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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병통과 치유]1. 갈등선(葛藤禪)

기자명 법보신문

참구 않고 지식으로만 풀이하는 것
갈등 화해시키고 하나 만드는 게 선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적으로는 지역간, 계층간, 빈부간의 갈등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갈등, 그리고 자신의 직업이나 하는 일에 대한 갈등 등, 갈등의 갈래는 매우 많다.


‘갈등(葛藤)’이란 칡[葛]과 등나무[藤]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반목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일이 복잡하게 뒤얽혀서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 혹은 의견 충돌로 인하여 불화음이 전개되고 있는 상태다. 심리학적으로는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는 2개 이상의 욕구가 발생한 상태, 혹은 방향이 전혀 다른 두 개 이상의 욕구가 동시에 발생하여 몹시 고민하는 상태, 그리하여 현재의 위치에서 마음이 이동하기 곤란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선(禪)에서 ‘갈등(葛藤)’이란 언어문자를 가리킨다. ‘갈등선(葛藤禪)’이란 이리저리 언어문자로 선을 풀이,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칡이나 등나무 덩굴이 뒤엉켜서 있듯이, 난해한 수사(修辭)를 동원하여 언어적으로 장황하게 풀이하는 것을 뜻한다. 즉 실제적인 참구는 하지 않고 지식과 학식을 동원하여 고칙(古則)이나 공안(公案), 화두를 풀이하는 것, 또는 그런 선승이나 납자를 깎아 내리는 말이다. 그래서 어구를 가지고 노는 것(완롱/玩弄)을 ‘한갈등(閒葛藤)’이라고 한다. 부질없이 한가롭게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문자선’이라고 한다.


선은 지식이 아니다. 선은 직접적인 수행과 실제적인 체험을 통하여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공(空)의 진리, 본래면목을 발견, 체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실참(實參) 없이 언어적·문자적으로 고칙이나 공안을 풀이, 해석하는 것으로 선을 삼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언어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이다. 여기서 ‘실참(진실한 참구)’이란 오로지 앉아 있는 것[坐禪]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실참이란 마음을 화두나 공안에 올인(All In)하는 것을 말한다. 정려(精慮, 고요히 생각함, 명상), 선정(禪定), 혹은 하나의 주제를 깊이 생각하는 것[思惟修]이다.


‘임제록’의 ‘상당 1’ 끝부분을 읽어보도록 하겠다. “또 임제스님이 말했다. 오늘의 법연(法筵, 설법)은 일대사(一大事, 일생일대의 중대사, 곧 깨닫는 일)를 밝히기 위한 것이오. 더 질문할 사람이 있소? 있다면 속히 나와서 질문하시오. 그러나 그대들이 조금이라도 입을 열면 그 즉시 진리와는 멀어지게 될 것이오. 어째서 그러한가? 보지 못했소?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은 언어문자를 떠나 있다’라고 하셨소. 그 이유는 법은 인(因)에도 연(緣)에도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오. 그대들이 철저하게 내 말을 따르지(믿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리저리 언어문자[葛藤]로 떠들고 있는 것이오. 이것은 왕상시(王常侍)와 여러 관원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오. 도리어 여러분들의 불성을 더 어둡게 할까 걱정이 되오. 법문 그만하고 물러가느니만 못할 것 같소.”


다음은 황벽의 ‘전심법요’이다. 배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세간의 진리입니까?” 황벽화상이 대답했다. “언어문자로 설명해서 무엇 하려는가? 본래 청정한데 어찌 언설을 빌려서 묻고 답하겠는가?


만법은 일(一), 일여(一如)이다. 일여란 곧 ‘여여(如如),’ ‘진여’로서 진리와 합일된 상태이다. 둘이 아닌 하나(一), 그것을 유마거사는 ‘불이(不二, 하나)’라고 했다. 둘은 이원론이고 이원(二元)은 갈등이고 갈등은 공이 아닌 불공(不空)이다. 갈등은 이물질이 들어가서 청정성을 상실한 상태다. 그 상태가 번뇌 망상이고, 그것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오늘의 우리, 중생이다.


▲윤창화 대표
현실과 이상(理想) 모두를 갈등상태로부터 화해시켜서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하나가 되면 속이 후련해진다.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함구는 하나지만 개구(開口)는 입이 둘이다. 언어문자(갈등)의 방해공작으로 인하여 선의 본질과 갈등상태로부터 다시 합일시켜서 부처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
해인사 강원과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등에서 수학했다. ‘왕초보 선박사 되다’ ‘무자화두 십종병에 대한 고찰’ ‘한암의 자전적 구도기 일생패궐’ 등 많은 저술과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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