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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살인’ 방관한 자화상

기자명 법보신문

결국 그토록 두려워했던 ‘스물 한 번 째 죽음’ 소식이 전해졌다.


‘정리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통해 반대투쟁을 전개하며 내건 ‘외침’이다. 그들의 절규에 사측과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사측은 노동자를 갈라놓았다. 해고할 사람과 해고하지 않을 사람, 그러니까 ‘산 자’와 ‘죽은 자’로 분리해 놓은 셈이다. 함께 파업에 동참했던 ‘동지’도 정리해고 명단 발표 직후 ‘적’으로 변했을 뿐이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에 정부가 한 일은 하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내내 보여줬던 그 식 그대로였다. 경찰을 동원한 폭력 진압. 방패에 찍히며 울부짖는 노동자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결국 모든 책임은 노동자가 떠안았다. 8·6 노사합의를 통해 파업 농성자 중 42%는 1년 무급휴직, 52%는 정리해고를 수용했다. 이후 100여명의 노동자가 구속됐다. 징계를 받은 조합원도 상당수 있었다. 8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 110억 원의 구상권이 청구됐다.


반면 사측은 8·6합의를 이행하고 있는가. 당시 노사는 비정규직 및 무급휴직자 복직, 징계철회 및 신규인력 부족 시 복귀, 퇴직자에 한해 취업알선 및 직업훈련 등도 체결했다. 약속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복직 약속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지 않다. 2011년 12월부터 노동자들은 ‘희망텐트촌’을 선포하며 ‘해고자, 무급휴직자, 비정규직 노동자’복직 약속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21명의 ‘죽음 소식’이 전해졌다.


무서운 세상이다. 적어도 노동자들에게 한국 사회는 무서운 사회다. 법으로 보장된 파업을 하고도 결국 모든 책임은 노동자가 지어야 하고, 절규에 몸부림치다 생명이 꺼져가도 이 역시 노동자들의 책임일 뿐이다. 스물 한 번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 동안 진심어린 사측의 ‘사과’ 한마디 없었으니 말이다.


노동자들의 이러한 아픔과 절규를 보듬어야 할 불교계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 몰렸을 때, 경찰 진압에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별다른 행보는 없었다. 물론 침묵만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해고노동자 가족 대표단과의 만남을 가진 후 ‘이 문제가 더 이상 파국으로 치닫기 보다는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일성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뿐이다.


지속적인 관심이 결여됐다. 조계종 총무원의 ‘의사 표명’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후속조치는 없었다. 폭력 진압 후폭풍이 지난 다음엔 별다른 행보가 없었다. 적어도, 노동자들의 생명이 하나둘씩 꺼져갈 때 교계는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어야 했다. 아울러 죽음으로 몰린 유가족을 위로하고, 지금도 농성에 나서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 주어야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늦었지만 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정의평화불교연대 등 교계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 나섰다는 점이다. 쌍용차 희생 노동자들을 위한 천도재와 함께 노동자의 복직과 정리해고 관련법 개정 등의 제도개선도 정부와 회사에 요구할 것이라 하니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자문해 보아야할 게 있다. 조계종 총무원, 교계시민사회단체의 행보에만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았는지 말이다. 혹, 우리 역시 그들의 죽음을 그들만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노사문제가 불거져 경찰진압이 시작됐을 때 우리 문제가 아닌 그들만의 문제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어쩌면 우리의 무관심이 지금의 사회를 이토록 무섭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사측과 투기자본, 현 정부에 의한 ‘간접타살’이다. 우리 자신도 이를 방관만 했다면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천도재에 앞서 교계시민사회단체가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라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서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스물 한 번 째 죽음 소식을 접했을까. 접했다면, 그들도 노동자이면서 서민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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