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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향곡스님에 인가 한국불교의 대표 선사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1.12.20 09:56
  • 수정 2011.12.20 10:08
  • 댓글 0

조계종 새 종정 진제 스님은
1953년 석우스님 은사로 출가
‘향엄상수화’ 화두로 대오 얻어
禪대중화·종교간 대화에 앞장

 

▲12월14일 종정으로 추대된 진제 스님은 수락 법어를 통해 “간화선 진작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12월14일 조계종 새 종정으로 추대된 진제 스님은 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사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진제 스님은 30대 나이에 당대 선지식으로 추앙 받았던 향곡 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아 인천 용화선원 송담 스님과 함께 ‘남(南)진제 북(北)송담’이라 불릴 만큼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으로 존경을 받아 왔다.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진제 스님은 스무 살 되던 해인 1953년 우연한 기회에 마을 인근 해관암을 찾았다가 통합종단 출범 이전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을 친견하고 불연(佛緣)을 맺게 됐다. 당시 석우 스님은 “세상의 생활도 좋지만 그 보다 더 값진 생활이 있으니, 그대가 한 번 해보지 않겠는가”라고 물었고, 진제 스님은 “무엇이 그리 값진 생활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에 석우 스님은 “범부가 위대한 부처가 되는 법이 있네.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행의 길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답했고, 한참을 고민하던 진제 스님은 이 절에서 수행을 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크게 환희심을 느껴 출가를 결심했다. 이 일을 계기로 출가수행자의 길에 오른 진제 스님은 그 해 해인사에서 석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또 1958년 해인사에서 혜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진제 스님을 깨달음의 길로 이끈 이는 향곡 스님이었다. 1958년 은사 석우 스님의 입적으로 ‘깨침의 구심점’을 잃은 진제 스님은 그 길로 경남 월내 묘관음사에 주석하고 있던 향곡 스님을 찾았다. 당시 향곡 스님은 경허·수월·운봉 스님으로 이어져 오는 법맥을 계승한 당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스님이었다.


향곡 스님으로부터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입으로만 나뭇가지를 물고 벼랑에 매달렸을 때 아래를 지나던 다른 스님이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을 때 어찌 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받은 진제 스님은 이후 결제와 해제 구분 없이 산문을 나서지 않고 오로지 화두타파에만 매진했다. 그러길 2년, 스님은 마침내 진리의 세계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역대로 내려오는 모든 법문이 확연해지고 또 명백해졌다.


그러나 ‘벽암록’의 모체가 되는 ‘송고백측(頌古百則, 1700공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100개를 추린 것)’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중국 송나라 때 설두 선사가 다른 공안은  다 확연이 꿰뚫었지만 오직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이라는 공안에 막혀 다시 20년을 참구했듯, 진제 스님도 이 화두에 막혀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때문에 진제 스님은 다시 5년간 이 화두를 참구했고 마침내 “한 몽둥이 휘두르니 비로정상 무너지고/ 벽력 같은 일 할에 천만 갈등 흔적 없네./ 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라는 오도송을 읊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향곡 스님은 곧 진제 스님을 불러 법거량을 했고, 법제자가 깨달음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고 크게 기뻐하며 전법게를 내렸다. 이 때 진제 스님의 나이 34세였다.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진제 스님은 이후 선의 대중화를 위해 진력했다. 1971년 해운정사를 창건해 금모선원의 조실로 추대된 이후 대중선방을 개설해 출재가를 막론하고 참선법을 지도해 왔다. 또 1994년 동화사 조실로 추대된 이후 18년간 해마다 하안거와 동안거 결제에 임하는 전국의 수좌들과 재가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참선 수행을 지도했으며 직접 수행자들의 공부를 점검해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진제 스님은 1998년과 2000년 백양사에서 열린 무차선대법회에서 초청 법주를 맡아 서옹 스님과 함께 대중들에게 법을 설했으며, 2009년 부산 벡스코에서 750년 만에 ‘백고좌대법회’를 재현하는 등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을 계승하는데 앞장서 왔다.


그런가 하면 진제 스님은 종교간 대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스님은 지난 1월 한국불교를 배우기 위해 방한한 세계적 신학자 폴 니터 교수와 한국불교의 간화선을 평화의 수행법으로 세계화할 것 등을 논의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지난 9월에는 미국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2000여 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간화선 세계평화 대법회를 열어 미국인들에게 한국불교의 진수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실천불교전국승가회를 비롯해 대한불교청년회 등은 논평을 내고 “진제 스님은 올곧은 수행자의 삶을 통해 중생제도에 앞장서 온 선지식”이라며 “그 삶과 정신이 종단에 널리 홍보되어 한국불교가 새롭게 중흥하는 계기가 되길 발원한다”고 밝혔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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