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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크는 아이들

기자명 김민경
  • 동정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대승보살의 구도적 실천자의 대표적 상징으로 그려져 있는 것처럼 불교적 세계관에서 아동은 단지 축소된 성인으로서의 미성숙자가 아니라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로 표상되고 있다.(황옥자, 『불교아동교육론』)

그래서인가.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찰들이 도량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일명 '절에서 크는 아이들'은 불교 밖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로 자리 잡고 있는 한국불교 특유의 풍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에서 크는 아이들의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는 영 찾을 길이 없다. 지금껏 불교계 안의 그 어떤 기관도 이들의 현황을 파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0명 넘는 어린이가 사찰서 생활한다

취학전 유아는 적응이 빠르지만…

마음의 상처 줄이려고

'대외용 엄마'를 둔 곳도 많다



다만 비근한 조사가 다름 아닌 본지에서 약 일년 전 이루어졌다. 전국에 산재한 27개 미신고 불교복지시설과 사찰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대략 3000명의 갈데없는 어린이와 노인들이 부처님 품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것으로 파악됐다(본지 제655호, 1-3면 특별기획 참조)

이 조사를 통해서도 사찰 안에서 미래를 열어가는 어린이들의 구체적인 숫자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10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전국 수 백개 사찰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또 절에 다니는 불자들이라면 모두가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피아노·컴퓨터는 기본… 원하면 교육지원 '적극'

길에서 아이가 거리두며 걸어도 그 마음 먼저 헤아려

최근 몇몇 매체가 이들 절에서 크는 어린이들을 다루며 잠시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대부분 표피적, 흥미본위의 시각 아래서 이들을 다룰 뿐이었다. 자, 그럼 둘러보자. 도대체 어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절에서 길러지고 또 그들의 세계는 어떠한지.



어떤 아이들이 절에 오나

대부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친인척마저 거두기 힘든 상황이 된 아이들이 각종 경로를 통해 절에 온다. 남자아이들은 비구 스님이 운영하는 절에, 여자아이들은 비구니 스님의 절에 오는 것이 상례다.

여러 사찰을 취재해본 결과 아이들을 단 한명도 기르지 않는 절도 많았지만 한명 이상, 많게는 서너명 이상의 어린이를 기르는 절이 적지 않았다. 50년대엔 전쟁고아들이, 60년대엔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 대거 사찰로 보내져 그야말로 전국의 절마다 아이들이 넘쳐 났지만 지금은 사회복지시설이 크게 늘어 그 수가 매년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부모의 이혼 등으로 인한 고아 아닌 고아들이 절에 맡겨지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절에 오는 아이들의 나이는 대개 초등학교 취학 이전이 많았다. 세상에 나온지 불과 보름 된 영아나 돌도 맞이하기 전의 유아도 종종 스님들 품에 맡겨진다. 스님들은 '3∼5세 무렵의 아이들이 환영(?) 받는다. 아무래도 쉽게 적응하고 키우기도 수월하다'고 말한다.

이는 사찰생활에의 적응의 문제 뿐만 아니라 수행과 기도가 본분인 스님의 입장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매달려야 하는 영아를 거두기는 현실적이 어려움이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 된다. 하지만 인연이 결국 그러하다면 손이 많이 가는 영아들도 기꺼이 거두는 것이 여전한 절 집안 인심이다.

절에 오게 된 아이들은 일반의 예상과 달리 사찰 생활에 매우 빨리 적응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30년 가까이 셀 수 없을 정도의 아이들을 거두고 지금은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천시 A사의 B스님은 '대부분 몹시 비참한 경제적 상황과 가정환경 속에 오래 노출된 경우가 많은 탓인지 크고 넓은 집(아이들 눈으로 보기에)인데다가 풍족한 먹거리(일년 내내 떡과 과일, 과자, 요구르트가 들어오는 곳이다)와 동년배의 수준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교육환경, 사찰 사정에 따라서는 독방까지 제공되는 생활에 일찌감치 만족해한다'고 설명했다.



스님들의 높은 교육열

절에서 크는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크게 달라진 교육환경에도 다소 영향을 받고 있다. 비구니계 전체에서 아이들을 많이, 잘 길러낸 스님으로 유명한 서울 C사의 D스님은 '요즘 대부분의 가정이 한 두명의 아이 교육에 온 가족이 나서고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아이를 거두는 스님들도 마찬가지 태도와 사고를 갖고 있다.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게 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배려이며 공부를 잘해서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면 가능한 아이의 청을 들어주고 피아노학원, 컴퓨터학원 등은 기본적으로 보낸다. 예를 들어서 예체능에 소질을 보이면 발레든 바이올린이든 마음껏 배우도록 뒷바라지 하는 스님들도 많다'고 전한다. 불교계 특유의 배움에의 열정, 수행에의 열정이 스님들의 의식 속에 녹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부모 손에서 자란 아이들에 견주어 단 한치도 모자람 없이, 위축됨 없이 자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높아서 자부심 강한 아이로 자라는데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그래서 한 스님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그 학년 전체 담임선생님들을 절에 초빙하여 사찰음식을 대접하고 아이가 크는 환경을 보여 줌으로써 아이가 학교에서 위축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며 또 다른 스님은 대규모 생일잔치를 열어주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례가 많았다.

이러한 스님들을 옆에서 지켜 보아온 한 불자는 '다른 곳도 아닌 부처님 품 안에 들어 온 아이들은 여타 복지기관에 보내어지는 것보다 훨씬 운이 좋고 행복한 경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님을 슬프게 하는 것

보통 집안의 아이들도 부모의 속을 썩여가며 크듯이 절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자주 스님들을 슬프게 하기도 하고 스님들의 가슴을 까맣게 타들어 가게 하기도 한다.

스님들은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많은 경우 방황하며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기에 절에 들어 온 경우에는 오래도록 절에서의 생활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절에서 산다는 사실이 동급생들에게 알려지면 놀림을 받는 일도 많아서 아이들을 위해 그러한 사실을 가능한 숨기는데 노력하고 있다는 답변도 의외로 많았다.

그래서 학부모 참관 수업이나 상담행사에 참가해 줄, 남에게 엄마라고 소개할 수 있는 연령대의 여성신도를 아이들마다 한 사람씩 정해 두는 '풍습'이 적지 않았다. 공양주 보살을 엄마라고 부르게 하거나 '대외용' 엄마로 활동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한 스님은 '서운함에 앞서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함께 시장에 가지도 않고 멀쩡하게 함께 걸어가던 아이가 슬그머니 옆으로 가거나 뒤로 처지면 짐짓 모르는 척 해준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모든 스님이 아이를 맡을 때부터 감당하기로 예상한 일이며 스님들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끝끝내 절에서의 생활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들의 문제였다. 갖은 노력과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절에서 지내기를 거부하면 스님들도 대책이 없단다.

절에서 크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출가하지 않는 이상 절에서 독립해 나가 살지만 그 이전에 다시 부모에게 돌려 보내지는 아이들도 간혹 있는데 대개 적응에 실패한 케이스이다.



스님들의 기쁨

그렇다면 '사서 고생하는' 스님들은 아이들을 키워내며 어떤 즐거움을, 기쁨을 얻고 있을까. 한 스님은 '오래도록 말도 못하게 고생하고 나면 '이제 다시는 아이를 맡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눈 앞에 다시 아이가 서 있으면 그런 마음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지고 또다시 아이를 거두게 된다'고 말하며 웃었다. 스님들은 아이를 키우며 얻는 기쁨을 공통적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는 세상 대부분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무탈하게 원만한 인격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는 아이를 키움으로 인해서 일반적인 부모들의 심정을 여실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E스님은 '절에서 크는 아이들은 '수혜를 입는' 위탁아가 아니라 엄연한 대중이자 한 식구'라며 '그래도 불교의식을 잘 익혀 나가고 한사람의 훌륭한 불자로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면 수치로 측정 할 수 없는, 도저히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님들은 소박하게, 공부만 잘해도 무용만 잘해도, 성격이 활달하기만 해도 기쁘다고 했다. 역시나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보약 한 첩도 맘대로 지어 먹지 않는 검박한 스님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쓰는 돈은 전혀 아까워 하지 않는다. 한 솥 밥 먹는 식구니까.



얼마나 출가하나

과거에는 절에서 자란 많은 아이들이 스님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절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대로 수행자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비구니스님들로만 이루어진 종단인 보문종 보문사의 총무 스님은 '우리 절의 경우에는 절에서 자란 아이들 가운데 약 50% 가량이 출가하는데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비율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90% 가까이 출가했었다고 한다. 보문사에는 현재 약 20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그 외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아이들을 무사히 키우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그마저도 요즘 세상에서는 보통일이 아니기에) 출가까지는 기대도 안하는 분위기들이었다. 하지만 스님들은, 부처님 품으로 들어 온 아이들을 스님들과 마찬가지의 입장과 환경을 함께 나누는 불제자로 대우하고 있었다. 마치 선재동자처럼.


※ 본문에서 인용하거나 취재한 사찰과 스님들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은 아이들의 신상명세가 세간에 노출되기를 꺼리는 스님들의 간곡한 마음 때문입니다. 취재는 지난 두 주간 서울 경기 일원의 사찰에서 이뤄졌습니다. 취재에 협조해준 스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 올립니다.


김민경 기자
mkkim@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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