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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 성불사 주지 학명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대자유 얻고자 한다면 ‘귀한 것’ 버려라

생 솔잎에 물 한 모금 마시며

목탁 쳐 남한산 성불사 창건

34년간 포교·나눔불사 매진

재정 40% 소외이웃에 회향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천역을 나와 성불사를 향해 10여분 걷다 보면 작은 사하촌이 나온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골목길을 지나면 곧 성불사 일주문이다. 일주문 편액에는 ‘남한산 성불사’가 새겨져 있다.


남한산! 남한산성! 뭔가 ‘콱’ 막혀오는 느낌이다. 아마도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한(恨)’ 때문이리라. 청나라 침입에 인조는 이곳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으나 결국 피신 45일 만에 식량 부족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성문을 열었다. 소복을 입은 인조는 삼전도에서 ‘항복의 예’를 올렸다. 맨 아래층에 엎드려 9층 계단에 앉아 있는 청 태종에게 3번 무릎 꿇었고, 한 번 엎드릴 때마다 세 번 절했다.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 치욕의 역사다.

 


 

학명 스님은 1976년 성불사를 창건한 이후 그 어느 사찰보다 헌신적으로 ‘나눔의 장’을 펼쳐 오고 있다. 독거노인을 위한 정기적 방문은 물론 반찬과 음식, 생활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음력 5월1일 창건일에 열리는 경로잔치는 벌써 30년 넘게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동구치소 재소자 교화활동과 자원봉사활동까지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사찰재정 40%를 전액 사회복지기금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기실 성불사는 작은 사찰이다. 아직 불사도 회향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찰재정 40%를 사회로 회향한다는 것은 주지 스님의 원력이 아니고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다소 비약적이긴 하지만, 전국의 사찰이 재정 40%를 사회로 회향시킨다면 불교가 우리 사회에서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인재불사에 쏟는 정성은 너무도 지대하다. 재단법인 벽담장학회를 설립한 학명 스님은 지난 2002년부터 해마다 청소년 불자와 종립대학에서 수학 중인 스님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인재를 양성하지 않고는 불교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비 새지 않는 대웅전이 있으니 불사는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스님은 올해부터 장학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한다.


회향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내 놓는다는 것이고, 나눈다는 것은 곧 집착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학명 스님의 ‘나눔’과 ‘회향’ 발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학명 스님은 처음 절에 들어왔을 때 어른 스님들이 일러 준 가르침 하나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한다.


“귀한 것일수록 버리는 마음을 가지라 했습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이 가르침이 한 해, 두 해 절생활을 익히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귀한 가르침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귀한 것은 버리기 아깝다. 그러나 귀한 것일수록 버리라 한다. 아까움을 뒤로 한 채 버리고 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귀하다는 생각으로 인해 모든 사물에 집착하게 되는 겁니다. 확실하게 버림으로써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소유를 말하고 있음이라. 무소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그 재물로 인해 날마다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면 진정한 부자가 아니라는 말도, 비록 재물은 많이 갖지 못했어도 늘 마음이 편하고 가정이 화목하다면 그가 진정한 부자라고 우리는 누누이 들어왔지만 가슴에 새겨지지 않는다.


“중생심에 머물러 있으니 당장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속의 부귀영화만을 탐하는 마음에서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마음으로 돌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소욕지족이라 하지요. 남이 이룬 성과에 눈을 돌리기에 앞서 자신이 해 놓은 성과에 가치를 부여해 보세요.”


스님은 자신의 가치를 평하는데 있어 그 기준을 잘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기준은 ‘내 마음에 부처가 있다’는 아불재아심(我佛在我心)이다.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전제 속에 이미 형언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배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가치를 자신이 읽어낼 수 있을까?


“마음을 알아가는 공부에 길은 없습니다. 길 없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선지식은 문 없는 문을 열어야 길이 보인다고도 했습니다. 길 없는 길을 걷고, 문 없는 문을 열어야 하는 이 공부가 막연하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내 마음에 부처가 있다’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부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큰 공부를 한 겁니다. 내 마음에 부처가 있다면 타인의 마음에도 부처가 있다는 진리에 도달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다 보면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도 체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본래 완전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모든 사람이 본래 부처님이라면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야 할 것이다. 너무도 멋진 세상이다.
“부처님과 똑 같이 받들지 못해도, 내 자신을 위하는 것만큼만 한다면 이 세상은 자비로 가득할 것입니다.”
스님은 깨닫고 못 깨닫고 이전에 부처님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챙겨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부처님을 닮아가겠느냐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부처님 10대 제자들이 갖췄던 노하우를 배워가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합니다. 단 번에 10가지 노하우를 갖추기란 어렵겠지만 하나씩 갖춰가려 노력해야지요. 별난 공부,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항상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남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동안 이미 밀행존자가 되어 있을 것이고, 하나의 계라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근검한 생활을 하는 동안 이미 지계제일존자가 되어 있는 겁니다. 조금씩, 부처님의 제자로서의 풍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참다운 불자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수행이므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만 잘 지켜도 훌륭한 수행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학명 스님은 아주 작은 인연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사실 매년 열리는 경로잔치도 한 노인과의 인연 때문에 시작됐다. 남한산 자락에 성불사를 짓겠다는 원력 하나로 목탁을 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스님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생 솔잎을 씹으며 움막에서 기도를 올렸다. 이 때 마을 노인 한 분이 가끔씩 쌀 한 줌, 반찬 한 가지 갖고 올라와 내려놓고 갔다고 한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불연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니 인연법을 설한 부처님 가르침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 노인 분 역시 저에게만큼은 부처님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독거노인 지원과 경로잔치는 당시 노인이 내어 보인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일환이기도 하다. 사찰과 사하촌간 소통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금도 성불사에 일이 생기면 사하촌 사람들이 소매 걷어붙이고 돕는다. 매일 사하촌의 누군가는 ‘주지 스님 잘 계신지’ 둘러본다. 성불사 행사 때는 사하촌 사람 모두가 자신의 앞마당을 주차장으로 사용하라 한다. 사하촌 역시 성불사 도량이 아닐 수 없다.

 

작은 것 만족함 알아야 행복

선행 지으면 무량공덕 쌓여

부처님 닮아가려는 일상 행보

자비심 넘치는 정토세상 일궈

 

 

▲남한산 성불사 전경.

 


성불사를 찾아 온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부처님 경구가 새겨진 작은 책자 하나라도 손에 들려주려는 학명 스님의 세심한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스님은 택시를 잡으려 길가에 서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한 택시 운전사가 합장을 하며 다가와 말했다.
“스님은 저를 기억하시지 못하지만 저는 스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퇴직한 그 거사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휩싸인 채 성불사를 찾았다. 남한산이라도 오르고자 떠난 길에서 처음 만난 성불사였다. 처음 사찰을 찾은 그에게 스님은 “포장은 형편없지만 알맹이는 꽉 차 있다”며 볼펜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볼펜을 갖게 된 거사는 산에 오르면서도 이 볼펜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우연하게도 산에서 만난 사람이 그에게 사경 공덕에 대해 일러주었다. 거사는 그 볼펜으로 사경을 하기 시작했고, 한 사경도량에서 지인을 만났다. 그 지인은 그에게 ‘택시운전’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알선해 주었다.


“스님, 그 볼펜 한 자루가 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몇 달 있으면 저도 개인택시 한 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거사의 말을 들으니 정말 작은 보시 하나도 큰 인연을 맺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습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큰 것의 가치도 알지 못합니다. 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허욕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 거사도 볼펜 한 자루 허투루 보지 않았기에 새 인연을 맺은 것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누구든 ‘지목행족 하심선행(智目行足 下心善行)’ 하면 참다운 불제자의 삶, 행복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 확언한다.


“부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분명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른 실천 또한 철저해야지요. 나를 낮추며 선업을 지어가다 보면 공덕은 자연스럽게 쌓아가게 되는 겁니다. 전생, 내생 따질 것 없습니다. 오늘을 보면 다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스님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 한 송이도 피었다 하지 말고, 오셨다 생각해 보라’ 한다. 꽃 한 송이도 그 아름다운 형상과 향기를 내어 보이기 위해 온 것이라는 적극적인 사고를 가져보라는 말이다.


“우리도 단순하게 태어난 게 아닙니다. 태어났으니 그저 살다 가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몸으로 와서 부처님의 소중한 법을 만났다면 무엇인가 달라야지요. 자신의 발아래를 바로 살피고(照顧脚下), 주변의 모든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스스로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입춘’이 지난 만큼 이제 곧 ‘봄’이라는 인사에 스님은 “성불사 울타리에 이미 봄은 와 있다” 한다. “좀 있으면 할미꽃도 피겠지요. 그러면 4월, 5월입니다.”
중국 송(宋) 나라의 한 비구니 스님이 지었다는 시 한수가 스쳐간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봄을 보지 못하고(盡日尋春不見春),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다녔네(芒鞋遍踏壟頭雲). 허탕치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歸來偶過梅花下),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春在枝頭已十分).’


남한산성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성불사에서 시작된 작은 인연들이 ‘한(恨)’의 남한산성을 ‘낙(樂)’의 남한산성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성불사 인연이 더 커지면 이 땅은 정토로 변모할 것이다. 성불사 숲에서 노래하는 새소리가 청량하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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