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후 1000년 이상 왕실이나 귀족들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었던 것과는 달리 유교정치를 지향하는 조선왕조로부터 지독한 멸시와 차가운 냉대를 감수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또 좬조선왕조실록좭 등 한정된 ‘정치적’ 자료를 통해 불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학계현실도 조선불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데 한몫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조선불교를 ‘침체기가 아닌 대중화’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 해남 대둔사는 조선불교연구소를 발족해 이 시대의 관련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겠다고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아직까지 불교계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대단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조선시대 불교는 다양한 면모를 띠고 있다. 유생들에 의해 수많은 불교문화재가 훼손되기도 했고 심지어 절터에 서원이 들어서는 참화를 당하기도 했다. 반면에 수많은 사찰들이 조선시대에 중건되었으며, 법회 때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모였다는 기록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고위 관직자와 스님들 사이에서 시를 논하고 철학을 논한 자료도 수없이 많다. 역사 인식의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선입관과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조선불교를 제대로 조명해보려는 생각에 앞서 이미 고정관념의 틀을 만들어놓고 애써 피하려고만 했는지도 모른다.
조선불교연구의 활로는 조선시대 문집, 고승행장, 사적비, 권선문, 사기 등 관련 사료를 얼마나 발굴하고 정리 간행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대한 작업은 몇몇 학자들이나 사찰에서 할 수도 없고 떠맡겨서도 안된다. 각 종단과 대학에서 전문학자를 양성하고 투자하는 길만이 잊혀져 가는 조선불교 역사를 복원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