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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통해 세상 모든 생명에 경애심 배워

기자명 법보신문

요즘, 우리나라에 슬픈 소식들만 가득한 것 같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 구제역 확산 등이 그것이다.


구제역으로 인해 가축들의 14%인 130여만 마리가 살(殺)처분되었다. 이로 인해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기 된 적이 없었던 ‘108산사순례’도 결국 월말로 연기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난 13일 순례지에서 하려고 했던 ‘구제역·조류독감 확산방지 및 희생가축 천도재’를 도선사 호국참회원에서 봉행하였다. 도선사 합창단의 엄숙한 ‘무상계’ 합창을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천도재에서는 회원들이 일일이 반배를 하며 가축들의 영혼을 달래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행하는 이번 일로 인해 농민들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식같이 키워온 가축들의 눈망울을 보고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농민들의 슬픔을 우리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80세 노부부와 30여 년간을 함께 살아온 늙은 소의 이야기를 그린 ‘워낭소리’가 우리나라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애지중지 길러온 소의 마지막 운명 앞에 노부부는 마치 제 자식을 떠나보내는 듯 깊은 슬픔을 자아냈었다. 그 영화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귀중한 탄생, 그리고 죽음을 엿보았다.


부처님께서도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벗어나 더 이상의 윤회를 하지 않기 위해 고행의 길을 갔다. 불가에서 생사(生死)는 둘이 아닌 하나로 본다. 그러나 생사는 엄연히 다르다. 구제역예방에 좀더 심려를 기우렸다면, 이런 엄청난 살처분을 막았을 것이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일찍 생을 마친 가축들의 영혼을 달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오계(五戒)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는 살생(殺生)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생명을 죽여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 살아야할 이유가 있으며 존재가치가 있다. 불가의 큰 가르침은 전생과 내생에 있다. 우리가 다시 내생에 가축으로 태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것이 또한 불가(佛家)의 이치이기도 하다. 무려 130만여 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 하는 것은 숙연(宿緣)의 업(業)을 짓는 일이다. 그러기에 이런 재난을 더 당하기 이전에 심사숙고하여 철저하게 예방해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순례를 다녀왔지만 우리는 이번 국가적 재난 앞에 어쩔 수 없이 순례를 연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 또한 우리에게는 하나의 교훈으로 남게 되었다. 촛불이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듯이 가축들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인간들에게 양분을 제공해준다. 이를 볼 때 가축들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우리 ‘108산사순례’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경애(敬愛)심을 가지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산에 있는 풀포기하나, 새 한 마리, 작은 곤충 한마리라도 우리는 산사순례를 하는 동안 죽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의 원천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들을 내 자식처럼 아끼는 마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우리 ‘108산사순례’회원들의 마음이다. 이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집을 나와 먼 길을 순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요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생명경시사상이다. 가축들의 살처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폭격으로 인해 희생된 꽃다운 장병들의 영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천금의 재산도 금으로 만든 궁전 같은 집도 명예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생명이다.


▲선묵 혜자 스님
넓게 보면 우리 ‘108산사순례’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사랑’이다. 국군장병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지구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우러나온다. 사랑과 희생정신이 진실로 동반되지 않고서는 결코 ‘순례정신’도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명심해야 한다. 


선묵 혜자 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도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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