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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부도에 ‘게’가 앉은 이유는?

기자명 법보신문
민화 영향…‘걸림없는 수행’상징

“민중 소망 부도에 담았다” 시각도 설득력 커



서산대사 부도에 나타난 '게'

부도(浮屠). 역대 조사와 고승들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신성함으로 치자면 부처님 사리를 모신 불탑에 버금가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신성한 부도에 사천왕이나 연화문, 비천상 등 불교를 상징하는 조형 대신 토끼, 거북이, 바닷게, 물고기 등을 그려 넣는다면 어떨까. 그것도 입술 한쪽에 움씰 움씰 웃음이 묻어나는 희화적인 조각들이라면?대부분의 불자들은 아마 불교를 모독한 것이라 발끈할 게 틀림없다. 엄숙하고 신성해야 할 부도에 감히 바닷게가 올라앉다니.

그러나 해남 대흥사의 서산대사 부도를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청허당(淸虛堂)’ 탑명을 음각하고 상, 중, 하대석과 상륜을 얹어 한껏 기품을 발휘한 부도에 위를 향해 엉금엉금 걷는 게가 어김없이 조각되어 있다. 더구나 묘지 주변 호석에서나 볼 수 있는 양과 원숭이까지. 형식은 전통적인 팔각원통형을 따르고 있지만 조각은 한마디로 파격, 그 자체다. 비단 서산대사 부도에만 이런 조각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흥사에 남아있는 50여기의 부도와 말사인 미황사의 30여기 부도에는 바닷게, 원숭이, 양에 이어 오리와 거미, 방아찧는 토끼, 호랑이, 사슴 등 그야말로 동물 농장을 연상케 하리만큼 많은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너무도 빼어나서 감탄을 자아내거나, 혹은 완벽한 조형미로 보는 사람을 기죽게 만드는 것도 아닌, 그저 보면 웃음이 묻어나는 고졸하고 향토적인 맛이 보는 이에게 민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부도에 연화문과 비천상, 사천왕 등 부도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조형 대신 동물들을 조각하게 된 이유에 대해 밝혀진 바는 없다.

고려·신라의 부도에 비해 예술성이 떨어지는 조선후기(17세기 이후) 부도로 학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자간에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민화 영향설이다. 조선 후기는 민중들에 의한 다양한 민화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다. 까치 호랑이로부터, 물고기, 게, 개구리 등 다양한 동물들이 희화된 형태로 그려졌는데 부도에 이런 시대상이 반영됐다는 것. 이와 함께 조선불교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종파 대신 인물을 중심으로 한 문중불교가 되면서 무덤에 두르는 상징물인 12지신, 즉 호랑이, 원숭이, 양, 용 등이 스님의 무덤 격인 부도에 등장했다고 한다.

또 부도에 나타난 동물 모양을 오래 연구해 왔다는 한 재야 사학자는 사뭇 진지한 의견을 내 놓기도 한다. 특히 바닷게에 대한 그의 해석은 남다른 데가 있다. 바닷게는 ‘횡행공자(橫行公子)’라는 말이 있듯이 유일하게 옆으로 걷는 동물이다. 따라서 바닷게는 앞으로만 걷는 중생과 달리 종횡으로 무진하며 걸림 없이 살아간 큰스님의 행적을 상징화하고 있다는 것. 또 바닷게는 장이 없어 근심 걱정으로 속을 끊일 일이 없다는 의미가 있는 만큼 번뇌를 벗어 던진 깨달음의 세계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절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뤘던 민중들이 그들의 소망을 부도에 담았다는 설명이다.

통통한 게가 노니는 굶주림 없는 세상, 물고기는 풍어를 기약하고 방아찧는 토끼는 달에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곡식을 찧어준다. 당시 민중들이 생각했던 극락 세계. 그 세계를 존경하던 스님의 부도에 새기며 그들의 삶에서 실현되기를 기원했으리라.

사찰과 민중의 만남. 대흥사·미황사 부도의 파격은 어쩌면 그 곳을 거쳐간 큰스님들의 따뜻한 민중사랑의 발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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