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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자리와 ‘소유욕’

기자명 법보신문

무릇 사람마다 삶의 뜻이 다르다. 많은 이들이 돈과 권력을 좇지만, 평생 그 둘에 고개 돌리고 사는 이도 적지 않다. 누군가는 대통령 자리에 앉고 싶어 민주시민 수백 여 명을 학살하고, 누군가는 대기업 회장으로 천문학적 재산을 주무르길 꿈꾸지만, 그런 무리를 파리 떼나 구더기들로 경멸하는 이들도 있다.


하물며 세속을 벗어나 해탈을 ‘일생일대의 큰일’로 삼은 스님들의 세계에선 말할 나위 없을 터다. 만일 권력과 돈을 추구하는 스님이 있다면, 기실 그야말로 언어도단 아니던가. 권력이나 돈을 좇으려면 아예 출가를 말았어야 옳다. 스님이 권력이나 돈을 중시할 때, 세간의 시선이 유독 차가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총무원장 선거가 혼탁해질 때, 스님들이 도박판을 벌일 때 중생의 눈귀가 쏠리는 까닭은 그만큼 청정 승가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명색이 ‘조계종 출입기자’를 지냈으면서도 고백하거니와 나는 아직도 총무원장 선거에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이 오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하면 믿고 싶지 않다. 어떤 절의 주지 스님이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약점’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먼저 든 생각은 “설마 그 스님이…”였다.

다시 돌아온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묻고 싶다. 과연 이번 선거에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을 능가하는 ‘돈 봉투’가 무람없이 오가려는가? 물론, 돈 봉투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만 오가는 게 아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선거에서 ‘검은 봉투’가 뿌려진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쟁점으로 불거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개신교 목사들에 견주어 청정 비구로 살아가는 스님들에 대한 기대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바로 그래서다. 34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적명·자승·도법·법등·수경 스님이 만난 5자회담에서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다. 적어도 ‘자리’를 놓고 오가는 추한 거래는 막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더구나 봉암사 수좌 적명스님이 나섰다는 사실이 신선도를 높였다. 도법스님에 따르면, 5자회담 당시 적명스님은 “정법의 종단이 무너지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내 당대에 정법의 당간이 무너질까 싶어 참으로 두렵고 두렵다. 선원의 좌복 위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불조께 죄를 짓는 것 같아 차마 견딜 수가 없다. 부득불 무력한 노구를 이끌고 불교도, 종단도, 우리 모두도 함께 살 수 있는 큰길을 가고자 자리를 털고 나왔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어떤가. “우리 모두 함께 기득권을 내려놓자”고 한 적명스님의 당부에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화답한 스님들 사이에도 소통이 온전하지 못하다.


적명스님을 예전에 기기암으로 찾았을 때, 전해온 스님의 맑은 기운은 지금도 향기롭다. 당시 스님은 종단 스님들이 “조금은 해이해 있다”며 “중이면 중으로서 가치를 추구해야 옳은 데, 세상의 가치까지 놓지 않으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개탄했다. 스님은 세속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염두에 둘 가르침을 달라는 마지막 질문에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헤아려 보라고 권했다. 소유욕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실체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한다며 “모든 게 실체가 없음(제법무아)을 꿰뚫으면 집착이 없어져 머물지 않게 된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손석춘
그렇다면 어떤가. 찬찬히 짚어보자. 혹 총무원장 자리를 ‘소유’하려는 미망에 사로잡힌 스님들은 지금 없는가? 스님으로서 가치를 온전히 추구하는 스님이 총무원장이 될 수 있는 선거풍토는 정말이지 요원한 일인가? 가장 소유욕 없는 스님이 총무원장 되는 ‘선거 혁명’은 정녕 한국 불교에서 불가능할까? 조계종의 스님들 세계에서도 그게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면 중생이, 아니 산문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아직 희망을 놓고 싶지 않은 참 소박한 이유다.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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