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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배창호 감독 "꿈"

기자명 문학산

사랑, 그 즐거움 그리고 덧없음

모든 감독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는 혼자된 아버지와 과년한 딸을 중심으로 한 가족사를 주로 다뤘다. 거장의 반열에 오른 타르코프스키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변주하여 영상으로 표현했다.

배창호 감독의 주제는 사랑이다. 감독 스스로도 ‘영화란 관객에게 쓰는 연애편지’같으며, ‘내가 들려주고 싶은 사랑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다고 선언한 바 있다. 사랑은 ‘꼬방동네 사람들’,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정’까지 변함없는 테마의 자리를 차지해왔다.

작년에 개봉한 ‘정’은 80년대 흥행감독의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고 서둘러 간판을 내렸다. ‘정’에서 다룬 주제 역시 거시적으로 보면 사랑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흥행감독의 자리에서 서서히 멀어져갈 즈음 배창호는 삼국유사의 조신 설화를 바탕으로 한 ‘꿈’(1990)을 연출했다.

‘꿈’은 스님 조신과 태수의 딸 달례의 사랑이야기다. 태수의 딸 달례는 당대 최고의 검객 모례아손과 정혼한 상태다. 조신은 혼인 준비 중인 달례와 함께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인다. 조신은 말년에 질병과 기근으로 아이를 잃고 달례와 헤어진 후 다시 절로 찾아든다. ‘꿈’은 제목처럼 도피행각과 쇠락의 전과정을 법당에서 꾸는 꿈으로 처리했다. ‘꿈’은 사랑지상주의자 감독의 손에 의해 사랑의 맹독성을 다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배창호의 ‘꿈’(1990)은 신상옥의 ‘꿈’(1967)이 만들어진지 20여년이 지난 후에 리메이크 됐다. 신상옥 감독은 신필름이라는 한국형메이저 영화사를 설립했다. 이장호 감독이 영화수업을 받은 곳이 신필름이며, 감독직을 박탈당한 이장호 감독이 술집을 운영하며 권토중래를 꿈꿀 때 배창호 감독이 충무로에 발을 내딛었다.

신필름 사단의 대표주자인 이장호 감독에게 연출 수업을 받은 배창호 감독이 ‘꿈’을 리메이크했다는 점은 영화사적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꿈’의 각본을 이명세와 배창호가 공동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재작년에 ‘인정 사정 볼 것 없다’로 확고한 흥행감독의 기반을 구축한 이명세는 배창호와 오랫동안 영화작업을 함께 했다. 배창호의 자전적인 영화인 ‘기쁜 우리 젊은날’에서 주인공 영민(안성기 분)이 혜린(황신혜 분)과 첫 만남에서 언급한 희곡의 제목은 이명세 감독이 연출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였다. 이명세의 첫 작품은 ‘개그맨’이다. ‘개그맨’은 한 사내가 이발소에서 이발하는 사이 꾸었던 꿈을 배경으로 탈옥병의 이야기를 액자처럼 집어넣었다. 배창호의 ‘꿈’은 조신이 법당에서 꾸는 꿈속에 일생의 파노라마를 집어넣은 일장춘몽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개그맨’과 닮았다. ‘개그맨’은 ‘꿈’의 이명세 버전으로 여겨질 정도다.

필자는 성실한 불교학자인 김성호 교수님의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하여 불교관련 글과 독서일기와 영화평을 자주 읽곤 한다. 교수님의 쓰신 영화평은 불교에 대한 학문적인 깊이와 예술에 대한 기품을 엿볼 수 있는 주옥같은 언어로 채워져있다.

그 분은 조신의 꿈이라는 글에서 조신설화는 ‘세락(世樂)은 영원하지 않으며, 고통이며 그곳에서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없다’는 진리를 계도하기 위해 구성되었다고 언급하셨다. 구성은 ‘갈구(渴求)-세락(世樂)-후고(後苦)-각찰(覺察)의 과정으로 설명하였다. 조신설화가 구현한 불교적 세계관을 해독하는 구절구절에 공감을 했다. ‘꿈’이 사랑의 덧없음을 꿈으로 처리한 영화라는 미진한 해석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말미에 몇 줄 인용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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