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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서 달을보다]금강선원장 혜거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풍랑 잠재우면 淸水 속 보물 건질 것”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깨달을 수 있는가?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이 질문이 때로는 불교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단초와 함께 어떤 신행생활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마치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에서 출발한 사유가 삶의 설계도를 그려내는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작은 책자로 보급되는 『법공양』에 의미심장한 한 스님의 법설이 실린 바 있다.

마음이 있지만 행하지 못하면 마음이 없는 것과 같고(有心不行同無心),
마음이 있고 행도 있으면 모든 부처님과 같다(有心有行同諸佛).

금강선원장 혜거 스님의 일언이었다. 스님은 ‘마음은 있고 행이 없으면 마음을 먹지 않은 무지한 이와 다를 바 없으며, 마음이 있고 실천행도 뒤따르면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누구든 매일 경전 하나를 수지독송 하기를 권합니다. 또한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선행을 베풀고, 자기 반조(返照)를 해야 합니다. 이상 세 가지를 머릿속에 딱 지니고 살면, 우리의 업은 억 겁의 업이라 할지라도 얼음 녹듯이 녹아 없어지고, 어떠한 길을 걸어가든 조금도 장애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오관 잠재워야 수행증득
탐진치 버리면 지혜 얻어
모기가 쇠창살 뚫듯 매진
사유 끝 화두 들면 ‘소식’

 

혜거 스님은 열여섯 되던 1959년 외삼촌인 불교학자 고(故) 김지견 박사의 추천으로 탄허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 어려서부터 한학에 밝았던 스님은 탄허 스님 회상에서 3년 결사까지 마친 후 스승의 역경사업을 도울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보였다. 탄허 스님이 입적(1983년)한 후 스님은 1988년 서울 개포동에 금강선원을 개설, 일반인들에게 불교 경전과 참선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벌써 21주년을 맞은 금강원선원에 운집한 사람만도 30만 명에 이른다 하니 스님의 역량을 가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금강선원에서는 참선뿐 아니라 경전공부도 병행하는데 텍스트가 한문 원전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출신의 불자 중 한자능력 시험 2, 3급 합격자만도 수백 명이다. 1급 합격자도 상당수 있는데 웬만한 고사성어와 5000자 정도의 한문을 읽는 것은 물론 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란다.

혜거 스님은 지난 해 『가시가 꽃이 되다』(책으로 여는 세상)를 선보였는데 부제가 ‘혜거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이다. 그래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의하기 어려운 원론 하나를 여쭈어 보았다. ‘마음’은 무엇이고 ‘공부’는 무엇입니까!

“마음이 불심의 뿌리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본래 마음은 닦을 게 없고, 버리고, 내려놓고, 비우는 일만 있는 겁니다. 물속에 보물이 있다 해도 그 물이 흐려져 있다면 그 보물을 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물을 맑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풍랑 때문에 물이 흐려졌다면 그 풍랑을 잠재우면 됩니다. 물이 더러워진 원인을 알고 그 원인을 해결하고 나면 물은 본래청정한 것이니 맑게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러면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불성, 진리, 지혜 등을 내 손으로 직접 건져낼 수 있는 겁니다.”

스님은 우리의 청정한 마음이 흐려진 원인은 탐진치라 설파한다. 불자에게는 상식에 속할 정도로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 원인을 알고도 버리는 게 아니라 잘못 써 탐진치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며 살고 있지 않는가! 스님은 원인을 알고만 있지 버리고, 내려놓는 행을 실천에 옮기지는 않기 때문에 어리석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참선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수행이란 오관을 잠재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알고 있어도 어떤 경계가 오면 바로 흔들리고 맙니다. 눈, 코, 귀, 입이 한시도 가만있지를 않거든요. 반연에도 요동치지 않는 무심의 상태가 될 정도까지 매진해야 합니다.”

스님은 금강선원에서 아주 독특한 수련법 하나를 쓰고 있다. 예를 들면 하루는 눈만 열어놓고 입이나 귀, 코, 등은 닫아 버리는 것이다. 또 어떤 하루는 귀만 열어놓고 나머지 모두를 닫아 버리는 것이다. 간화선 수행법이 탁월하고 수승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있는 스님이 이런 방편을 쓴다니 조금 의아했다.

 

매일 1善行-1經 수지독송
1반조 실천하면 평화로워
앎도 행으로 이어져야 禪
쉰다고 공부 놓으면 안 돼

 

스님은 복천암에서 새벽부터 하루 8시간 기도수행을 했던 체험을 들려줬다. 기도만 하는 것도 아니고, 기도하다가 너무 힘이 들면 향도 피우고, 절도 올리며 정근 하는데도 그 시간이 길고도 길게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힘만 드는 이 기도도 접을까?’ 하다가 딱 한 번만 죽을 각오로 한 번 해보자는 원력을 세우고는 8시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서서 정근했다. 당시, 첫날 수행의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다.

“빈 깡통을 쫙 쭈그려 트려 던져지는 느낌, 내 몸이 완전히 쪼그라들어 법당 안마당으로 던져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음 날 새벽 법당에 오르니 또 한 번 해보자는 원력이 생기는 겁니다. 참으로 묘한 일이지요!”그러기를 며칠, 하루는 단 몇 분 정진한 것 같은데 벌써 11시 사시마지가 올라오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 때 스님은 정진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졌다고 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기도든, 참선이든, 독송이든 한 번쯤 죽을 각오로 집중해 큰 고비를 넘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화두는 마지막에 들어야 합니다. 궁극에서 보면 수행단계가 없다 하겠지만 근기에 맞춰보면 단계도 분명 존재하므로 집중 훈련부터 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기도도, 염불도, 참선도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나면 자기 인생에서 불거지는 의문을 갖고 사유하게 되는데 결국엔 1700공안으로 귀착됩니다. 화두는 더 이상 사유할 것도 없을 때, 더 이상 오고감이 없을 때 들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이 고안한 수행 방편이 이해가 됐다. 모든 감각기관을 닫고 눈만 열어 놓는 수행법만 보아도 혜거 스님이 추구 하고자 하는 의미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할 때는 오로지 눈 끝에 모든 것을 모으지만 그렇다고 집중 훈련에만 그치지 않는다. 모기가 쇠창살을 뚫을 정도로 하다 보면 잠깐이나마 삼매도 경험할 수 있고, 이런 득력을 더욱 발휘하다 보면 사량분별도 끊어지는 단계에 이른다.

“눈을 응집해야 사물이 정확하게 보이듯, 마음도 생각을 응집시켜 관념이 사라질 때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입견과 질투, 시기 등 온갖 삿된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원각경』에서는 ‘눈 가는데 마음을 두라(心存目想)’고 했다. 처음엔 단순한 눈의 집중이었지만 단계를 밟다 보면 어느 새 심안이 열리는 된다는 것을 혜거 스님은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눈에도 다섯 가지 즉 세상을 보는 오안(五眼)이 있습니다. 진리의 눈으로 보는 진관법(眞觀法), 깨끗한 눈으로 보는 청정관법(淸淨觀法), 지혜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지혜관법(智慧觀法), 눈으로 본 것이 자신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지의 바라봄도 있어야 합니다. 비관법(非觀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비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관법(慈觀法)이 또한 있습니다. 오안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그만큼 평화롭고 살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그러고 보면 혜거 스님은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지관수행법을 명철하게 꿰뚫고 근기에 맞게 체계를 잡아 지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止)수행은 멈추어서 모든 번뇌를 그치게 하는 겁니다. 밖으로는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안으로는 헐떡거림이 없어야 합니다(外息諸緣 內心無喘). 밖으로는 부귀영화나 희로애락에 끌리지 않아야 하고, 안으로는 온갖 번뇌를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관(觀) 수행은 자신의 본래 마음을 관찰하고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겁니다. 매사를 바르게 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정도에 이르면 평화와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혜거 스님은 어떤 수행법으로 시작 했든지 궁극에는 화두를 들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선상에서 나오는 모든 의문은 결국 화두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선은 행동으로 옮길 때 살아 숨 쉽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러니 일상에서도 작은 것 하나부터 실천에 옮겨 보려는 노력과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혜거 스님이 제안한 1인 1경전 수지독송, 1일 1선행, 1일 1반조 등의 실천행을 제안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붓글씨를 써 왔던 스님은 지금도 먹을 갈고 있다. 얼마 전 10폭 병풍에 금강경 전문을 새겨보자는 원력을 냈는데 벌써 80벌을 쓰고도 한참 멀었다며 연습(?)중이다. 글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라기보다는 서예를 통해 마음 한 자락 쉬어보려는 것일지도 모를 것 같아 어쭙잖게 한마디 건네 보았다.

“모든 인연을 놓으셨으니 만 가지 일도 쉬어야 하지 않습니까(乃放捨諸緣 休息萬事)?”
그러자 스님의 일갈이 내려졌다.
“배우지 않으면 한 덩이 흙보다 못한 거지!”
혜거 스님은 송나라 진종이 권학문(勸學文)을 지은 연유를 전하며 공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명예를 얻고자 한다면 명예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돈을 벌고자 한다면 돈에 대한 탐욕도 버리고 공부해야 합니다. 수행을 잘하고 싶다면 수승한 스승의 일대기를 공부해야지요. 그의 일대기 속에 분명 자기와 닿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자신도 그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중국 유학까지 다녀왔던 스님이지만 지금도 새벽에는 어김없이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세납 66세의 혜거 스님이 말하는 공부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한 가지 더 당부했다.

“매일 반조해요. 나도 처음엔 그게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거든!”
정확히 꿰뚫었다. 매일이 아니라 1년에 몇 번이나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가! 남의 속은 그렇게 잘 보려 하면서도 말이다. 하늘도 경책하려는지 천둥을 치고 비를 내린다. penshoot@beopbo.com

 

혜거 스님

혜거 스님은 1959년 영은사에서 탄허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뒤, 강원도 월정사에서 범룡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은 후 탄허 스님 회상에서 대교과를 마쳤다.
현재 금강선원장으로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함께 지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참나』, 『혜거 스님의 금강경 강의』, 『유식 30송 강의』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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