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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살리기 도보순례를 마치며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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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벌의 통곡소리 알리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불안한 마음으로 거리에 서있는 꿈을 꾼다. 갑자기 길이 사라지고 낭 떠러지가 나타나기도 하고 커다란 거인이 앞을 막고 있는 꿈을 꾸기도 한다. 거리는 쓰레기로 덮여 있고 여기저기 달리는 차에 치어 피 흘리는 짐승들의 모습도 보인다. 깨어나도 한동안 가슴이 두근거린다. 산중에 은거하던 수행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전단을 뿌리며 거리를 걸어야 할만큼 환경은 무너져 있고 시민들은 대체로 무관심하다.

결제 중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5명의 스님들이 25일 동안 추운 거리를 걸어 올라가 고속철도 관리공단 이사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우리가 들어야 했던 이야기는 “천성산의 이야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냉담한 반응이었고 “늦어도 6월부터는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그 동안 공동조사단을 구성하며 충분한 조사를 한 뒤, 공청회를 통하여 타당성을 검토하겠다고 제안 해 왔던 것은 우리의 시간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기 위한 회유책이었을까. 환경문제를 정책적으로 풀려고 하는 관료주의적 사고 앞에 우리는 분노하고 또 절망했다.

생태계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무제치 늪을 비롯한 15개 이상의 늪과 경남에서 가장 아름답고 긴 4개의 계곡을 자르고 가는 16km의 긴 터널 공사의 현장에서 침묵할 수만은 없었던 우리의 행위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산이 무너지고 그 산에 사는 생명들이 사라지고 오염된 공기와 물을 마시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우리도 이해할 수 없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에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숲의 파괴는 인류의 영혼을 파멸로 인도하는 마약과 다름없다”고 했다. 우리는 늪과 숲을 파괴하고 얻는 행복은 원치 않는다. 조금만 덜 가지려고 노력하고, 조금만 더 느리게, 조금만 더 ‘우리’를 생각한다면 물, 공기, 흙, 햇살과 같은 자연자산 만으로도 충분히 평화롭고 가난하지 않는 삶이 될 것이다.

처음 천성산 문제를 시작했을 때, 산 정상 부위까지 굴삭기가 올라오고 철쭉제 등으로 화엄벌이 파괴되는 현장에서, 까닭 없는 눈물이 흘렀고 눈물은 좀처럼 그쳐지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산이 울고 있다고 느꼈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를 들었으며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개인적으로 신의가 없고 남의 비밀도 잘 지키지 못한 게으른 수행자였지만 이 약속만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그 늪에 놀던 수많은 곤충과 나비, 나무와 이름 모를 풀꽃들에게 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만일 고속철도가 들어오고 늪이 사막화되고 그 늪에 살던 많은 동식물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과보로 세세생생 곤충으로 태어나 목말라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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