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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티베트 조장터 독수리의 ‘하루 일기’

“망자 육신 싣고 환생의 문까지 날아오르리”

오늘은 (인간의)시체가 몇 구나 해부 되려나? 어제는 두 구 밖에 해부가 안 되어 배불리 먹지는 못했다. 점심 한 끼로 하루를 버티기에는 배가 너무 고프다. 내가 거주하는 이 동네는 나와 같은 독수리가 너무 많은 것도 불만이다. 한 200마리쯤 된다. 얼른 언덕(조장터)에 올라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야겠다. 해부사(조장사) 스님의 움직임도 보고 망자 가족들의 숫자도 좀 확인해봐야지. 그럼 대충 오늘 몇 구의 시체가 준비되는지 알 수 있다. 아침은 거의 굶기 때문에 점심 무렵에 제공되는 인간의 육신은 아주 맛나다.


환생 도와주는 ‘공행모’의 화신

 

 

▲죽음에서 다시 생명체로 환생할 수 있는 공간이 조장터이다. 그곳은 해부사의 작업장이자 수행의 장소이다.

 


어제는 해부사 스님이 피곤했는지 팔과 다리 그리고 뇌골과 뇌수가 완전히 분리되어 다듬어지지도 않고 짬바(Champa)와 맛나게 버무려지지가 않아 먹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배고파서 허겁지겁 다른 독수리들이 먼저 먹을까봐 날개를 퍼덕이며 와구~와구~ 먹었더니 소화불량에 체기가 있어 오후에는 내내 사원의 하늘을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나는 탐식을 너무해서 친구들이 나에게 살 좀 빼라고 야단이지만 ‘잘 먹고 바로 바로 운동하면 그만이다’라는 게 나의 식사철학이다. 사실 나는 먹는 것에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망자 식구들의 바람과 해부사 스님의 정성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곳의 티베트인들은 육신보다는 영혼을 중히 여긴다. 영혼은 고승 라마승의 도움으로 다른 생명체에 이동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육신에 집착하지 않는다. 가끔, 아주 가끔 이방인들이 이곳에 와서 우리들이 인간의 육신을 맛나게 먹는 장면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는 도망치곤 한다. 몸뚱이에 집착하는 그런 이방인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망자의 가족들도 가만히 있는데, 심지어 무표정이요 눈물도 흘리지 않은데 그들은 왜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


이곳의 티베트인들은 윤회(輪廻)와 환생(還生)의 법칙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신앙이 깊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윤회와 환생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터인데, 티베트인들은 그래도 믿는다. 깊은 믿음이 있어서 그들에게는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티베트인들은 죽은 망자의 육신이 다시 환생하길 바란다. 소중한 인간의 몸으로 말이다. 윤회의 업을 끊어 환생을 초탈하면 될 터인데, 왜 다시 고통스러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려 할까?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환생을 하는데 있어 나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 받았다. 내가 바로 그들의 환생을 도와주는 천국의 사자이기 때문이다. 티베트인들은 나를 공행모(空行母)의 화신(化身)으로 여긴다. 공행모는 이곳에서 ‘공행 모존(母尊)’이라고도 불리는데 이전에는 여성이 최고의 밀교를 수련하여 성취를 이룬 사람을 가리켰으나, 지금은 이곳의 모든 여성 밀교 수행자들을 공행모라고 부른다. 지혜와 자비의 여신(女神)을 대표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 따라서 망자 가족의 소원대로 나는 식사를 마치면 하늘높이 날아올라 환생의 문(여인의 자궁)으로 방금 먹어치운 육신의 덩어리와 영혼을 배달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번 식사를 깔끔하고 깨끗이 하려한다. 망자의 식구들이 내심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보아하니 오늘은 시체가 네 구다. 저만치 하얀 자루 4개가 보인다. 자루 속의 죽은 이는 엄마 뱃속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구성되어질 때의 그 모습으로 묶여져 있을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시체를 운송해 올 때 다 그렇게 한다. 저 시체들은 어떤 연유로 이생을 다한 것일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그건 그렇고 오늘은 시체가 많아서 대충 해부하는 데만 4시간은 족히 걸릴 텐데 배고파서 어떻게 기다리지? 우리 해부사 스님은 워낙 꼼꼼해서 완전히 해부하여 잘게 부수기 전에는 우리들이 먹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는 분인데. 배고파서 어쩌나? 시원한 계곡이나 한 번 날아갔다 올까. 아니다. 그사이 내 자리를 다른 독수리가 꿰차고 있으면 난감하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해부사 스님은 여전히 열심히 해부중이다. 저 능숙한 손놀림은 이미 예술의 경지에 들어갔다. 긴 칼과 묵직한 도끼로 시체의 팔과 다리 몸통 머리 등을 사정없이 내리쳐서 육신의 덩어리를 옆의 도우미 스님들에게 ‘툭’하고 던진다. 아무런 표정 없이 말이다. 좀 까다롭고 복잡한 내장 도려내기와 골수 발라내기는 해부사 수업을 하고 있는 젊은 스님(라마승들)의 몫이다. 모두가 아무 말도 없이 열심이다. 아 배고파. 내가 과장되게 날개를 퍼덕여 보지만 해부사 스님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냉정한 스님 같으니.


담담한 유가족, 경악하는 이방인

 

 

▲그리고 티베트에서 천국의 사자로 불리는 독수리가 인육의 식사를 하는 곳이다. 일반인들의 조장(鳥葬)의식에는 독수리가 공행모의 화신으로 인정되어 신(神)처럼 떠받든다.

 


두 번째 시체가 눈에 들어온다. 어, 어린아이다. 저 아이는 무슨 연유로 이렇게 일찍 죽음을 맞이했을까? 궁금하고 불쌍하다. 중앙에 앉아있는 노스님의 독경(진언)소리가 더욱 잔잔하고 길게 늘어진다. 혹 저 불경의 내용은 ‘티베트 사자의 서’가 아닐까. 매일 들어서 나도 외울 지경이다. 고개를 돌려 저쪽을 보니, 망자의 가족들이 줄지어 서있다. 아무런 표정 없이 해부사의 손놀림만을 주시할 뿐이다. 간혹 나를 쳐다보며 “꼭 환생하도록 도와주소서!” “옴마니밧메홈!”(을) 한다. 심지어 나를 보고 절까지 한다. 아이의 아버지인가 보다. 나는 날개를 퍼덕여 그에게 응답했다. “알겠습니다.” “깨끗이 먹고 날아가다가 어딘가에 꼭 배설을 하겠습니다.” “그곳에 반드시 새 생명이 태어날 것입니다.” “당신의 아이는 그곳에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이곳은 절대금지(禁止) 구역이다. 그런데 오늘은 두 명 정도의 이방인이 눈에 띈다. 어디서 어떻게 알고 왔을까? 나를 보러 온 것일까? 그런데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피하는 인간이 있다. 내가 무서운가 보다. 그런데 저들은 육신의 피 냄새가 처음인가 보다. 머리를 땅 바닥에 처박고 구토를 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에게는 더 없이 맛있는 영양분이요 식사인데 인간들은 왜 저럴까.


벌써 정오이다. 해부사 스님의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나절 동안 도끼질을 하면 대단한 육체노동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중간에 한 번쯤은 수요차를 마시며 허리를 펴기도 하지만 우리 해부사 스님은 성실하기로 유명하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대충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식사는 항상 먹기 좋게 잘라져 나오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 지루하다. 간혹 그냥 날아가서 먹어버릴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렇게 했다가 대장 독수리에게 예의가 없다며 혼쭐이 나는 친구들을 보았기 때문에 감히 용기를 낼 수는 없다.


아, 드디어 해부사 스님이 사인을 보낸다. 와서 먹어도 된다는 신호이다. 가자. 맛있게, 배불리 싹~싹~ 먹고 창공으로 날아오르자. 그리고 천국의 계단으로 날아가자. 거기에는 새로운 생명이 준비하고 있다. 그곳으로 날아가면 나의 오늘 임무는 끝이다.


그래, 나는 히말라야에 존재하는 티베트 독수리다. 나는 여기서 ‘공행모’의 화신으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매일 인간의 육신을 보시 받으며 먹고 산다. 그리고 환생의 메신저로서 하늘을 날아오른다. 나의 일과는 매일 이러하다. 


심혁주 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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