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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구월산 월정사 [중]

기자명 이학종

민족과 애환 함께 해온 염불결사 아미타도량

진입로 옆 돌장승-부도밭 일품,
9세기 중엽 창건…국보 78호 지정

종소리와 달빛이 비치는 곳마다 고금이 같고, 법당에 소장한 천축경은 연꽃 발우에 새겨져 있네. 본래 외로운 암자 이름도 없어졌는데 염불결사를 이뤘으니, 서래 대사의 자취 지금도 월정사에 뚜렷하네.(鐘聲月色着 處訂古今/ 堂藏天竺經 況蓮華鉢/ 本无孤菴名 復結蓮社/ 西來大士蹟 現在月精)'



월정사 극락보전에 걸려 있는 주련의 내용이다. 보통의 사찰 주련이 7언 또는 5언으로 이뤄져 있지만 이곳은 특이하게 9자로 된 주련이 법당 전면의 네 기둥에 걸려 있다. 아마도 월정사의 중창과 관련된 내용으로 여겨지는데, 낯선 글자가 있어 역경원에 판독을 의뢰하니 역시 한 편의 멋들어진 시가 이렇듯 탄생된다. 역경원에서, 주련의 한자를 80%정도는 파악을 했다고 할 수 있으나, 일부 판독이 어려운 글자가 있어 혹여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정자로는 신문에 표기하지 말아달라는 신신당부를 했지만, 한글로만 소개하면 아무래도 그 맛이 덜한지라, 결례를 무릅쓰고서라도 그 구절을 밝히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일 듯싶어 공개한다.



달마대사의 자취 여전하고

주련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월정사는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미타도량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염불결사가 있었던 모양인데, 하기야 구월산은 역사적으로 온갖 사건의 배경지 역할을 한 곳이니 이곳의 민초들이 극락세계를 염원했을 것은 미루어 짐작이 되는 일이다. 단군의 정기가 어린 절이며, 고려시기에는 왜적의 침탈이 잦았고, 장길산이나 임꺽정, 일제 강점기의 항일투쟁에 이르기까지 구월산은 민족과 함께 애환을 함께 해온 산이 아니던가.

월정사로 오르는 길은 깊은 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한적한 시골 산길이다. 나뭇가지들은 이파리들을 활짝 벗어버려 구월산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골격을 다 드러내었다고 하여 개골산이라고 부른다지만 한 겨울의 구월산 또한, 비록 금강산은 아니더라도, 개골산의 진수를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산등성이 곳곳에 크고 작은 바위가 어금니처럼 박혀 있고, 겨울인데도 제법 많은 계곡물이 흐른다. 도처에 작은 돌조각이 많은 것으로 보아 구월산은 만만치 않은 악산(嶽山)임에 틀림이 없다.

월정사 진입로는 계곡을 끼고 이어져 있다. 자동차 한 대가 들어갈 정도로 닦인 비포장도로인데 덜컹거리는 맛이 또한 일품이다.



한참을 달려 들어가다 보니 일주문이 서 있을법한 위치에 아주 잘생긴 돌장승 두기가 마주 보고 서 있다. 장승의 가슴부위에는 불보살의 세계를 상징하는 상원(上元)과 중원(中元)이라는 음각의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으니, 장승 그 자체가 지금부터는 성스러운 부처님의 도량임을 뜻하는 일주문인 셈이다. 그 푸근함과 익살스러움이 남원 실상사의 석장승과 견주어 빠지지 않는다.



부도는'툭툭'쪼아만든 듯

산길 옆으로 늘어선 부도 밭은 월정사의 연륜을 알게 한다. 실제 월정사는 그 본사였던 패엽사보다도 훨씬 앞선 시기에 창건된 절이다. 부도 밭이면 다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월정사의 부도는 여느 절보다 훨씬 더 소박하고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아무래도 불교의 형편이 좋지 않았던 조선의 부도형태인 종 모양(鐘型)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이곳의 부도는 굴러다니는 바위 돌을 그저 정으로 툭툭 쪼아 만든 듯한 서민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부도 밭을 지나 도보로 5분쯤 올라가노라니, 저 만치 앙상한 나뭇가지 새로 월정사의 고즈넉한 광경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월정사는 현재 북한의 국보 75호로 지정돼 있다. 9세기 중엽에 창건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그 건축양식이나 구조로 보아 조선 초기에 중창된 건물로 보인다. 월정사 현판이나 제령군지에는 846년에 창건되었으며, 1650년부터 1871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보수를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본전인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금동지장보살상이 유명한 명부전, 수미산의 밝은 달이 못에 잠겼다는 의미를 지닌 수월당이 동서 양쪽에 배치했고, 법당 정면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만세루를 짓고, 극락보전의 옆으로 승당을 배치하는 가람구조를 가지고 있다.

북한을 방문, 구월산 월정사를 돌아본 바 있는 풍수학자 최창조 교수는 월정사 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월정사 터 잡기는 보통 강렬한 것이 아니다. 월정사는 그 좌향과 절 이름이 자생풍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굳이 원한다면 남향을 고집할 수도 있는 환경인데도 산세의 흐름을 따라 동남향을 취한 것이 그런 예다. 가뭄인데도 계류 흐르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개성 송악산을 '여성의 산'이라고 표현한 안내원이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구월산은 남성의 전형이다. 그 기운이 너무 강해 양기탱천이란 표현을 써도 조금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양기탱천한 '남성의 산'

최 교수는 월정이라는 절의 이름도 바로 이 풍수의 도리에서 찾는다. 달이란 음(陰)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정수(精粹)만을 골라 월정사라고 하였으니 음양상보(陰陽相補)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월정으로 탱천하는 양기를 눌러보자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 교수의 글에는 월정사에 승려가 없다고 했으나,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때는 젊은 승려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반기고 있다.


이학종 부장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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