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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벽돌 걱정 대신 반듯한 벽돌서 행복 발견하는 지혜

명상지도자 아잔 브람 스님

 

▲봉은사에서 법문한 아잔 브람 스님.

 

 

이렇게 유명한 사찰에서 법문을 하게 돼서 매우 영광입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저는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불교가 전혀 없는 곳에서 태어난 것은 제가 전생에 많은 악업을 쌓아서 그렇지 않나 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절에 오시게 된 여러분은 참 행운입니다.
제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장학금을 통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캠브리지 같은 명문 대학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만나며 ‘이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서는 참 바보 같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계율을 지키고, 술도 마시지 않고, 명상을 하는 생활을 하다가 결국 태국에 가서 승려가 됐습니다. 태국 북부 정글에서 스님 생활을 하면서 스승이신 아잔 차 스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이 분이 캠브리지에서 만난 모든 노벨상 수상자보다 훨씬 더 현명한 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고 또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는데요, 그런데 학교라고는 4년밖에 다니지 않은 아잔 차 스님 같은 분이 어떻게 저 같은 사람보다 더 똑똑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우리 바깥 세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인간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태국에서 수행을 하고 호주에서도 계속 30년 동안 수행을 하면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마음을  어떻게 더 행복하게 하는지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불교가 가르치는 것은 고통과 고통의 끝이다. 결국은 상좌부건 대승이건 티베트불교건 다 똑같은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수 년 동안 사람들한테 고통을 끝내려면 어떻게 하는지를 가르쳐 왔고, 그 덕분에 제가 아주 인기 있는 스님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법문을 했을 때 3, 4천여 명이 모였는데 표를 산 사람은 그보다 더 많았지만 그 주변에 2Km가 넘게 엄청난 교통 혼잡이 일어나는 바람에 못 들어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도건 회교도건 아니면 아예 무신론자건 간에 불교의 가르침은 굉장히 강력한 가르침입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가르침이지요.

 

누가 옳으냐는 중요하지 않아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사실 인간이 겪는 많은 고통과 행복이 결혼에서 옵니다. 그러면 불교적 가르침에 따라서 결혼을 좀 더 행복한 것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히 스님으로서 제가 해야 되는 일 중 하나가 결혼식에서 집전을 하고 주례를 보는 일입니다. 제가 주례를 봐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면 저한테 와서 저를 비난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결혼하려는 사람들한테 닭과 오리의 얘기를 해 줍니다.
젊은 신혼부부가 점심을 먹고 호숫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호숫가를 걷고 있는데 이런 소리를 들렸습니다. “꽥꽥 꽥꽥.”
아내가 남편한테 “여보, 저 소리 들었어요? 닭이네요.”하자
남편이 “그건 닭 아니야. 오리야!”
부인은 “아니에요. 저건 닭이에요.”
또 꽥꽥하는 소리를 들었지요. 남편이 아내한테 말했습니다.
“저게 어떻게 닭이야, 오리지.”
“아니에요. 닭이에요.”
“오리야.”
부인이 울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저건 닭인데.”
남편이 그 순간 부인의 눈물을 보고 왜 내가 결혼을 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불자라는 것을 생각하고 부인의 손을 지그시 잡고 눈을 보면서 “여보 미안해, 저게 닭일지도 몰라.”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또 “꽥꽥” 하는 소리가 들렸지요.


남편은 굉장히 현명한 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로 그렇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남편이 굉장히 자비로웠습니다. 이 자비로운 것이 내가 맞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닭인지 오리인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말다툼을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요? 자비가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모든 중생에게 자비롭고자 하는데 거기서 내 부인 내 남편만 예외입니까?
두 번째는 새가 꽥꽥 하고 운다고 꼭 오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혹시 압니까. 이 닭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에 노출돼서 이상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그런 닭일지. 꽥꽥 소리를 낸다고 해서 꼭 오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결혼생활에서는 ‘내가 항상 맞다.’라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옳으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평화와 화합 속에서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나 아내가 말싸움을 하려하고 불평을 하면 오늘 법문의 복사본을 드리고 “꽥꽥.” 이러십시오.
또 한 가지 한국 사람들은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요, 저는 비행기를 굉장히 많이 탑니다. “요즘 테러범들이 구두나 속옷 같은 데 폭발물을 숨기고 타서 비행기를 공중에서 폭파하려고 하는데, 스님, 그렇게 비행기를 많이 타시는데 공중에서 산산이 분해되는 것 무섭지 않으세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요, 만약에 제가 공중에서 비행기 폭발로 죽게 된다면 저는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중에서 비행기 폭발로 죽게 되는 이점이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아주 효율적입니다. 거기서 순간적으로 화장이 다 끝나 버리기 때문에 가족이 이것저것 장례 절차 준비하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아마 한국에서도 이런 장례식 비용이 굉장히 비쌀 겁니다.
두 번째로는 제가 공중에서 죽어 버리면 이런 장례 절차에 돈을 쓸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보험금까지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최고의 이점인데 그렇게 높은 데서 죽게 되면 아마도 천국에 가깝기 때문에 천국에 가기도 쉬울 겁니다. 


제가 이 얘기를 만들어 낸 이유가 사람들이 걱정 좀 하지 말라고 만든 겁니다. 너무 늘 걱정을 하다 보니까 평화를 누릴 시간이 인생에서 없어지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보는 관점을 바꿔서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평화로워졌으면 합니다.

 

걱정하느라 평화 누릴 시간 놓쳐

 

제가 태국 북부 지역에서 9년을 지내는 동안 장례식에 굉장히 많이 참석하고 또 장례식에서 집전도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단 한 번도 장례식에서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많이 웁니까? 왜 그러세요?
애가 태어나서 막 울면 주변 사람들은 행복해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어느 분이 돌아가시면 관에서 그 분은 평화롭게 웃고 계시는데 주변 사람들은 다 웁니다. 뭐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제 아버지는 제가 16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굉장히 많이 사랑했는데 돌아가셨을 때 전혀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운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불자였기 때문에 놓아 버리는 법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 감정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비유, 이야기를 하나 만들었는데 콘서트에 비유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1951년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덕분에 유명한 레드제플린이나 롤링스톤즈 같은 전설적인 그룹들의 콘서트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콘서트를 갔는데 관중이 6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음악 연주를 안 하겠구나 했는데 그 밴드가 저희를 위해서 연주를 했습니다. 당시 리드싱어의 이름이 로드 스튜어트였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지요?
그 콘서트는 지금까지도 제게 행복한 기억입니다. 콘서트가 끝나자 모든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치면서 “앙코르, 앙코르!”를 외쳤습니다. 한국에서도 콘서트 하면 그러나요?

 

 

▲아잔 브람 스님은 법문 내내 유쾌한 비유로 불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러면 보통 밴드가 5분이나 10분 더 연주를 하고 끝납니다. 이렇게 해서 밴드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마치고 나면 갑자기 깨닫는 것이 이제 이 멋진 음악을 다시는 못 듣겠구나. 이렇게 끝내주는 콘서트가 끝나고 차갑고 눅눅한 런던 밤거리로 나오면서도 이 음악을 다시는 못 듣겠구나 하는 것 때문에 운적은 없습니다.
그 대신에 내가 이 멋진 음악 속에서 오랜 시간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 하고, 내가 이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바, 정확히 그대로입니다. 마치 위대한 음악회가 끝나고 나서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슬픈 게 아니라 ‘이렇게 훌륭한 분의 아들로 태어나서 너무나 행운이었고 너무나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렇게 느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생과 사를 보는 다른 관점입니다. 그래서 내가 상실했다는 것으로 슬퍼하는 대신에 함께 지냈던 시간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이 얘기를 들은 여러분들은 혹시 소중한 가족이 돌아가셨을 때 여기에 대해 슬퍼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오랜 시간 내가 함께할 수 있었다니 정말 감사하다.’ 이렇게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 관점 바꾸면 자살 사라질 것

 

관점을 바꾸는 것은 인생의 많은 고통을 없애줍니다. 요즘 한국에 자살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런 자살률을 좀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스님으로서 저는 사람들이 왜 자살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보는 방법을 바꿀 수 있다면 자살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전혀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30년 전 처음 사찰을 짓기 위해 호주에 갔는데 그때 굉장히 열심히 일을 해야 했습니다. 지원받을 만한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많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호주 인구의 2.5%가 불자입니다. 거의 0%에서 그만큼 자랐고, 현재 호주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제가 처음 사찰 건립을 시작할 때는 직접 벽돌담을 쌓아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를 대신 고용할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처음 벽돌을 쌓았을 때는 아주 천천히 조심해서 쌓았습니다. 제가 시간당 얼마를 받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잘 하고 싶어서 아주 천천히 했습니다. 벽을 다 완성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어떻게 됐나 봤더니 벽돌 2개가 약간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비뚤어진 2개의 벽돌이 벽 전체를 망쳤습니다. 시멘트를 긁어내서 벽돌을 제자리에 넣어 보려고 했지만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같이 있던 스님한테 “다이너마이트를 사서 폭파시켜 버릴까?”라고 했었죠. 제가 만든 벽에 대해 너무나 창피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와서 이걸 볼 텐데. 이걸 보는 사람은 누구나 내 엄청난 실수를 볼 텐데. 심지어 밤에 악몽까지 꿀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석 달 동안 엄청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방문객들이 절을 찾아와 벽을 보더니 “참 아름다운 벽이네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놀라서 “눈이 멀었나요? 아니면 안경을 차에다 두고 왔나요? 여기 비뚤어진 벽돌 두 개가 안 보이십니까?”하고 물었죠. 그러자 방문객이 “예, 여기 비뚤어진 벽돌 두 개가 보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998개의 아름다운 벽돌들도 같이 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석 달 만에 처음으로 잘못된 2개의 벽돌 말고 다른 벽돌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벽을 볼 때마다 제 눈은 곧장 이 2개의 잘못된 벽돌로만 갔던 거죠. 신경 쓸 때마다 이 두 개의 벽돌만 본 겁니다. 사실 눈이 멀었던 건 저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머지 998개의 벽돌도 있구나 하는 데 주의를 상기시키자 ‘아, 이것이 참 아름다운 벽이구나.’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그 벽을 폭파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사실 똑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자살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폭파해 버리고 싶어 합니다. 인생에 일어났던 딱 두 가지 나쁜 일 그것만을 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다른 멋지고 아름다운 일들, 내 인생의 그런 일들은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인생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비뚤어진 벽돌 2개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얘기를 사람들한테 널리 퍼뜨리십시오. 신문이나 방송사에 알려도 좋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 얘기가 널리 알려졌을 때 실제로 자살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얘기를 잘 들어보면 우리가 같이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이 비판하는 것을 자제할 수 있데 됩니다.

 

인생에서 실수는 아주 작은 일부분

 

몇 년 전 말레이시아에 있는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강의가 끝나고 여성 한 분이 일어나서 질문을 했습니다. 이 여성이 일어나서 대중 앞에서 “제 남편이 오늘 저한테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제 남편을 신뢰할 수가 없는데 이혼을 해야 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여성에게 “지금 직업이 뭡니까?” 물었습니다. 그 여성은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 그 여성분한테 제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한번 통계를 볼까요?” “몇 년이나 결혼생활을 했죠?” “3년이요.” “그러면 100일이라고 해 봅시다. 결혼생활 100일 동안에  아마 남편이 2만 개의 얘기는 했겠죠? 틀렸을 수도 있고 맞았을 수도 있는 그런 얘기들입니다. 그럼 2만 개의 얘기 중에 한 번 거짓말을 했는데 이런 걸 확률을 내 보자면 앞으로 남편이 거짓말을 할 확률은 2만분의 1이잖습니까. 굉장히 신뢰할 만한 확률 아닌가요?”


만약에 2만 번 만에 한 번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당장 선거에서 찍어 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거짓말 하나에 이혼까지 하고 싶어 할까요? 2만 번 가까이 진실을 얘기했는데 그것을 우리는 다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벽에 잘못된 벽돌이 딱 하나 있는데 벽 자체를 부서뜨리고 싶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의 실수만 보지 말고 다른 행복한 여러 가지 것들을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배우자와 더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고, 더 나아가서 나의 실수에 대해서도 더 관대해지면 내 인생도 더 행복해집니다.
그런데도 일이 늘 잘못되어진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제가 어제도 똑같이 말씀드렸는데, 오늘 절에 왔다가 집에 가는 길에 개똥을 밟을 수도 있습니다. 신발 밑창에 잔뜩 묻었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불자라면 개똥을 구두 바닥에서 긁어 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걸 가지고 집까지 갑니다. 그리고 나서 정원 사과나무 아래에서 이것을 긁어냅니다. 이 개똥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그러고 나서 1년이 지나면 사과가 어느 해보다 달고 맛있을 겁니다. 그 달고 맛있는 이 사과를 먹으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개똥을 드시고 계시는 겁니다.  하지만 이 개똥이 아주 달고 맛있는 사과로 변하는 거지요.

그러니 일이 잘 안 풀리면 바깥으로 화내지 마시고 가슴에 잘 묻어 두십시오. 왜냐하면 인생의 모든 고통과 실망은 지혜와 자비심을 길러 주는 가장 좋은 비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고통과 실망이 오면 “야, 신난다. 내 사과나무를 위한 더 좋은 개똥 비료가 더 많이 생겼구나!” 하고 기뻐하십시오.

 

인생을 달콤하게 만드는 ‘개똥비료’

 

이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좀 더 지혜로워지고 좀 더 자비로워지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책에서 볼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직접 쓸 수 있는 실용적인 지혜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절에서 돌아왔을 때 더 평화롭고 더 친절하고 더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집에 갈 때 길에서 이미 살아 있는 불교 광고판이 되시는 겁니다.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평화롭고 고요하고 친절하고 행복하지?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이렇게 됩니다.
이것은 절에서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또 직장에서도 계속될 수 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에 관련된 얘기 하나만 더 하고 끝내겠습니다.

 

 

▲법회 후 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과 자리를 함께 한 아잔 브람 스님.

 


시드니에 줄리라고 하는 제자가 있는데 패션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런던에 있는 큰 의류회사와 큰 계약 건을 협상하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이 계약이 성사된다면 회사가 한 단계 크게 도약하게 되는 큰 계약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메일이 왔어요. “자, 계약에 서명합시다. 빨리 런던으로 오세요.”
그런데 줄리에게는 세 살 정도 되는 어린 딸 홀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세 살짜리 딸을 떠나서 간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구할 수 있는 첫 번째 비행기를 탔는데 런던까지는 20시간이 걸립니다. 긴 비행이었지요. 호텔에 체크인을 했지만 쉴 시간도 없이 회사로 가야 했습니다. 그래야 계약서에 서명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회사 회의실에 가보니 이사, 임원들은 있었지만 CEO가 없었습니다. 그 임원들이 말했습니다. “시간을 낭비했네요. 지금 CEO가 기분이 너무 나쁘고 화가 나서 계약서에 절대 서명 하지 않을 겁니다. 다음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게 났겠어요.”
그래도 줄리는 “여기까지 왔는데 CEO를 한번 만나보고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줄리가 불자였기 때문에 CEO를 기다리면서 구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말씀드릴 것이 사업에서 명상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얘기입니다.
줄리가 고요한 상태에 머물고 있는데 바로 그 순간 CEO가 들어왔습니다. CEO는 들어오자마자 “이 여자 누구야? 쫓아 내. 여기 왜 있는 건데?” 소리를 막 질렀습니다.


사실 제가 스님이기 때문에 이런 얘기 할 때 외에는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줄리는 눈을 뜨고 고요히 CEO한테 다가갔습니다. CEO는 괴물, 악마 같았습니다. 불교의 야차 같이 눈은 시뻘겋고 귀에서는 김이 나올 지경이었죠. 그런데 줄리는 이 CEO에 대해서 전혀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CEO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시드니에 제 딸 홀리가 있는데 제 딸과 같이 너무나 아름다운 눈을 갖고 계시는군요.”
CEO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대답이었죠. CEO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 1분 동안 CEO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말로 저도 그렇게 아름다운 파란 눈을 가졌나요?”
그리고 나서 5분 있다가 계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계약을 따내는 방법입니다.
CEO와 계약이 성사되고 나서 줄리는 호텔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는데 임원들이 빙 둘러서서 “못 가요. 어떻게 했는지 우리한테 가르쳐 주고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불교가 인생의 측면, 그게 결혼이든 죽음이든 자살이든 심지어 사업에까지도 아주 효과가 좋기 때문에 많은 서구 사람들이 지금 불교를 배우려 합니다. 
여러분 친구들께 꼭 말씀을 해 주십시오. 우리가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큰 보배인지. 이것은 옛날 전통에 속한 것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불교의 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또 지금 우리 인생에서 사용해서 복되고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가 돼서 ‘불교가 사회적으로도 이런 효과를 낼 수 있구나.’ 그런 세계적인 상징이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리=봉은사 홍보팀

 

이 법문은 1월12일 봉은사에서 열린 아잔브람 스님 초청 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아잔 브람 스님은…
세계적인 명상수행자다.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나 불교에 뜻을 두고 태국으로 건너갔다. 태국에서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던 아잔 차 스님을 만나 출가하고 아잔차 스님의 지도로 9년간 수행했다. 호주로 자리를 옮겨 호주 최초의 사원과 보딘야나 수행센터를 설립했다. 아잔 브람 스님의 명상수행법과 법문을 담은 동영상은 매년 수백만 명이 접속해 듣는다. 지난 2008년 국내에서 출간돼 큰 관심을 불러 모았던 명상 에세이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와 ‘성난 물소 놓아주기’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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