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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인식 전환 속 새 ‘신·수행’으로 ‘불광법등’ 밝힐 터

불교대중·현대화 이끈 광덕스님 유지 계승
36년 佛光정신 담을 대가람 2013년 봄 완공
수행·전법 함께하는 불교공동체 견인 준비

 

▲지홍 스님은 “현대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불교는 적절한 해답을 내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광사 사진제공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 또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1982년 도심 한복판에 우뚝섰던 지금의 불광사에는 아직도 광덕 스님의 법열이 그대로 배어 있는 듯하다. 1999년 입적에 들기 전까지 광덕 스님은 부처님의 전법선언처럼 묵묵히 홀로 길을 걸었다. ‘세상에 대한 자비심’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갖고 스님은 길을 떠났다. 또한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바른 뜻과 문장을 갖춘 가르침’을 설했으며 ‘완전하고도 청정한 수행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러기에 광덕 스님의 원력과 사상이 농축되어 이 땅에 펼쳐진 ‘불광사상운동’은 부처님의 ‘전법선언’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서울 송파구 석촌 호숫가에 자리 잡은 불광사. 이제, 설이 지나면 이곳에 새로운 불광사가 들어서기 시작할 것이다. 중창불사 계획이 순조롭게 회향된다면 좀 더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불광사가 2013년 부처님오신날 즈음 사부대중 곁에 나툰다. 그 중책은 지홍 스님이 자담(自擔)하고 있다. 불사뿐 아니라 광덕 스님의 유지를 올곧게 계승해야 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 ‘자담’이 결코 녹록치 않은 대작불사다.


광덕 스님의 불광운동을 반추해보며 지홍 스님의 비전을 들어 본다면 불광법회, 불광사, ‘월간 불광’의 새로운 지평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지평은 곧 한국불교가 지향해야 할 곳을 일러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불광사를 찾았다.


1974년 9월 불광회 창립에 이어 11월 ‘월간 불광(佛光)’이 창간됐다. 종로 대각사 한 쪽 골방에서 전화 한 대 없이 광덕 스님의 원력 하나로 창간된 불광(佛光)의 반향은 컸다. 아니, 엄청났다.


“광덕 큰 스님은 후미진 골방에서 주옥같은 언어들을 세상에 수놓았습니다. 홀로 법회를 이끌며 집필에도 매진해야 했으니 힘에 겨우셨을 겁니다. 하지만 스님은 해냈습니다. 동국대를 비롯한 종립학교에서 교학법회 교재로 불광을 채택했고, 석주 스님과 녹원, 월주, 지관 스님이 중심이 된 한국불교전법회가 불광을 군부대와 교도소에 보내주었습니다. 월간 불광 보내기는 전법회의 가장 큰 목적사업이었습니다.”


한국불교전법회 발기 취지문을 보면 월간 불광에 거는 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태양이 지상의 광명이듯이 부처님은 일체 중생 생명의 광명입니다. 태양은 차라리 기몰과 음양이 있어도 불법 광명은 영원히 변함없이 일체처에 충만 합니다. 이 법이야말로 능히 일체 중생을 진리로 완성시키며 시방국토를 불국토로 완성시킵니다. …(중간 생략)… 전법에 뜻을 같이하는 여러 불자들의 힘을 합하여 보다 큰 전법불사를 행하고자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칭 한국불교전법회를 구성하여 월간지 불광을 각 군 부대 장병에게 보내며 또한 일시적 과오로 회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불법 광명을 보내고자 합니다.’


“불광을 통해 기복과 산중, 은둔 불교의 낡은 틀을 깨 나가며 그 자리에 각(覺)과 인간, 전법을 채워갔습니다. 창간호부터 반야심경 강의나 초기, 대승불교 등에 대한 주제들을 풀어가며 우바이, 우바새 분들에게 새로운 불교의 안목도 열어 주었습니다. 대중불교의 초석을 다졌다 할 수 있습니다.”


▲월간 불광 지령 400호. 월간 불광은 광덕 스님의 ‘불광사상’과 실천과제를 녹여내 불교대중화를 선도했다.
잡지에 게재된 글은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사부대중 품에 다시 안겼다. 지령 400호가 지난 지금도 월간 불광은 세상과 함께 호흡하고 있으며 불광출판사 역시 교계 굴지의 출판사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월간 불광의 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각회 법회에 참여했던 불자들에 이어 월간 불광을 통해 광덕 스님을 친견한 불자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급기야 월간 불광 창간 1주년과 맞물린 1975년 10월 불광법회가 창립됐다. 첫 모임엔 43명이었지만 1년 뒤인 1976년 창립 1주년에는 그 열배가 넘는 480명이 운집했다. 불광법회 핵심은 ‘법등(法燈)’ 운동이다.

법등은 불광공동체, 굳이 여느 사찰과 비교해 말한다면 신도조직의 기본 단위라 할 수 있다. 한 개의 법등으로 시작해 일정 규모가 되면 지역 법등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법등’은 ‘조직’ 개념에 머물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의 길에서 제자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너희는 너희 자신을 등불삼고, 법을 등불삼아라.’ 불광법회의 ‘법등’은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법의 등불을 스스로 밝혀 스스로 밝아지고 나아가 이웃도 밝혀 자타가 모두 법의 주인이 되고 존엄한 인간 주체로 되어가자는 게 법등의 원력입니다.”


여느 사찰의 신도회나 교구조직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일반 사찰의 경우도 신도회의 고유 이름을 갖고 있지만 사실, 그 이름에 걸 맞는 신행·전법 보다는 신도조직, 사세확장에 머무르는 게 보통이다. 불광법회는 이와 정반대다. ‘조직’ 개념도 포함하고 있지만 이는 방편일 뿐, 불광법회가 이를 통해 진정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전법’ 그 자체다.


1982년 10월 불광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불광법회 1000여명의 대중과 전국의 불자 2만여 명의 원력이 모여 ‘불광사’가 건립됐다. 이때부터 불광운동은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숙원사업들을 펼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월간불광과 불광법회, 불광사의 공존과 협심이 ‘함께 수행하고 전법하는 역동적인 불교공동체’를 이끌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월간불광, 불광법회, 불광사 사이에는 ‘불광’ 이라는 사상 하나가 관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광덕 스님은 불광 사상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것일까? 부처님의 반야지혜 광명으로 우리 자신과 이 사회를 비추어 광명화해 가는 게 불광운동이다. 부처님의 반야광명으로 인간의 마음과 삶을 밝게 비춤으로써 인간과 사회의 성공과 행복, 번영, 발전을 실현하려는 것이 불광운동의 이상이며 궁극적 목표다.

 

 

▲2013년 완공 예정인 불광사 조감도. 1982년 우뚝 선 불광사가 당 시대의 교계를 이끌었듯이 중창된 ‘불광사’도 21세기 교계를 선도할 것이다.

 


“스님이 말씀하신 불광사상은 반야, 순수불교 사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불하신 후에 ‘모든 중생도 나와 다르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미혹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요. 큰스님도 순수불교선언을 통해 ‘부처님께서 보신 바에는 인간은 어느 누구의 피조물이거나 상관적 존재가 아니다. 사람의 참 모습은 절대의 자재자(自在者)며 무한자며 창조자다’고 하셨습니다. 깨달음에 승속이 있을 수 없지요. 수행에 남녀, 자타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등불을 밝힐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를 인지했다면 수행·정진하는 것은 물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반야지혜를 보살행을 통해 실천해 가야 합니다.”


부처님의 법을 등불 삼고 배우고 실천하며 그 숭고한 법을 전파시켜 가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불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순명쾌한 논리지만 이를 실천해 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불광’은 36년 동안 이를 실천해 왔다. 그러기에 불교의 대중화·현대화는 불광사, 불광법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덕 스님의 유지를 계승한 지홍 스님은 이제 새로운 신행전법 방편을 준비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분야다. 지홍 스님이 지향하는 교육 속 핵심은 ‘수행’이다. 그 단적인 예가 있다. 불광교육원 3개월 과정에서 철야정진이나 혹은 봉사활동을 하지 않거나, 해인사 등의 수련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졸업시키지 않는다.


“교리 공부도 중요하지만 직접 수행에 임하겠다는 기본자세도 중요합니다. 공부 따로 수행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철야정진에 부득이 참여할 수 없다는 사유서만 있으면 눈 감아 주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에는 급기야 수강생 50%가 사유서를 써 냈습니다. 모두 탈락시켰지요. 안 됩니다. 철야정진이나 수련회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교리만 외우고 있으면 병납니다. 알음알이 병에 걸려들면 이를 고치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지홍 스님은 지난해 불광연구원을 개원했다. 물론 광덕 스님의 사상을 재조명 하고 전파하는 게 일차 과제이지만 지홍 스님의 원력은 좀 더 크다.


“수행과 신행문화를 재창출해야만 합니다. 삶 속에서 실천하면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문화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의 성당이 비듯, 법당도 곧 비게 될 것이 확실하다고 봅니다.”


사실 교계 신행변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변화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수십 명 씩 매일 새벽기도, 백일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는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다. 반면, 수행이나 경전공부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지원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봉사활동 역시 해가 지날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지홍 스님은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지홍 스님
“사회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도 연구원이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불교의 사회역할을 모색하지 않으면 불교는 사회와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나아가 불교사상이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홍 스님은 기존의 불광사, 불광법회와 월간불광 등을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한 다양각색의 수행, 신행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증축불사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1982년 불광사가 당 시대의 불교전반을 이끌어 갔듯이 새로운 불광사가 새 시대를 선도해 가겠다는 깊고도 큰 원력이 배어 있다.


광덕 스님이 전법의 길을 나섰듯, 지홍 스님 또한 그 길을 나섰다. 그 여정에 불광 가족이 함께 하고 있다. 새 도량이 원만히 회향되어 새로운 법등 하나를 켜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분명 그 법등은 이 시대를 밝히는 횃불로 활활 타오를 것이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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