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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천막법당서 구룡사 창건…진실의 힘으로 총림 위상 격상

‘詩’란 사원서 나누는 가르침
진실’은 현상 그대로의 모습

 

중징계에도 사설사암 공찰전환
법·정진 끊이지 않아야 ‘명찰’

 

 

 


영축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온 개울물은 설풍의 한 겨울 동안이나마 잠시 쉬어가려는 듯 멈춰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만이 얼어붙은 개울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이곳의 숲과 계곡이 서로 도반의 인연을 맺으며 법담을 나눈지도 어언 1300여년. 통도사(通度寺) 가는 길에 잠시 절(寺)과 시(詩)에 대한 단상을 해 본다.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은 “시(詩)는 말씀 언 변에 절 사자가 합쳐진 말로, 사원에서 전해지고 사원에서 나누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라 했다. 천양희 시인은 “말씀의 절, 말 속에 절이 있다니! 말이 마음의 다른 표현이라면, 마음속에 절을 가지듯 구도하는 자세로 시를 써야 한다는 뜻일 것”이라 했다. 스님과 시인 모두 ‘진리’, ‘진실’을 말하고 있다.


도심 최고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서울 강남의 구룡사와 일산 여래사를 일군 정우 스님은 조계종 개혁회의를 이끌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98년과 1999년 조계종 분규에 휘말리며 종단으로부터 ‘멸빈’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세속으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징계 받은 지 8년만에야 사면되었는데 곧바로 불보종찰 통도사 주지에 올랐다. 분명, 사부대중이 정우 스님을 헤아려 보는 공통된 그 무엇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일까?


통도사 경내에 들어서니 낯선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참선수행 중. 발길을 돌려주세요.’,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서있을 자리다. ‘엄격’ 대신 ‘부탁’이다. 따뜻하다. 구룡사와 여래사가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부처님 품안 따뜻한 가정’이 스쳐간다. 정우 스님의 착안이 분명하다.


▲통도사 경내에 들어서니 낯선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출입금지’ 대신 ‘참선수행 중. 발길을 돌려주세요.’라는 푯말이 서 있다.
그러고보니 통도사 오르는 길에 철조망하나 보이지 않았다. 산사를 찾는 등산객의 의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길도 나지 않는 산을 함부로 오르거나, 계곡에 들어가 취사를 하는 경우는 없기에 철조망은 불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철조망 없애는 일 또한 누군가 마음 한 자락을 돌려야만 한다. 이러한 작은 걸림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거둔 스님이 정우 스님이다. 언젠가 스님은 이를 두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무는 게 불심이요, 선(禪)일진데 사람과 자연 사이에 놓인 철조망 하나 거둔 일이 무슨 대수냐” 했지만 이 역시 세상과 소통하려는 정우 스님의 마음이요, 의식일 것이다.


통도사 화장막을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개산대재를 지역문화 행사로 탈바꿈시킨 것도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를 지향하는 스님의 원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통도사 재적승려 장학제도는 물론이고, 나눔기금 12억을 모아 각 분야에 적극 후원한 일 역시 ‘사찰은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영축총림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불사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종단 구족계 수계산림을 통도사에서 유치하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결정되었던 구하 스님의 친일행적 또한 이의신청을 통해 바로잡았다. 통도사 사적편찬실을 설치해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정리하고, 통도사와 중요 말사의 사적도 꼼꼼하게 정리해 가고 있다. ‘통도사 근현대불교 백년운동사’도 사적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이다.


수행환경 정비와 환경보존을 위한 불사 또한 진행 중이다. 취운암의 교육도량 지정과 함께 승가대학원 설립도 추진하고 있는 스님은 숲 가꾸기와 방화 예방차원에서 통도사 경내 노거수 벌목과 금강송 이식사업도 펼치고 있다. 습지 조성은 물론 차밭도 마련해 생산에 들어갔다. 이밖에도 성보박물관 성보전산화 사업, 세존비각 해체보수, 영산전 벽화 보전처리 등의 성보 보전에도 남다른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해온 일에 비하면 이러한 불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월하 스님 원적 이후 3년6개월 동안 방장 스님의 공석으로 2년 가까이 주지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면서 통도사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총림해제’ 여론까지 일 정도였으니 당시 상황은 풍전등화의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갈등과 내홍은 원명 스님이 신임 방장으로 오르고, 문도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정우 스님을 주지로 추천함과 동시에 가라 앉았다. 이후 정우 스님은 원융살림에 누구보다 앞장섰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며 대중을 이끌어 왔다. 명실상부한 총림으로서의 입지가 다시 굳건해진 데에 정우 스님의 힘이 컸다.


천막 법당에서 목탁을 치며 일으킨 구룡사에 이어 일산 여래사까지 창건한 후 흔들리고 있던 통도사를 다시 불보종찰의 위상으로 다시 격상시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아니, 그 힘을 태동시킨 마음 한 자락은 무엇일까?
언젠가 스님은 법문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일을 할 때면 항상 ‘나를 버린다’는 마음가짐과 자세로 임했다”고 한 바 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각에 머문 순간 내 인생, 내 삶, 내 생활만을 가꾸려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각을 한 번 접어두면 모든 것을 한 발짝 뒤로 물릴 수 있습니다. 그래야 불사에 일념으로 매진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시작할 때는 이 세상에 오지 않은 요량으로 혼신을 다해 시작하고, 마치고 나서는 죽은 요량으로 미련 없이 그 일을 놓자는 게 제 지론입니다.”


생의 집착을 거두면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야 사심을 버리고, 불심에 기인한 공심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농축돼 있다. 스님은 항상 ‘나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한다.


“전생에 살아온 모습이 오늘의 내 모습이라면,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심이라는 생명력으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자신의 도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삶이고, 우리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생활불교인의 자세입니다.”


정우 스님도 출가해서 지금까지 스님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지만 힘든 적은 있었다고 한다.
“인생이 짧다는 게 결코 비극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인생에서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게 비극입니다.” 그러니, 죽음이 언제 오는가를 한 번쯤 사유해 보라 한다. 현재 살아있다 해서 내일도 살아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음에도 우리는 죽음은 30년, 40년, 50년 뒤에나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지금’이라는 말이 떨어진 순간 지금은 과거입니다. 그러니 10년 뒤에 죽어도 죽는 날은 ‘오늘’일 뿐입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훗날 통한, 회한의 눈물을 흘릴 것이라 옛 스님들은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부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저 역시 어려운 일에 처할 때마다 ‘부처님이시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하고 묻습니다.”


선택과 결정! 우린 어떤 기준에서 선택을 하고, 어떤 결과를 기다리며 결정을 내리고 있는가? 지혜로운 선택을 했을 때 가장 멋진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최선을 다하며 후회 없는 생의 한 단면을 채워갈 것이다.

 

불사 추진땐 ‘나’ 버리고 진력
선택할 땐 부처님 입장서 판단

 

한 생각·물 한모금의 ‘나눔’은
지구·우주와 함께 나누는 공덕

 

 

정우 스님은 세존비각 해체보수, 영산전 벽화 보전처리 등의 성보 보전에도 남다른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스님은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에 나온 내용 하나를 소개했다.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무거운 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나눔’에 눈을 돌려보라 권한다. 사실, 스님은 ‘도와준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동참할 뿐이다. ‘베푼다’는 표현도 쓰지 않는다. ‘나눈다’라는 표현을 쓴다. 누가 누구를 도와주고, 누가 누구에게 베푼다는 말 속에 이미 세속적인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소 진부한 물음이지만 ‘왜 우리는 나누는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스님은 이우성 시인의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다’라는 시 한수를 들었다.


‘나는 결국 나 혼자/ 사는 게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들, 밥상에 반찬으로 올라와 있는 것들/ 심지어 내가 마시는 물도 저 시냇물의 물 한 방울이고,/ 내가 마시는 이 공기도 나무가 밤새도록 내뿜는/ 산소 한 모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몸을/ 살찌우는 곡식과 채소들이 저 들판에서/ 나왔다는 걸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내 의식은/ 자연에서 자양분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인드라망처럼 무진찰찰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스님은 전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대가 꽃과 나무에 물을 줄 때 그것은 지구 전체에 물을 주는 것이다. 꽃과 나무에 말을 거는 것은 그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마시는 공기도 저 소나무 숲이 밤새도록 내뿜었던 산소 한 모금이요, 물 한 방울 줄 때도 지구 전체를 주는 것이란 이 사실은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가슴 벅찬 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결 지어져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누구와 나눈다는 것! 나는 비록 한 사람에게 물 한 방울 나누었지만 이는 지구 전체에게 나눠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량공덕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봅니다.”


종단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고도 스님은 구룡사와 여래사를 종단에 귀속시켰다. 제천 운조암 개인소유의 농지도 영농법인으로 명의이전하고, 속리산에 창건한 만세암을 창건주 권리와 함께 법주사로 교구이관 시켰다. 물론 이외의 정우 스님이 창건한 사설사암 일체도 공찰로 전환시킨 지 오래다.


“저는 스님으로서 단지 주지라는 소임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통도사도 법이 있으니 명찰로 자리매김 한 겁니다. 구룡사, 여래사도 부처님 법이 있고, 그 법에 따라 정진하는 대중이 끊이지 않으면 명찰이 되는 겁니다. 모든 사찰 또한 이와 같습니다.”


정우 스님은 2008년 부산 해운대에서 본 석양 노을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울컥 눈물부터 나왔던 적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편안하게 자연을 감상해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물은 ‘아쉬움’이 아닌 ‘참회’의 눈물이었다.


“선지식분들은 해질녘이면 오늘도 하루를 그렇게 보냈는가 싶어 다리 뻗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선지식은 매일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철이 들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또 눈물이 흐르더군요.”


정우 스님은 늘 수행자이고 싶다 한다.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생각하지 말고,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말며,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삶을 사는 수행자이고 싶다 한다.


승용차가 귀하던 시절, 그 승용차 한 번 타보고 싶어 운전수가 꿈이었던 어린 소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망해사에 얼킨 부설거사 창건 이야기 한 토막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 후 중학교를 다니던 중 산문의 길로 들어 선 정우 스님이 가진 힘은 바로 ‘진실’이었다. 그 진실 속에 ‘아름다운 향기’ 너머의 ‘향기 없는 향기’가 배어 있는 듯하다. 계곡은 얼어 있었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흐르는 물소리가 난다. 소나무 한 그루와 법담 한 토막 나누는가 보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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