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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래사, 창작등 만들기 현장을 가다

보리심 등불 하나 세상을 밝히다

파인애플·포도 등 ‘인기’
절 대중, 한마음으로 제작

 

 

▲ 부산에서 ‘등 잘 만드는 절’로 통하는 부산불교교육원 여래사는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장엄등에 도전 중이다. 여래사로서는 처음이다. 부처님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리수 잎, 불국토 염원을 담은 태극기와 불교기, 항마촉지인 수인을 한 부처님 장엄등이 목표다.

 

 

4년 전, 부산불교교육원 여래사(주지 종우 스님)에는 등불이 하나 있었다. 일명 파인애플 등. 법당에 달기 위한 연등의 철사 대 비용을 아끼기 위해 풍선을 불어 노란 연잎을 붙였더니 연꽃이 아니라 마치 파인애플 같다는 의미로 즉석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파인애플은 다시 바나나 등을 밝혔고 바나나 등은 다시 포도 등으로 빛을 나눠 주었다. 4년이 지난 현재 여래사 법당이 일명 ‘등 공작소(?)’로 거듭난 이유, 바로 파인애플 등이 ‘무진등’이 되어 꺼지지 않는 등 창작의 인연으로 이어진 덕분이다.


부처님오신날 기념 부산 제등행진을 한 달 앞둔 4월20일, 부산 여래사 지대방에는 니퍼, 드라이버, 전구, 온갖 전선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주지 종우 스님과 팀을 이룬 불자들이 이제 막 골격이 완성된 창작등의 틀을 놓고 배접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열정적인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손끝에 노랗고 붉은 물을 들이며 열심히 연잎을 빚고 있는 불자들이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덕분에 공작소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벌써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간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바로 옆 관음전 관세음보살님도 같은 마음인걸까?  보살님의 온화한 모습에 힘을 얻은 공작소는 다시 힘차게 창작등 만들기 법륜을 가동시켰다.


부산불교교육원 여래사는 교육생 100여명, 신도 200여명의 소박한 포교당이다. 25년 역사를 자랑하는 재가불자 교육의 도량이지만 사실 조계종 인가 신도전문교육기관을 운영한다는 점 이외에는 특별히 내세울만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여래사는 부산 불교계에서 ‘등 전문 절’로 통하고 있다. 2010년 부산 연등축제 창작등 경연대회에서 ‘포도 등’으로 최우수상, 2011년 ‘나비 등’으로 장려상을 수상하며 등공예 전문가 한 명 없이 ‘등 잘 만드는’ 사찰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연등축제와 팔관회 체험 부스에서 선보인 ‘염화미소 등(한 송이 연꽃)’도 재료가 없어서 나누지 못할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4년 전 파인애플 등에서부터 4천개 이상이 배포된 ‘염화미소 등’까지 모든 등은 여래사 창작품이다. 이 같은 창작의 비결은 종우 스님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운문사 강원 시절에 어린이 여름불교학교 재료를 만들 때 스스로 손재주를 가졌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부산불교교육원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몇 해 전 여래사 주지를 맡았는데 그리 넉넉한 절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아끼자는 생각에 풍선을 활용해 파인애플 등을 만들었고 이 등을 만들면서 다른 등도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바나나 등, 포도 등도 완성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부산불교연합회에서 창작등 경연대회를 하더군요. 이 때 출품한 포도 등이 최우수상을 받은 겁니다.”


설명은 단순했지만 이 포도 등에는 셀 수 없는 손길이 숨어 있었다. 불자들이 돌아가면서 연잎을 빚었고 부직포를 잘랐다. 전선과 LED 전구를 일일이 연결해서 포도알 한 송이 한 송이에 불을 밝히는 일을 수작업으로 했다. 이렇게 모든 불자들이 참여한 덕분에 120알의 포도 등이 완성됐다. 작은 등 하나가 어둠을 환하게 밝히듯 여래사 불자들 마음도 창작등으로 하나 된 셈이다.


지난해에는 불자 모두 나비가 됐다. 비록 장려상에 그쳤지만 아이디어는 누가 봐도 감탄할 만큼 화제를 모은 이 나비 등은 불자들이 직접 어깨에 반짝이는 날개를 매고 해바라기 등을 든 모습이었다. 당시 거리의 시민들이 나비 행렬에 눈길을 떼지 못해 종착점에 돌아온 불자들의 손에는 아무도 해바라기 등을 들고 있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올해는 1m 장엄등에 도전
창작 아이디어, 지역 최고

 

 

▲ 여래사 창작등은 스님과 재가자들의 수많은 회의를 거쳐 탄생한다.

 


올해는 아예 장엄등에 도전 중이다. 장엄등은 여래사로서는 처음이었다. 주제는 세 가지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리수 잎, 불국토를 향한 염원을 담은 태극기와 불교기 그리고 항마촉지인 수인을 한 석가여래 부처님이다. 각각 1m 이상의 장엄등을 완성하기 위해 지난 3월 공작소를 차리다시피 했다. 종우 스님의 진두지휘 아래 여래사 경전반의 정연석 거사, 불교대학반의 엄말예 보살, 김정미 보살이 보조 팀원으로 참여 중이다. 정 거사는 3년 전부터 종우 스님의 창작등 작업 전반에 동참해 왔고 지난해 11월에는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조계종 봉축위가 진행하는 전통등 만들기 제작 과정도 수료했다. 엄말예 보살 역시 지난 2월 부산불교연합회에서 주최한 전통등 강습회를 이수했다. 여전히 전문가는 없다. 사실 거의 한 달에 걸쳐 철근 골격이 완성됐다. 사이즈를 재고 균형을 맞추는 일 등 회의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지만 저마다 등을 만드는 환희심이 충만했다.


엄말예(44, 보원향) 보살은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지만 갈수록 모습이 갖춰지면서 등이 만들어 진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보람을 전했다. 정연석(50, 지경) 거사는 “하나의 장엄등에 이렇게 복잡한 단계가 필요한 지 정말 몰랐다. 등을 만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든다”며 “시간을 잊고 오직 등 만드는 일에 몰입하다보면 시간도 잊게 된다”고 소개했다.


제작 비용은 전적으로 여래사에서 출연한다. 그래서 지난 경연대회 수상으로 받은 상금은 전액 여래사 포교 기금으로 다시 활용했다. 수입과 지출을 놓고 보면 적자다. 대신 최소한의 비용을 쓰고 최대한의 인적 자산 활용을 원칙으로 한다. 직접 철물점에 가서 재료를 사고 남자 법우들이 전선 연결과 납땜을 맡는다. 그림을 전공한 한 법우의 자녀도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보살들은 쉬지 않고 연잎을 빚었다. 일심동체가 되어 등을 만들다 보니 불교 공부와 기도를 할 때 조용히 왔다 가기만 하던 불자들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음꽃을 피웠고 때로는 눈시울도 적셨다. 어느새 여래사 불자들의 마음과 마음은 서로를 비추는 등불이 되어 환한 빛이 되고 있었다.
창작등 만들기는 수행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수행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바로 “붓다의 가르침에 입각하는가, 아닌가”에 종우 스님 기준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일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했느냐, 또 자비심을 바탕에 두고 있느냐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몇 해 전 등창작소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어요. 고심 끝에 거절했습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지만 정법에 맞지 않았기에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등 자체가 환희심이고 등을 만드는 과정이 행복하고 등을 보는 사람들마다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고 있어요.”


한 달 여 동안 노력 끝에 창작등 골격이 비로소 완성됐고 철근 골격 위에 한지를 바르는 배접이 시작됐다. 제등행진까지는 앞으로 한 달. 게다가 창작등 경연대회의 접수 마지막 날은 4월30일이다.


제등행진 현장에 나툴 여래사 부처님을 기다린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리수나무의 향기도 부산 시내 곳곳에 퍼지길 기대한다. 불교와 우리나라 국기가 하나가 되어 장엄한 불국토의 현현을 발원한다. 그렇게 불자들은 마음은 이미 꺼지지 않는 무진등이 되어 있었다. ‘유마경’에서 유마거사가 설한 ‘무진등’의 비유처럼.


“‘꺼지지 않는 등불(無盡燈)’이라는 오묘한 법문을 배워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등불 하나로 수십만 등불을 붙일 수 있는 것과 같소. 보살 한 분이 수십만 중생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마음을 내도록 권유한다면, 이 보살의 보리심은 더 발전하고 강화될 것이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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