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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호와 지리산 도솔암

영산의 기운 충만한 곳

귀여운 장독대-정겨운 푸성귀 밭

밤 하늘은 어느새 '별들의 꽃밭'

내가 불자인지 아닌지 나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절구경하기를 즐겨하고, 한 보름이나 한달 쯤 절 기운을 쐬지 않으면 안달이 난다. 그래서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절을 찾아서 여행다니기를 좋아한다.

내가 가 본 절 가운데서 늘 다시 가보고 싶은 절 하나가 지리산 도솔암이다. 도솔암은 지리산 주 능선의 북쪽 삼정산 정상아래 있다. 마천에서 화정리로 들어가 거기서부터 한 시간쯤 올라가야 했던 것 같다. 도솔암 가는 길은, 산사로 가는 길이 으레 그러해야 한다면 바로 그런 길이다. 큰 계곡을 따라 조금씩 올라가다가 옆으로 빠져 작은 개울이 있는 숲속 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그야말로 무인지경이다.

길가에는 야생난들이 지천으로 밟힌다. 숨이 턱에 차고, 등에 땀이 배일 때쯤이면 문득 암자 지붕이 보인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사방이 훤히 트인다. 깊은 산속 암자치고는 절마당이 제법 넓다.

처음 도솔암에 갔을 때, 절마당에서 사위를 둘러보면서 받은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듯 했다. 도솔천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과장된 생각도 들었다. 스님을 찾았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문들은 모두 얌전하게 닫겨 있었다. 한 분이 계신다는 말을 아래 영원사에 듣고 올라 왔으나, 스님이 출타 중이신 모양이었다.

도솔암이 갑자기 나만의 공간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함께 갔던 동료와 나는 지리산 등반을 마치고 지리산의 암자 하나를 찾아보자고 왔었기 때문에, 버너와 코펠과 먹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도솔암 한쪽 켠에서 이른 저녁을 해 먹었다. 그리고 암자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산속의 암자답게 땔나무가 한켠에 쌓여 있기도 했고, 장독대가 귀엽기도 했고, 푸성귀 밭이 정겨웠다. 그러다가 절마당의 한쪽으로 난 좁은 오솔길을 잠시 가보니 참으로 예쁜 언덕 하나가 나타났다. 그 언덕은 마치 오대산 적멸보궁 앞의 언덕처럼 성스러운 명당이었다. 거기 앉아서 남쪽을 쳐다보니 지리산의 주 능선이 아득히 하늘 가운데 떠 있었다. 사람사는 세상 같지 않은 곳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스님이 안 계신 그 암자에서 염치도 없이 하룻밤을 묵었다. 날이 어둡자 도솔암의 하늘에는 별들의 꽃밭이 펼쳐졌다. 너무 좋은 곳에 와 있으니 잠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우리는 숙박비 셈으로 약간의 불전을 두고 온 것 말고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떠돌이 속인이 허락도 없이 하룻밤 묵어 가니 용서하시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후, 도솔암에 두어 번 더 올랐다. 나의 이 글로 인해서 도솔암이 다른 속인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그래서 도솔암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도솔암은 속인들의 발때가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남호(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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