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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공화국의 ‘희망’이란

한 지인의 메시지가 휴대폰을 통해 들어왔다. ‘그동안 고마웠소. 먼저 갑니다. 미안합니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만 울릴 뿐이다. 어디선가 보았던 일언이 스쳐갔다. 유서는 ‘지금 나를 봐 달라’는 마지막 메시지라는 사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1년 동안 자살하는 사람은 1만4000여 명이라고 한다. 34분에 한 명이 자살한다는 얘기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섬뜩한 말이 거북스럽지만 통계는 이를 방증하고 있다. ‘지식채널 e’를 통해 알게 된 ‘남겨진 사람들’이야기는 더 충격적이다. 한 사람이 자살했을 경우 그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들은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10명에 이른다. 한 해 자살 유가족이 10만여 명에 이르는 셈이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들을 옭아맨다. 그럼에도 그들은 ‘내가 자살을 하면 다른 사람이 또 힘들겠지’하는 생각에 그 마지막 충동을 이겨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인에 비해 그들의 자살 확률은 6배에서 7배 높다. 자살 충동의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남은 유가족, ‘남겨진 사람들’, 이들을 ‘자살 생존자’라 한다. 한 사람의 자살이 미치는 파장은 예상 외로 큰 것이다.


사회 각계에서 자살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학교폭력, 성적지상주의, 물질만능, 다양하고도 변화무쌍한 사회인만큼 그 원인도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원인을 짚어야 대책도 강구할 수 있으니 중요한 일이다. 아쉬운 것은 모든 책임을 그 ‘원인’에 떠넘기고 ‘어쩔 수 없다’는 의식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팽배하다는 점이다. 매스컴을 통해 자살 사건을 접하고도 ‘왕따라서 그래’, ‘빈곤에 시달렸구나’, ‘공부도 잘 했다는데.’ 여기서 끝이다. 과연 그럴까? 자살 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말 일말의 책임도 없는 것일까?


잇따른 모방 자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에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베르테르 효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나온 건 1774년. 다른 사람의 약혼녀를 사랑했으나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주인공 베르테르. 상실감을 이기지 못한 그는 권총으로 자살한다. 이후 자살이 급증했다. 자신의 고통을 그 비극에 동조시킨 후 자살을 결정하는 것이다. 철학자 키르케고로는 1848년 ‘절망에 이르는 병’을 내놓았다. 작품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절망을 보여준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다름 아닌 ‘절망’이고, ‘절망’이 ‘죽음’을 부른다는 게 핵심이다. 물론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그 불행을 막을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종교의 역할을 현실감 있게 도출한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의 역할에 대한 거대 담론을 펴고자 하는 건 아니다. 자살 예방에 대한 담론은 더더욱 아니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이었다면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난 후, 적어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 나왔을 때 자살은 어느 정도 치유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1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자살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우리 사회 자살률은 매년 높아져만 가고 있다.


통화버튼만 계속 누르는 가운데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다. ‘나는, 마지막 메시지 바로 전에 그가 보낸 또 다른 마지막 신호는 감지하고 있었는가?’ 수 년 동안 병마와 싸우다 ‘죽는 게 더 편하다’는 절망에 이르러 자살을 결심한 사람. 어쩌면 그는 마지막 문자 유서를 전하기 훨씬 전부터 ‘마지막’일지도 모를 메시지를 수차례에 걸쳐 전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를 봐 달라’고 말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어쩌면, 누군가에게 ‘희망’을 준다는 건 진정성 있는 ‘만남’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절망에 이른 사람에게 희망이란 ‘그 누군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가, 가족이든, 친구든, 사회 지인이든 말이다. 적어도, 우리의 책임은 여기서 벗어나기 어렵다.


다행히도 지인은 다음 날 아침 전화를 받았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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