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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부처님오신날 제등행렬 방문기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2.05.14 17:02
  • 댓글 0

아기부처님 탄생의 환희 2556년 만에 고향 밝히다

108순례회 진신사리 봉안 계기
네팔 정부 주도로 첫 제등행렬

인도·일본·프랑스 등 각국 동참
순례자 수만명 룸비니 일대 장엄

 

 

▲네팔 룸비니에서 역사상 최초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 제등행렬. 각국에서 동참한 수만 명의 순례자들이 끝없는 행렬을 이루며 룸비니 성역화 전역에 아기부처님 탄생의 기쁨을 전했다.

 

 

나뭇잎마다 꽃이 눈부시게 활짝 핀 5월6일(음력 윤3월16일), 네팔의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펼쳐진 제등행렬은 부처님 탄생성지인 마야데비 사원 입구부터 ‘108산사순례기도회’가 조성한 탄생불이 있는 룸비니 성역화 메인(main)지역까지 장엄하게 이어졌다.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한 꽃바구니를 머리에 인, 붉은 전통 옷을 입은 다섯 명의 아름다운 네팔여인들이 행렬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나와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들은 네팔의 스님들과 불자, 인도, 미얀마, 티베트, 일본, 프랑스, 독일, 중국 각지에서 온 수만 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뜨거운 태양도 아랑곳없이 천천히 그 뒤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부처님 탄생이후 2556년 만에 룸비니에서 처음으로 펼쳐진 거룩하고도 장엄한 제등행렬이었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룸비니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제등행렬이 펼쳐지게 된 것은 지난 2월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들이 탄생불 제막식을 위해 마야데비 사원에서부터 코끼리를 앞세우고 펼친 장엄한 진신사리 봉안 행렬 모습 보고 네팔의 고팔 끼라티 문화부장관이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팔 끼라티 장관은 이 모습을 본 후 ‘2012년 룸비니세계 방문의 해’를 맞아 아쇼카 석주가 서 있는 마야데비 사원에서 평화의 불을 거쳐 일직선으로 서 있는 108산사순례 탄생불까지 매년 부처님오신날에 네팔정부도 제등행렬을 해야겠다고 선언을 했다. 룸비니는 1년에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이다. 그들이 108산사순례기도회가 세운 탄생불 석주(石柱)를 돌아 법회를 할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기쁜 생각이 들었다. 자화자찬이지만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제등행렬이 법회장소에 도착하고 곧 법회가 시작되었다. 스리랑카의 차말 라자팍사 국회의장과 룸비니 성역화사업 위원장인 네팔의 문화부장관의 축사가 이어졌다. 그들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찾아주신 세계의 순례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으며 특히 “선묵 혜자 스님과 108산사순례기도회가 룸비니 성역화사업에 큰 공로를 세우고 룸비니 지역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 주신 것과 2556년 만에 부처님의 육신사리를 이곳 룸비니에 귀향하게 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실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드린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네팔 정부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지난 2008년에는 평화문화훈장을, 지난 2월에는 수바스 넴방(Subas Nembang) 네팔 국회의장으로부터 공로훈장과 감사패를 받았었다. 이번 감사패는 네팔의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스리랑카 국회의장과, 룸비니 성역화사업위원장이 주는 것이어서 그 의미는 매우 컸다.


무엇보다도 네팔정부는 ‘2012년 룸비니 방문의 해’를 맞아 발간된 홍보책자에 ‘108산사순례기도회’가 세운 탄생불이 정부군과 마오이스트 간의 내전을 종식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해 100년간의 평화를 되찾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 점이다. 앞으로 이 책은 룸비니를 찾는 전 세계인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계평화를 이루는 근본정신이며, 또한 108산사순례가 세운 탄생불과 부처님 진신사리의 환귀본처(還歸本處)가 인류의 항구적 평화를 염원하는 자리임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룸비니 성역화 개발은 1985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일본과 스리랑카, 미얀마, 대만, 중국 등의 관심과 참여로 개발 구역에 사찰을 건립하는 등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유엔(UN)과 유네스코(UNESCO) 등 국제기구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08산사순례기도회’가 네팔에 도착한 것은 지난 5월4일이었다. 그날 밤, 우리 일행들은 탄생불이 조성된 룸비니 성역화지역에서 ‘108산사순례 선혜 초등학교’ 어린이와 주민들과 함께 부처님오신날 점등식을 가졌다. 3,333개의 연등불이 환하게 ‘선혜 호수’ 위를 아름답게 비추이고, 손에 촛불을 든 회원들과 어린이들은 탑돌이를 하면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가없는 축복행사를 가졌다. 

 

“100년 내전 종식의 계기 됐다”
인류평화 기원의 성지 재확인

인도·네팔 접경에 탄생불 조성
현지 언론도 제막식에 큰 관심

 

 

 

다음날 인도와 네팔의 국경지대에 있는 카필라바스투주 마리얍풀 마을에 새로운 탄생불을 조성하고 제막식을 가졌다. 이 지역은 인도의 기원정사에서 룸비니로 들어오는 입구인데 부처님께서 늘 왕래하던 지역이어서 그 의미 또한 매우 컸다. 그날 꽃단장을 한 네팔의 여인들과 파라마트마프라피 도지사가 우리를 기쁘게 맞아 주었다. 그들은 축복을 기원하는 카타(목도리)를 우리 회원들의 목에 일일이 걸어 주었다. 그날 도지사는 “이 순간부터 이 거리를 ‘붓다의 광장’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했다. 네팔 신문들은 다음 날 이 제막식 현장사진을 크게 보도했다.
룸비니는 부처님의 열반 이후부터 불교도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성지이기 때문에 나와 우리 회원들은 룸비니에 새롭게 조성되어 있는 성지들을 일일이 찾아 순례의 기도를 올렸다. 룸비니는 서기 14년 이후 무굴제국의 불교유적지 파괴와 대홍수에 의해 모든 건물이 파괴되어 완전히 역사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많은 성지들이 감추어져 있었다.


룸비니가 부처님의 탄생지로 밝혀지게 된 것은 1893년 영국의 휘러 박사에 의해서였다. 그는 네팔의 밀림에서 인도군 소령이 발견한 아쇼카 석주를 찾게 되었고 그 비문에 담긴 내용을 그의 스승 뷰러 박사가 해독한 것이다. ‘이곳은 카나크 무니(구나함모니불) 부처님의 탄생지이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휘러 박사는 중국의 현장스님의 쓴 ‘대당서역기’를 통해 “룸비니는 카나크무니 부처님의 탄생지에서 20km 동쪽에 있다”고 언급한 기록을 보고 부처님의 탄생성지를 찾던 중 마침내 아쇼카 석주를 발견하게 되고 그 비문을 해독하게 된다.
‘신들의 사랑을 받는 아쇼카 왕은 즉위 20년이 되던 해에 이곳을 찾아 참배하였다. 이곳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신 곳.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웠다. 위대한 분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며 이에 룸비니 마을은 생산물의 8분의 1만을 징수케 한다.’


1896년 드디어 베일에 감추어져 있었던 부처님의 탄생성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석주에는 14세기 초반 룸비니를 찾아온 많은 순례자들이 석주에 써 놓은 이름도 남아 있었다. 그 후 3년 뒤 인도의 고고학자 무케르지는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전 29년을 보낸 카필성을 찾게 되었고 비로소 룸비니는 부처님의 탄생성지로 거듭나게 된다.


‘108산사순례 기도회’ 회원들은 네팔의 부처님 탄생성지인 마야데비사원과 카필라왕궁 그리고 과거 칠불(七佛)중 제4불인 구류손불의 탄생지인 고티하와 그리고 니그라하와에 있는 제7불 구나함모니불과 탄생성지를 순례하였다. 일각에서는 세 분의 과거부처님의 탄생성지가 더 있다고 하나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룸비니는 석가모니 부처님 외에 과거부처님들의 탄생성지가 많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부처님 열반 이후 육신사리 8만4천과가 팔 등분 되었다. 그 중 하나는 룸비니의 인근지역인 라마그라마에 큰 스투파(무덤)를 만들어 봉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법현과 현장 스님 등의 기록에 의하면 아쇼카 대제는 스투파를 지키는 용과 큰 뱀들의 방해로 라마그라마의 스투파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설화(說話)가 전해진다. 그 설화의 내용은 공덕의 크고 작음을 드러내는 내용이어서 잔잔한 감동을 전해 준다. 용이 아쇼카왕 앞에 나타나 “만약 당신의 공양이 이보다 훌륭하다면 탑을 헐어도 좋습니다. 나는 당신과 다툴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 순간 아쇼카는 스투파를 파헤치는 것을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카필라국의 마지막 왕인 마하나마가 석가족을 살리기 위해 물속의 버드나무 뿌리에 머리채를 묶고 순국한 연못을 찾기도 했다.


마지막 날, 티베트불교의 걀왕 드룩파 린포체가 주석하고 있는 네팔의 카트만두 드룩파 사원에 들려 법문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걀왕은 나에게 한국의 선불교를 배우기 위해 자신의 제자 중 한 분을 초청해 줄 것을 청하기도 했다. 나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티베트불교와 한국불교의 교류가 이루지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돌아오는 길, 룸비니 인근의 마듀버니 마을에 세워진 ‘108 선혜 초등학교’에 들려 공책과 학용품 등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이곳은 지난 3월 완공하여 첫 입학생 80명이 공부를 하고 있다.
 

네팔=선묵 혜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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