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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미디어법 원점에서 재논의 해야

기자명 법보신문

참으로 묘한 판결이 나왔다. 7월국회에서 강행 처리된 언론관련법이 절차상 위법은 있으나 이들 법률의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법과 권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한 야당 정치인의 비유를 빌면 “위조지폐인 건 분명한데 화폐로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고, 입시부정은 있었지만 합격무효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고난도 정치방정식의 결과 절차적 정당성 없이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 실질적 정당성을 갖게 된 셈이다. 더불어 헌재가 위법을 인정했으므로 원천무효라는 주장과 효력을 인정했으므로 법을 충실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의 충돌로 새로운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헌재는 신문법과 방송법 처리과정에서 의원들의 권한침해를 인정했다. 신문법 표결시 “권한이 없는 사람에 의한 임의의 투표행위나 대리투표로 의심받을 만한 행위 등 극히 이례적인 투표행위가 확인됐다”며 날치기를 인정하고 “표결과정에서 표결의 자유와 공정이 현저히 저해돼 결과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고 위법성을 지적했다.

제안설명과 질의토론 생략도 국회의사 절차를 위반해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방송법 표결시 “투표집계 결과 재적의원 과반수에 미달한 경우 국회 의사는 부결”이라며 “재표결을 해 방송법안의 가결을 선포한 것은 일사부재의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재는 이 법들의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했다.

헌법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왜 각론에서는 위법이나 총론에서는 유효하다는 모순된 판결을 내렸을까. 언론관계법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지나치게 의식해 정치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개별 쟁점에 대해서는 법적 판단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다.

결국 헌재는 사법소극주의(judical passivism) 뒤에 숨어서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헌법적 판단을 해야 할 헌재의 정치적 판단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10월의 행정수도이전 위헌결정도 정치적 판단이었다. 헌재는 조선시대의 「경국대전」까지 거론하면서 수도이전이 ‘관습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명백한 실정헌법에서 위헌의 근거를 찾을 수 없으니 난데없이 관습헌법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헌재는 이전에도 이번의 언론관련법 판결과 비슷한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1996년 12월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처리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1997년 5월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했다면서도 “가결선포행위 자체는 무효가 아니”라고 결정했었다.

헌재 결정이 갖는 또 하나의 문제는 국회에서의 위법적인 표결행위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는 점이다. 입법행위가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칠 때 사회가 유지된다. 국회가 법적 절차를 무시하거나 원칙을 위반하면 대의민주주의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헌재는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입법행위에 대해 적극적 판단을 하지 않음으로써 실질적 정당성을 인정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이것은 앞으로 다수당에게 절차적 민주주의를 짓밟더라도 통과만 시키면 된다는 유혹에 빠지게 할 것이다. 가결만 되면 그 과정에서의 위법성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효력을 인정받게 되므로 다수세력은 어떻게든 가결시키려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무효확인청구 기각은 무효여부를 헌재가 판단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지 유효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 “위법성의 시정은 헌재의 몫이 아니며, 국회의 자율권 존중 차원에서 입법자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결국 헌재가 위법사실을 확인했으므로 그것을 시정하는 것은 국회에게 맡기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은 ‘위헌시비가 종결됐다’며 법을 집행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재논의하는 것이 마땅하다.

헌재 판결취지에도 부합하고, 국회의 자율성을 스스로 보장받고, 나아가 흔들리는 대의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손혁재 한국 NGO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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