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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산사 기도이야기] 순례 대장정 성취 위해 사소한 일상 버려야

기자명 법보신문

우리 선불교에서는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를 잡으면 다른 하나를 반드시 내려놓아라’는 말이다. ‘무조건 내려놓아라’는 ‘방하착(放下着)’과는 달리 다소 유순한 표현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작은 것 하나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모든 것을 움켜지려고 하는 것은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 때문이다. 탐진치 삼독(三毒)의 근원은 이러한 욕심에서 출발한다. 하나를 쥐면 자연스럽게 다른 하나를 내려놓는 것도 참된 삶의 한 방식이다.

지난 주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원적을 하셨다. 평생 스님이 ‘무소유’를 실천했던 것도 어찌 보면 선종의 ‘염일방일’과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빛이 있듯이 세상은 항상 양면(兩面)이 자리한다. 스님이 문필가로서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적셨다면 마음 한쪽에는 오두막 산골에서 치열한 수행자의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법정 스님과 같이 종교인은 ‘무소유’를 근본으로 해야 하지만, 열심히 세상을 사는 불자들은 부지런히 재물을 모으고 아껴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고 베풀어 주는 것도 바로 ‘무소유’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무소유란 무조건 가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이 아무리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재물이 없다면 이를 제대로 실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무소유’의 삶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는 우리의 마음에 투영된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자신의 마음먹기에 따라 무소유의 삶도 얼마든지 실천할 수가 있다.

오늘 내가 산사순례를 나서는 회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바로 ‘염일방일’의 실천이다. 적어도 우리가 한 달에 한 번 씩 부처님을 친견하고 참회를 하고자 했다면, 다른 하나는 손에서 놓아야 한다. 집안에 바쁜 일이 있다고 해서 순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는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다 보면, 나태해지기 쉬워 계속 빠지게 된다. 어차피 순례를 하겠다는 각오를 하였다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꼭 참석해야 된다. 부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귀중한 시간은 없음을 명심하고 다른 일을 미루고 순례에는 꼭 참석하는 것이 좋다.

순례를 떠나는 것은 부처님의 위대한 사상을 배우고 몸소 체험하고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위대한 성취를 하기위해서는 사소한 일상의 일들은 잠시 접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산사순례를 빠짐없이 참석하기 위해서는 바쁜 일과 바쁘지 않은 일을 분명히 가려서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긴 대장정을 회향할 수 있다.

대개 불자들은 ‘회향’이란 어떤 일을 시작하여 끝을 맺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목련경』에 보면 목련 존자께서 생전에 악업을 지어 무간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의 업을 가볍게 하기 위해 어머니의 재산을 모두 팔아 해제 날 스님들과 신남 신녀에게 공양을 하고 법문을 듣게 한 것도 바로 ‘공덕회향’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회향의 뜻은 ‘자신이 공덕을 지어 남에게 돌리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산사순례를 하는 것은 가족과 자식들,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그 공덕을 돌리고 우리 이웃들과 공덕을 나누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108산사 순례는 단순한 기도회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대장정을 회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염일방일’을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한다.

지난 주 백양사 순례에는 초등학생 아이가 노 보살님의 손을 꼬옥 잡고 우산을 쓰고 산길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한참 찾고 있었는데 노 보살님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자 대견했는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이것이 곧 작은 회향이다. 

선묵 혜자 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도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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