인지라 누가 치는가 보았더니 세납 78세의 정무 스님이었다. 점심공양을 마친 스님은 서울가는 길에 동행해 줄 수 있느냐 물으셨다. “서울 가실 일이 있으시냐?” 했더니, 한 달에 한 번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열리는 강연을 듣기 위해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80을 앞둔 노장 스님이 강의 하나 듣기 위해 상경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 스님은 의미 깊은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는 지구대학교 불교대학 보살학과 봉사반에 입학한 겁니다. 공부는 평생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거지. 부처님도 80년 2월까지 포교했으니, 늙었다고 공부 안 할 생각 말아야지.” 2시간 동안의 서울 동행 길에서 들려주신 선문답도 기가 막혔다. 얘기 말미에 이 말 한마디를 전했다. “조사 희롱에 놀아나지 말라.” 곱씹어 볼 일이다.
목마른 사람, 정무 스님을 찾아보라. 청량한 감로수에 흠뻑 젖을 것이다.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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