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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인연-3

기자명 법보신문

타력문은 민예미의 성질과 상통
끝없는 반복이 재능의 차이 소멸

5. 공예의 세계에 오면, 자력의 길을 걷는 작품 중에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극히 드물다. 아름다운 작품은 오히려 이름 없는 이가 타력에 의해 만든 것 가운데 많다. 이것은 전자가 난행(難行)의 길을 걷기 때문이고, 후자는 이행(易行)의 길을 걷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일찍부터 말하고 있는 것이 정토계(淨土系)의 사상이다. 사실상 작자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보다는 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은 작품에서 구원받는 사람이 훨씬 많다.


진종(眞宗)에는 ‘악인정기(惡人正機)’의 가르침이 있어서, 선인(善人)이 구원되는데 악인의 구원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라고 말하는데, 민예품의 경우에도 문득 마음에 집히는 것이 있다. 자력문의 천재로부터 좋은 작품이 나오는데 타력문의 범인(凡人)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라고 말하더라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왜일까?


염불종의 말을 빌리면, ‘부처님의 원(佛願)에 편승하는’ 기연(機緣)이 범부에게서 줄곧 성숙되어 왔기 때문이리라. 부처님의 원이라는 것은, 부처님이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고 원하는 것으로, 그 원력에 편승하기만 하면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이야말로 민예미(民藝美)의 성질을 잘 해명해 주고 있지 않는가.


6.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라면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없다고 한다면, 이름 없는 공인에게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민예품에 아름다움이 나타날 기연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인들은 특별히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될 수 없는 채로 종종 볼 만한 것을 만들어 낸다. 그 뿐인가? 예술가조차 쉽게 나타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기에 이른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름다움을 만들 자격이 있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자격이 없는 채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불가사의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런 불가사의에 관하여 가르침을 설하고 있는 것이 염불종이 아니었던가. 아미타불은 중생에게 왕생의 자격을 요구한 일이 없다.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왕생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속삭이고 있다. 이런 소리야말로 민예의 아름다움에 숨어있는 불가사의를 해명해 주지 않는가. 염불문의 가르침 이외에, 누가 이것을 확실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가.


7. 염불은 행주좌와의 염불이어야 할 것이다. 염불로 날이 새며 염불로 날이 저무는 것이 신자의 일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념(多念)이 아닌 염불은 없을 것이다. 비록 일념(一念)으로 염불을 한다 할지라도, 그 일념은 다시 새로운 일념으로 끊임없이 쌓여간다. 칭명은 생각생각마다 칭명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범부인 공인에게서 어떻게 성불(成佛)한 물건이 생겨나는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곳에는 마음과 손 사이에 헤아릴 수 없는 반복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고맙게도 이러한 반복은 재능의 차이를 소멸시킨다. 서툴면서도 서툴지 않게 된다.


일본불교사연구소 번역


▲야나기 무네요시

*진종(眞宗): 정토진종의 줄임말. 진실한 정토종이라는 의미이지만, 신란(親鸞) 스님의 교단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일념과 다념: “나무아미타불”을 단 한번만 염불하더라도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일념의(一念義)라고 하고, 여러 번 지속적으로 염불해야 한다는 입장을 다념의(多念義)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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