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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노동현실과 조계종

기자명 법보신문

“그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해 온 30대 노동자 최종범.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긴 말이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천안센터 사장과 고인의 전화 통화내용은 충격적이다.


냉장고 소음을 점검하던 중에 ‘고객’이 고인의 태도가 ‘불량’하다며 서비스센터에 항의했다. 센터 사장은 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센터에서 사과했다”며 욕설을 퍼부은 뒤 “(고객을) 칼로 찔러서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리든” 아무튼 더는 항의가 없도록 하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친절’한 삼성전자 서비스의 이면에서 오가는 말은 불친절을 넘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살벌하다.


물론, 그게 고인이 자살한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섬뜩한 전화 통화는 자살하기 한 달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가 “배고파 못 살았고”라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고인의 동료들은 최 씨가 2013년 7월에 출범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 노조’(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에 참여한 뒤, 일감을 많이 배정받지 못하면서 임금이 줄어들어 고통받아왔다고 전했다. 마침 삼성이 조직적으로 ‘무노조 경영’을 관철하기 위해 작성한 ‘노조탄압 전략’ 문건도 드러났다.


지구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에서 일어난 참극은 2013년 11월 현재 우리의 노동현실이 얼마나 캄캄한가를 증언해준다. 그 어두운 노동현실에 빛을 밝혀야 할 책임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있다.


그래서다. 조계종이 전태일 43주기를 맞아 민주노총이 연 ‘2013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해 천도재를 봉행한 것은 뜻 깊다. 조계종 노동위원으로 중요무형문화재인 영산재 전수생인 동환 스님은 ‘공권력’의 폭행으로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던진 노동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천도재에 이어 노동위원장 종호 스님도 무대에 올라 “조계종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여러분들과 함께 걸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노동위의 공언대로 조계종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노동자들과 벅벅이 걸어간다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현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될 게 틀림없다.


노동위가 다짐한 ‘비정규직 철폐’를 구현하려면, ‘대증요법’으로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노동현실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해야 옳다. 노동자들이 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게 해온 법제들이 비정규직 양산을 불러왔기에 더 그렇다.
물론,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라는 말만 들어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넘친다. 다름 아닌 대다수 신문과 방송이 그렇게 여론을 몰아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 ‘무명’에서 국민 대다수가 벗어나야 한다. 불교인들이 그 무명을 벗는 일은 조계종 노동위에 주어진 과제다. 노사공동결정제는 ‘좌파’나 ‘종북’의 의제가 아니다.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하면 그 기업이 망할 것처럼 부르대온 한국 언론들 때문에, 선입견이 짙을 뿐이다. 노사공동결정 제도를 도입하면 오히려 갈등을 줄이며 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다.

 

▲손석춘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며 세계 자동차 시장 1위인 도요타를 바투 추격하고 있는 독일의 자동차기업 폴크스바겐이 좋은 보기다. 조계종 노동위가 비정규직 철폐를 비롯해 노동현실을 바꿀 정책대안을 내놓고 종단 안팎에서 적극 소통해 나간다면, 불교의 현대적 포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비정규직 철폐에 나선 노동위와 조계종단에 박수를 보낸다.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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