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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총무원장에 필요한 리더십

기자명 법보신문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13년 식민지 조선의 불교에 날카로운 죽비소리가 울렸다. 근대적인 불교 개혁론을 주장한 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이 태어난 것이다. 이 책에서 만해선사는 평등주의를 강조하면서 불교가 미래의 도덕 문명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여 많은 이들의 공감과 행동을 끌어냈다.


이 책에서 만해선사가 불교유신의 방안으로 제안한 것 가운데 하나가 ‘사원주직(寺院住職)의 선거제 채택’이다.

 

사찰의 주지를 대중의 손으로 뽑자는 것이다. 당시 조선 불교에는 의뢰주직(依賴住職), 무단주직(無斷住職)의 폐해가 만연했다. 의뢰주직은 권력자에게 부탁하거나 뇌물을 바치고 사찰 주지직을 차지하는 것이다. 무단주직은 폭력 등을 이용해 주지가 되는 것을 이른다. 만해선사는 오로지 자기를 살찌게 하려는 목적으로 의뢰주직, 무단주직으로 주지가 된 이들이 착복 등을 저지르는 현실을 한탄했다.


이번 달에 치러질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지켜보노라니 만해선사가 이미 100년도 전에 지적했던 현상이 되풀이되는 듯이 보인다. 1990년대 같은 폭력사태가 다시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싼 권력다툼은 매우 우려스럽다. 지난해 ‘백양사 도박파문’ 이후 해체를 선언한 종단 내 주요 종책모임(계파)들이 새롭게 이합집산하면서 선거구도는 자승 총무원장 지지냐 반대냐로 진행되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을 지지하는 측은 현직의 이점에다 그동안 보여준 종단 운영능력을 내세워 재임을 자신한다. 반대하는 측은 ‘승풍(僧風) 실추’에 대한 책임과 재임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깼다며 도덕성 문제를 들고 나섰다. 전국선원수좌회 등과 재가자들, 여러 불교단체들이 자승 스님의 출마에 반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나 뽑히는 이에게 관심을 갖지만 사실 선거는 뽑는 이들의 축제여야 한다. 뽑는 이들이 불과 300여명 밖에 안 되고 그나마 재가자는 제외되어 있지만 의뢰주직, 무단주직이 아닌 것만 해도 그게 어딘가. 따라서 뽑는 이들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것인가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다음 종단 지도부는 소통의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지금 종단 안팎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은 사부대중 간의 소통부재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우리 사회는 전방위적으로 후퇴했다. 지역갈등에 이어 계층갈등, 세대갈등이 악화되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종교편향으로 종교갈등도 두드러졌다. 정부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봉은사 명진 스님을 쫓아내려 조계종단에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 같은 종교차별에 항의해 범불교도대회까지 열렸다. 그럼에도 명진 스님은 봉은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종교차별은 시정되지 않았다. 당시의 종단 지도부는 이 같은 승풍의 추락에 대해 책임지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불통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불교도 소통하지 못했다. 불통대통령은 떠났지만 종단 안팎의 불통은 여전하다. 그래서 다음 총무원장에게는 소통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소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거짓말 안 하는 리더십, 신뢰의 리더십이 조계종단에는 지금 매우 필요하다. 따라서 뽑는 이들이 누가 소통의 리더십, 신뢰의 리더십을 갖추었나를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이런 저런 인연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부처님도 “진실로 내 것이 아니면 과감하게 버려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던가.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거나 알면서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집착은 버려야 한다.

 

▲손혁재 원장

설령 내 것으로 만들어도 영원하지도 않고 괴롭기만 한 것을 집착하지 말아야 깨닫게 될 것이다. 맑고 향기로운 총무원장 선거는 이미 기대할 수 없지만 누가 당선되더라도 불교의 현안에 대해 더욱 많이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도부가 들어서기를 바란다. 


수원시정연구원 원장 손혁재 nurison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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