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곡사 주지 원혜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행복공동체 실현은 ‘이상’ 아닌 절박한 ‘현실’

극빈곤자 전 세계 14억여명
한명 굶을 때 다섯명 뭐하나

 

 

▲마곡사 주지 원혜 스님.

 


천년고찰 마곡사가 ‘행복공동체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교계에서도 낯설게 다가오는 행복공동체는 수행과 나눔, 그리고 생태공동체를 하나로 묶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공동체다. 사실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공동체 개념을 벗어난 ‘공동체 바람’이 우리사회에 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전남 장성의 ‘한마을 공동체’가 90년에 시작했다 해도 그 역사는 20년이고, 1990년대 중반부터 전국 각지에서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게 90년 중반부터이니 그 시점으로 따져보면 15년 정도의 ‘짧은 역사’다. 이제 첫 걸음을 내딛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마곡사의 행복공동체 도량 천명 전조는 일찍이 울렸다. 주지에 취임한 원혜 스님은 화려한 주지 진산식 대신 배추김치 5000포기와 10Kg 쌀 1000포대를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에게 전달하는 ‘자비의 김장 나눔한마당’을 진행했다. 나눔의 불교실천 덕목을 원혜 스님, 주지 스스로 실천한 셈이다. 적어도 마곡사에서 시작된 나눔의 온정이 충청 지역에 퍼져갈 것이란 예감은 충분히 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그러나 단순한 나눔이 아닌 나눔공동체를 주창하며, 나아가 수행과 생태까지 접목한 ‘행복공동체’를 지향한 점은 다소 의외다. 선교의 가풍을 잇는 수행풍토 조성도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인데, 여기에 나눔과 생태라는 개념까지 도입하며 새로운 형식의 공동체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상’인 듯싶고 어찌 보면 산사가, 교구본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몫, 즉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로도 보인다. 행복공동체라는 말에 이상과 현실이 집약돼 있는 듯싶다. 이상인가? 현실인가? ‘행복공동체 도량’을 선언한 원혜 스님을 찾아 직접 이 문제를 풀어 보기로 했다.


생태파괴·환경오염 손놓으면
인류에 닥칠 재앙은 명약관화


일단 ‘이상’이라는 시각에서 행복공동체에 이야기를 풀어보려 했다. 그러자 스님은 호주 출신의 윤리실천학자 피터싱어의 저서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물에 빠진 아이가 허우적거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리 깊지는 않지만 구하지 않으면 아이는 죽을 겁니다. 그러나 물에 뛰어 든 순간 새로 산 옷과 구두는 젖을 것이고, 직장에도 분명 늦을 겁니다.” 당연히 구할 것이다. 아이 생명을 구하는데 그 누가 깊은 고민을 하겠는가.


“그러나 실제 상황이 닥친다면 망설인다고 합니다. 그럴 일 없다 항변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상에서 1.25달러 미만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절대적 빈곤층’이라고 부른다 합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함께 숨 쉬고 있는 이 땅에 그런 사람들이 14억명 이상 있다는 겁니다. 세계 인구 6명 중 한 명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다섯명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 다섯명이 자기 수익의 5%만 이들에게 나누어도 굶주림은 해결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치품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이들을 구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습니다. 물에 빠진 아이를 당장 구할 것이라 말하지만 현실을 직시해 보면 그 반대인 겁니다. 우리 사회의 결식아동 현실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지요.”


원혜 스님은 ‘내 아이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이러한 폐단을 낳는다고 짚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라는 의식, 나와 내 가족만 돌보면 그 뿐이라는 이기심이 치유되지 않는 한 피터 싱어가 제시한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기부든, 보시든 이는 자비심 발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와 자식, 오랜 친구나 연인 등의 특정한 관계에서는 자비심을 내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한 자비심을 내는데는 인색하다. 이에 스님은 본말이 전도됐다고 한다. ‘자비를 실천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아무 관계도 없던 대상에서 특별한 관계를 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인식·삶의 방식 전환 없이는
진정한 행복 기대할 수 없어

 

▲마곡사가 2010년 5월 개통한 백범 김구 선생 숲길.

 


“대한민국의 ‘나’는 그 어떤 나라의 사람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작은 세계 현상’이란 이론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6단계 분리 개념’ 즉, 인류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될 정도로 지구가 좁다는 의미에서 작은 세계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보통 수백 명의 사람과 알고 지낸다. 만일 우리 모두가 각자 100명의 친구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1단계에서는 자신의 친구 100명밖에 모르지만 2단계에서는 친구 100명의 친구들인 1만명, 3단계에서는 100만명과 연결된다. 자신으로부터 두 다리만 건너도 100만명과 연줄이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4단계에서는 1억명, 5단계에서는 100억명이 되므로 세계 인구 60억명 중 어느 누구와도 아는 사이가 된다.


“우리 모두가 남남이 아니라 이웃사촌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해 줍니다. 하물며 윤회하는 수많은 생 속에서 부모와 자식, 형제와 이웃으로 맺어졌던 중생들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다 내 전생 부모이고 형제입니다. 이를 직시하고도 자비심이 일지 않을까요? 자비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원혜 스님은 취임 직후부터 경내 일회용품을 줄여 나갔다. 뿐만 아니라 도량을 정비하는 불사에서부터 관리운영에 이르는 소소한 일까지 모두 친환경으로 진행했다. 또한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삶을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스님은 마곡사 옛 어른 스님들이 경작했던 환전을 개간해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여기서 나온 농작물을 지역주민과 불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지난해 배추 값이 폭등했을 때도 마곡사는 경내에서 수확한 배추 일체를 지역주민과 불자들에게 나눠줘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생태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한 셈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본사주지로서 공공연하게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스님이 바로 원혜 스님이다. 강바닥을 파고, 보를 설치하는 지금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4대강 죽이기 사업’에 다름 아니라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생태계 파괴와 인간상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안사회의 한 형태가 생태공동체입니다. 인간만을 위한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보다 공생순환 하는 자연을 닮고자 노력하는 게 더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우리사회에도 많은 생태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현대인은 왜 공동체에 눈을 돌리고 있을까요. 끊임없는 소비욕, ‘너를 밟아야 내가 올라 선다’는 식의 숨 막히는 경쟁 속에 일벌레로 살아가며 날로 쇠약해져만 가는 스스로를 어느날 문득 알아차린 겁니다. 공동체 삶은 결코 도피가 아닙니다. 새로운 삶의 형식입니다.”


원혜 스님이 수행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템플스테이를 정례화 하고, 백범 김구 숲길 등의 ‘명상길’을 조성한 것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함이다.


사찰·지역주민 함께 일구는
수행·나눔·생태공동체 지향


“입적하신 법정 스님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안팎으로 냉철하게 살펴보면 된다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무슨 일을 좋아하며,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고 무엇을 삶의 최고 가치로 삼고 있는지 곰곰이 헤아려보면 자기존재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하셨는데 자신의 내면을 살피라는 ‘법구경’의 가르침을 명쾌하게 풀은 대목입니다.”


원혜 스님은 로마클럽 1972년 선언에 주목했다. 지구적 문제의식을 최초로 제기한 ‘성장의 한계’라는 이 보고서는 투자, 인구, 환경오염, 자원, 식량 등을 중심으로 수학적 분석을 통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자원은 감소하고 있어 멀지 않은 장래에 인류가 쓸 수 있는 자원의 양은 인구성장을 지탱해 줄 수 없을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금까지도 환경론자들에게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 보고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 했다는 게 비판의 핵심입니다. 그도 그러할 것이 석탄과 석유가 바닥나면 성장은 한계점에 도달할 것이라 내다보았지만 신생에너지 창출과 그에 따른 생명공학까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으니 그 비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울린 경종만은 지금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부족 현상, 개발논리에 따른 환경오염 등의 문제는 우리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과학발전에만 의지해서는 풀리지 않습니다. 인식의 전환, 삶의 방식 전환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원혜 스님이 ‘난방비 연 1억원, 60% 절약운동’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아궁이에 단열벽돌을 깔고, 진흙으로 벽 틈새를 막는 세심한 부분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나를 돌아보고, 나눔을 실천하며, 상생하는 법을 체득해 보자는 게 행복공동체의 핵심임이 읽혀졌다. 행복공동체의 ‘행복’은 인류가 지향해 가야하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었다. 무소유, 연기법에 따른 삶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그러고 보니 행복공동체는 낯선 게 아니다. 승가공체가 지향하며 이뤄낸, 지금도 이뤄가고 있는 공동체적 삶을 말하고 있다. 백장 스님의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청규, 성철 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이 모여 결사한 ‘봉암사 결사’에서 내어 보인 17개 규약이 여기에 농축돼 있다. 다만, 지역주민, 나아가 사회 시민과 함께 걸어가 보자 하는 원력이 하나 더 보내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 원력이 갖는 의미는 깊다. 승가만이 아닌,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세상을 맑혀 가자는 큰 원력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부장을 역임할 당시인 1997년 스님은 ‘천년을 향기로운 생명으로’라는 책을 출간했었다. 스님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교를 만나는 첫 번째 장소는 절입니다. 그 곳에 ‘어떻게’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절’이라는 ‘외형’이 ‘어떻게’의 내용을 규정짓고, 내용이 동시에 외형의 기능과 역할을 만들어 갑니다.”


‘절의 역할’에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어쩌면 봉은사 주지를 역임한 후 맡은 출가도량 마곡사에서 ‘진정한 절의 역할’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교구사찰과 함께 ‘마곡사 100년 대계’를 그려가고 있는 원혜 스님은 지금, 마곡사의 쇄신은 물론 장기적 안목에서의 ‘마곡사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그 미래는 불교의 미래이면서 인류의 미래이기도 하다. 행복공동체는 ‘이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시급히 풀어가고 걸어가야 할 ‘일’이었다.
속도경쟁 속에서 눈코 뜰 새 없는 현대인들에게 한마디 일러 달라 부탁을 드렸다. 스님은 중국 종념선사의 일언 한 토막을 꺼냈다.


설날 아침 한 사람이 종념선사에게 물었다.
“오늘 설날 하루 어떻게 마음을 쓰시렵니까?”
“너희들은 하루 스물네 시간이 부려먹지만 나는 스물네 시간 밤낮을 부려먹는다.”

 

마곡사 새벽 숲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 볼 일이다. 모든 게 잠들어 있으면서도 서서히 깨어나는 시간, 대지가 숨을 고르는 시간, 어슴푸레 하지만 먼동의 설렘이 다가오는 시간에 새벽길을 걸어보자. 그 시간만큼은 우리가 부려보는 것 아닌가.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