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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10만 염송과 1배의 차이

기자명 법보신문

며칠 있으면 음력 시월 보름, 동안거 결제다. 하안거를 마친 후 만행을 떠났던 납자들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좌복 위에 앉아 일대사를 치러야 할 것이다. 겨울 석 달 동안의 안거는 이제 선사들만의 일이 아니다. 재가불자들의 수행 열기도 승가에 못지않게 뜨겁다. 그래서 일까? 각 사찰이 내놓는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참선은 물론, 염불이나 기도 등에 대한 수행방식도 세분화되며 점점 다행해 지고 있다. 조금씩 수행 체계가 잡혀가는 듯하다.

그런데 ‘방식’이 많다 보니 ‘말’도 많다. 수행하기도 전에 방식을 놓고 ‘이게 옳다 저게 옳다’하는 식의 단견이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도 보인다. ‘염불’ 하나만 보아도 어떤 이는 ‘하루 10만 염송’이 좋다 하고, 어떤 이는 ‘횟수에 연연하면 진정한 수행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10만 배’ 원력을 세우고 절을 하는 사람을 향해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하지 10만 배는 뭐하러하냐’는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만배 안 해 본 사람은 절 이야기 하지 말라’는 식의 거침없는 말도 내 뱉는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선과 염불은 물론 계율에도 철저했던 중국의 주굉 스님이 있다. 스님이 세상에 선보인 책 중 하나가 ‘죽창수필’인데, 말 그대로 ‘죽창(竹窓)아래서 붓 가는 대로 적은 글’을 모아 묶은 책이다. 짧은 글로 구성된 440여 편의 글 중 하나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하루에 ‘미타’를 십만 번 염했다는 영명 대사의 일화를 전해들은 주굉 스님이 직접 도전해 보았는데 ‘백각’ 만에야 마쳤다. ‘백각’(百刻)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25시간이니 하루 하고도 1시간이 더 걸린 셈이다. 주굉 스님은 ‘아미타불’을 했기에 가능했지 ‘나무아미타불’을 했더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 고백한다. 그러니까 ‘나무’ 두 자만 더 했어도 못 마쳤을 것이란 얘기다. 주굉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루 10만 미타 염이 가능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다. 그의 갈무리 일언을 들어 보자!

“십만 번이라고 한 것은 대체로 잠깐 동안에도 염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극단으로 표현한 말이었을 뿐, 굳이 십만이라는 숫자에 한정을 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심으로 염불하는 자가, 간혹 이것을 고집하여 도리어 폐단을 이루는 경우가 있을 듯하여, 내가 손수 시험해 보았던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주굉 스님은 숫자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루 10만 염송 보다 단 한 번의 간절한 염송 한 번이, 10만 배 보다는 정성스런 1배가 더 값진 것일까? 주굉 스님의 말도 새겨들어야 한다. ‘대나무 창’ 아래서 쓴 글 한 토막을 더 보자.
선인이 전한 게송 중 이런 게송이 있다.

“조주는 80에도 행각했으나/마음은 여전히 편치 못했네./이윽고 집에 돌아와 아무 일도 없고서야/비로소 짚신 값만 허비한 줄 알았네.”
주굉 스님은 이 게송에 대한 세인들의 난무한 해석을 경계했다. 앞의 두 글구는 생각지 않고, 마지막 글구에만 집착해 ‘도는 목전에 있으나, 행각하는 것은 수고로운 일일 뿐’이라는 식의 말을 함부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언을 전한다.

“깊이 자신을 돌아보라! 이미 집에 돌아왔는가? 아무 일도 없는가? 만약 중도에 머물러 있거나, 아직도 일이 번다하다면 어찌 나이 80일 뿐이겠는가. 설사 백 살 천 살 내지 만 살이 될지라도 짚신을 많이 사 짊어지고 편력하여 발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절 한번을 해도 간절하게 하라’는 선지식도 이미 수만 배 수십만 배를 올려 본 스님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배든, 10만 배든 ‘원력과 일념’이 동반되어야 수승한 수행임을 알면서 굳이 가던 발길 멈추고 분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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