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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은 내 살점 하나’ 잊었나!

기자명 법보신문

서울에서 만난 스님 한 분이 차 한 잔 하며 전한 일언이 가슴을 찌른다. “고속도로 주행 중 휴게소에 들러 물 한 병 사고 싶은데 도저히, 정말, 갈 수가 없더라고요!”


최근 조계종에서 터져 나온 ‘도박, 몰카’ 사건이 일으킨 파장은 크다. 실추된 조계종 승풍에 대해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실추된 승풍은 다시 진작시켜야 한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 잡아 법을 올곧게 세울 것인가이다.


하지만 이전에 간과하지 말아야할 게 있다. 왜,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옛 선지식이 나태한 후학들을 향해 던진 공통적인 사자후 한 마디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고 본다. 다름 아닌 ‘가사 입은 도둑.’


능엄경에서는 ‘내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팔아 의식주를 구한다(假我衣服 稗販如來)’고 했고 중국의 지공 스님 또한 ‘어리석음을 바꾸어 깨달음을 취해 이익을 구하면 장사하는 무리들과 무엇이 다른가(改迷取覺求利 何異販賣商徒)’라 했다. 서산 스님은 선가귀감을 통해 ‘부처님을 팔아 생을 이어가는 것을 가사 입은 도둑’이라 했고,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은 불현 듯 ‘선원 감찰’을 나갔다가 행여 졸고있는 수행자가 있으면 ‘이 밥도둑들아!’라고 고함치며 몽둥이를 날렸다.


수행자 본연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모두 다 ‘가사 입은 도둑’이요 ‘밥 도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 명리를 목적으로 부처님 법을 편다고 하면 이는 부처님 옷을 빌려 입고 부처님을 파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 마디로 불자가 아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재가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승가와 마찬가지의 법이 적용된다.


‘도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이전에 아주 기초적인 마음 하나를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을 선지식들은 이 말 한마디로 전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시주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무주상 보시이지만 받는 승가 입장에서 이를 헛되이 쓰면 아비지옥에 들어간다. 법구경에도 ‘시주물만 먹으면 시뻘겋게 달군 철환(鐵丸)으로 밥을 삼고 구리를 녹여서 목구멍에 부을 것’이라 엄중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부산 청량사 현엽 스님을 통해 전해들은 대해 스님의 일화 한토막이 시사하는 바 크다. 어느 겨울, 대해 스님은 법당에 놓여있던 방석 하나를 부처님 전에 올리고는 절을 올렸다. “부처님, 이 방석 안의 솜을 제가 쓰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당시 어린 현엽 스님의 눈에는 이상한 광경으로 보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방석은 새 방석이 아니라 거의 다 해진 방석이었기 때문이다. 대해 스님은 방석 속의 솜을 꺼내 긴 천에 넣고는 바느질해 갔다. 겨울 목도리를 만든 것이다.


다 헤진 방석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솜을 꺼내 긴 천에 넣어 목도리로 만드는 정신, 그 작은 일 하나에도 부처님께 고하고 허락을 구하는 마음 하나, 우린 지금 어느 마음에 점을 찍고 있는가.


승가는 지금 당장, 시주물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부터 점검해 봐야 한다. 시주물을 내 마음대로, 내 이익을 위해, 내 권력을 위해 일부라도 쓰고 있다면 당장 멈춰야 한다. 그 정신에 지계가 들어갈 리 만무하다. 지계가 무너지면 수행도 무너진다 했으니 화두 드는 건 차치하고라도 좌복 위에 앉을 마음이라도 생기겠는가!


서산 스님이 이미 말씀 하셨지 않은가. ‘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찌 소화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선가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일언, ‘땅에 떨어진 살 한 톨이 내 살점 하나이고, 땅에 떨어진 간장 한 방울이 내 피 한 방울’이라는 가르침을 뼈에 새겨야 한다. 그래야 청정승풍을 기대할 수 있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이제는 초심을 찾아야만 한다. 그것도 사부대중 모두가 지극한 마음으로 절실하게 찾아야 한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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